한 거란군이 창을 뻗으며 고려 병사에게 찌르자, 창은 고려 병사의 뱃살을 뚫고 내장에 박히며 터져나오는 고려 병사의 비명을 지르게 했다. 


뒤쪽의 고려군은 두 손을 꽉 쥐고 칼을 반원을 그리며 그 거란 병사를 향해 칼을 휘둘렀고, 그것을 본 거란 병사는 재빨리 창을 뽑으려 하나 고려군이 그의 목을 긋는 속도가 더 빨랐다.


거란 병사는 휘둘려진 검에 가로 일자로 목이 그였고, 그 그인 자국에서 피가 주루룩 흐르며 거란 병사의 육중한 몸뚱이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른 쪽에선 고려군이 쏜 화살이 거란 기병이 타고 있는 말에 눈이 박혔고, 화살을 눈에 맞은 말은 미쳐 날뛰며 주인을 단단한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낙마한 거란 병사는 그대로 척추가 부러지며 죽고, 전장을 배회하는 다른 말이 그 시체를 밟으며 퍼석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말을 탄 거란군 기병은 퍼석거리는 소리를 무시하며 고려군을 향해 창을 여러번 휘둘렀고, 그러자 주위의 고려군은 추풍낙엽처럼 그대로 쓰러졌다.


거란 기병이 칼을 들며 응전하는 고려군에게 언월도를 겨누며 그대로 돌진하고, 고려군은 뒤늦게 그것을 발견하고 허둥지둥 거리다가 거란군의 무게가 실린 창에 그대로 목이 날아가며 공중에 그 목이 잠시 떴다가 중력에 의해 다시 낙하했다.


그 거란 기병은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창을 든 고려군을 노리며 말을 재촉하려 들었지만, 말이 달려들기 전에 다른 고려 창병이 그의 말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을 고통에 울부짖게 하고, 말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주인을 내동댕이쳤다.


떨어진 주인은 일어나지도 못한 채 한 고려 병사의 검이 그의 목을 겨누어 내려쳐지는 고통을 느끼며 눈이 감겼다.


전투는 더욱더 격해지며, 수많은 생명을 죽게 했고 또 죽이게 했다. 전투가 격해질수록 정예병만을 가려 뽑은 거란의 병사들은 더욱더 기세가 세져가며 고려군들을 죽이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숫자로 밀어붙이던 고려군도 슬슬 기세에 밀려가고 있었다.


"상원수, 우리 군이 점점 밀리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보이는군."


부원수 강민첨이 상원수 강감찬에게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감찬 역시 말끝을 살짝 흐리며 부원수에게 답했다.


'병마판관(김종현), 대관절 어찌 이리 늦는 겐가.'


강감찬은 그리 생각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슬슬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져가고 있었다. 그토록 노력했지만, 결국 이리 되는가.


강감찬은 고개를 숙이며, 질끈 눈을 감았다.


-두두두두두두


아니, 감으려 했다. 


강감찬이 고개를 숙이는 동시에, 땅이 울리면서 멀리서 흙바람을 일으키며 거란군 뒤쪽으로 돌격해오는 한 무리가 보였다.


-뿌우우우우우우


전장에서 한바탕 싸우던 양측의 병사들도, 나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화, 황송합니다. 소장도 잘.."


거란군의 수뇌부들은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어...어어!! 고려 놈들이다! 고려 놈들이 우리 뒤에서 오고있다!!!"


그러나 그때, 고려군의 깃발을 알아본 한 거란 병사가 외쳤다.


높아져가고 있었던 거란군의 사기는 그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깨어졌다.


"중갑기병입니다! 상원수, 우리 중갑기병입니다!"


강민첨은 흥분하며 강감찬에게 중갑기병이 왔음을 알렸다.


"어찌 이리도 절묘한 때에 도착하였는가. 병마판관!"


강감찬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더니, 이내 나팔소리를 듣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기병이다! 우리 기병이 도착했다!"


"원군이 왔다! 이제 살았다!"


"만세! 만세!"


그에 반해, 고려군의 사기는 깨지지 않다 못해 원군이라는 접착제로 하여금 금이 다시 붙어가고 있었다. 


"모두 돌격하라!"


고려의 기마군들이 철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격 진형을 갖추자, 병마판관 김종현이 말의 고삐를 단단히 쥐고 칼을 높이 들며 돌격 명령을 내렸다.


와아아아아아-


두두두두두두-


철그럭 철그럭 철그럭-


1만 명이 외치는 함성소리와, 1만 필의 군마들이 달리며 내는 말발굽 소리와, 병사들과 군마들이 두르고 있는 철갑이 철그럭대는 소리가 합쳐졌다. 


거란군에게는 그 소리가 마치 자신들의 운명이 경각에 달했음을 알리는 듯했다.


반면 고려군들에겐 그 소리가 응원군이 당도했으니 힘써 싸우라는 힘차고 흥겨운 응원의 음악소리같이 들렸다.


"오냐, 어디 한번 죽어보자, 이 오랑캐 놈들아!"


"뒈져라 이것들아!"


사기가 하늘 끝까지 오른 고려군들은  창칼을 휘둘렀고, 거란군은 패닉에 빠져 앞다투어 무기를 버리며 살기 위해 평원으로 내달렸다.


"비켜!"


"아악!"


"씨발, 비키라고 이 새끼들아!"


다음을 기약하며 퇴각하는 질서정연한 후퇴가 아닌, 그저 패잔병들이 살기 위해 도망치는 추한 패퇴였다.


거란군들은 서로 제가 도망칠 퇴로를 만들겠답시고 옆의 동료를 밀치고, 칼을 휘두르고, 창으로 찔렀다.


"이..이놈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느냐?! 자리를 지켜라!"


거란군 도통사 소배압은 칼을 들며 병사들에게 항전을 요구했지만 소용없었다. 뒤쪽의 고려 기병으로 패닉에 빠진 거란군들은 사령관의 말을 무시하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자리를 이탈하였다.


"물러서는 자는 머리를 베어라, 물러서는 자는 머리를 베어라!"


초조해진 소배압은 다시금 칼을 높이 들며 항전을 촉구하였다. 개중에 그의 말을 치며 도망치는 몇몇 병사의 목을 베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컥!"


"억!"


그러나 그런 그의 몸부림이 무색하게, 1만 명의 고려 기병들은 거란군의 진영에 도달하며 거란군 사이를 비집으며 병사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소배압과 극히 일부의 장수와 장졸을 제하고는 모두 이성을 잃고 오직 살기 위해 날뛰는 판이라 기병이든 보병이든 소용이 없었다. 


그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고려군 쪽이 아닌, 거란군 쪽으로.


"어..어어!"


"젠장할, 제대로 못 걷겠어!"


성인 여성이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다.


바람의 힘을 견디지 못한 거란의 병사들은 싸우는 와중에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으며 여러 방향으로 고꾸라졌고, 개중에 누구는 뒤로 고꾸라지는 와중에 아군의 창에 뒤통수를 관통당하기도 했다. 


혹은, 싸우던 와중에 쓰러지며 적에게 목이 베이거나 창에 찔려 명을 끝마치기도 하며 죽어갔다.


"지금이다, 쏘아라!"


상원수 강감찬의 명령에 한껏 쏘아진 화살은 강력한 바람을 타며 거란 진영으로 날아갔다.


기세를 타며 쏟아지는 화살에 거란군들은 그대로 벌집이 되었다.


거란군들은 그렇게 날아간 화살들로 인해 가지각색으로 숨을 거두었다.


"커억!"


화살을 쇄골에 맞으며 고꾸라지기도 했고,


"욱!"


투구를 뚫은 화살이 그대로 살을 뚫고 이마에 박히기도 했고,


"우으억!"


혹은 영 좋지 않은 곳에 맞기도 했다. 


바람으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주위의 동료들이 바람을 타고온 화살에 절명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본 거란군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져갔고, 처음엔 몇 명이 공포에 질렸을 뿐이었지만 이내 그 공포는 빠르게 거란군 진영으로 퍼져나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히,히익! 난 여기서 죽을수 없어!"


개중에는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진영을 이탈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같은 거란군에게 목이 베이거나 고려군의 화살과 창칼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


"이...이이이이...!"


"도통사, 이미 전세가 기울었습니다! 지금 빠져나가지 못하면 고려군이 우리를 칠 것입니다! 도통사, 남은 병사들이라도 부지하여 후일을 도모해야 하옵니다!"


"....퇴각하라."


마침내 결단을 내린 소배압은 공식적으로 퇴각 명령을 내리고, 도망치는 병사들과 같이 말고삐를 세게 움켜쥐고 전장에서 빠져나와 달렸다.


1만의 고려 기병과 20만 고려군이 합쳐 공격하니, 본격적으로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거란 군사들은 고려 기병에게 목이 잘리고, 가슴팍을 꿰뚤리고, 혹은 넘어져서 그대로 말발굽에 짓밟히기도 했다.


"끄억!"


"으악!"


본래라면 고려 보병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려야 했을 거란 기병들이 보병을 두려워하며 도망치는 진풍경이 여기저기서 펼쳐지기도 했다.


간혹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무기를 고려군 쪽으로 돌리는 이들도 있었으나, 사방팔방이 패닉에 빠진 장애물이고 적인 상황에서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컥!"


"우욱!"


고려 기병은 그들을 뒤쫓아 창을 던지고 칼을 휘두르며 거란군의 수급을 하나 하나 취해갔고, 어느덧 평원을 가득히 메웠던 거란군은 이제 극히 일부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사.. 상원수, 우리가 이겼습니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강민첨의 말이 끝나자마자, 귀주 벌판에는 고려군의 함성이 한껏 울려퍼졌다.


"이겼다!!"


"만세! 만세! 성상폐하 만세!"


"으허허헝...꺼흐흑..!"


고려군은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승전을 축하했다. 그중에선 너무 감격하여 울음을 터트리는 자들도 있었다.


장교들도, 장군들도 이번엔 병사들과 함께 어울리며 만세를 부르고, 체통을 내던지며 함께 승리를 축하했다.


강감찬은 여전히 말에 타며, 칼을 쥐고 있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었지만, 눈시울은 더없이 붉었다.


"마침내 승리하였구나. 마침내 승리했어."


담담한 말이었으나,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강감찬은 눈을 감으며 잊을만 하면 그를 괴롭히던 과거를 회고하였다.


동북면의 군사들이 패했다는 소식에 절망에 빠져 항복을 종용하던 조정의 중신들.


거란군들을 곳곳에서 유격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며 뛰어다니던 그 날들.


거란군의 방화와 약탈에 신음했던 고려의 백성들.


그리고, 처참하게 불탄 궁을 바라보며 서럽게 우시던 성상 폐하.


그 모든 아픔을, 그 모든 슬픔을, 모두 이 한 번의 승리에 바치었다.


이제, 그는 해방되었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반드시 고려를 수호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이 전쟁에서, 이 최후의 전투에서 마침내 승리함으로써.


평화전쟁이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