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 댕. 댕.
종이 울리는 소리다. 불쾌하지도 않고 청량하지도 않지만, 내 가슴 깊이를 울리는 거짓 종소리다. 
어느 순간부터 키보드에서 종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종소리일까? 키보드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소리라면, 종이 아니라 대포가 적절할 터였다. 그런데 종소리로 듣고 있는 나의 심리는 완전히 미쳐버리지 않은 나를 상징하듯이 대포가 아닌 종소리로 듣고 있다.
종소리에 따라 몸을 맡긴다. 아! 연극의 막이 오르고, 클리셰를 비틀어 지금부터 2막의 시작이다. 신발을 신을까? 나는 자유의 몸이다! 신발.. 아, 신어야지. 가끔. 가끔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라고. 스스로 그렇게 다짐하고 3주 만에 햇빛을 볼 생각을 하면서, 문고리에 손을 '휘감고' 앞으로 나선다.

바깥이다! 햇빛이다! 놀랍고 경외를 표합니다!

외치듯이. 그런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 것처럼 입만 벌리고, 양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돌았다. 노을이 아름답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이것이던가? 
그런데 그런 연극을 끊는 목소리. 뒤도 아니다. 앞도 아니다. 앞? 아니 정면이다! 오, 소녀여. 어떤 용무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아저씨, 절 살래요?"
종소리가 대포로 잠시 변하고, 세상이 원래대로 - 아니면 그대로. 있는 그대로. 360도에서 0도로 바뀌는, 가공되지 않은, 남들이 보기엔 '제정신을 찾은 D'로 돌아온다. 종소리는 작아지다 멎는다. 작은 이명만 남는다.
"아저씨!"
나는 서 있었다. 보기 흉한 거북목에다 키는 꽤 큰, 역극의 '꼽추' 역할이었다.
소녀는 눈이 창백하다. 아니면 얼굴이, 아니면 영혼이 창백하다. 옷은 단정하되 천박하고,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괴로움.
괴로움..? 내가 괴로움을 느끼고 내뱉은 말은
"너, 아프구나."
소녀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눈물 알갱이는 강이 되어 숲을 이룬다. 나는 소녀의 두 겹 화장이 지워지는 광경을 보며 팔을 휘두르고, 석양을 보며 다시 댄스를 추고 싶다.
"..."
소녀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악을 지른다. 나는 터무니없는 제안을 하고 싶어한다. 나는 예술가이자 엄청난 가난뱅이지만 그대를 위해 쓸 돈은 있습니다.

집은 바로 옆이다. 내가 사랑하고 활동하는 곳.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여 아끼는 익숙함의 장소. 벽면의 낙서는 내 상상이오, 화장실의 깨진 유리는 내 상상입니다.
"기대와는 다르게 깨끗하네요."
소녀의 신남과 어리숙함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내 집 현관에서 들어온 손님 등 뒤로 감사를 했다.
"아저씨 집 아니에요? 왜 그러고 서 있어요."
"미안. 사람이 들어온지 오래라 좀 더럽고 지저분해. 미안.

규칙을 정하자.
1. 소녀가 연락하던 사람, 소녀를 위협하는 사람, D를 위협하는 사람은 이 집에 들일 수 없다.
2. D는 돈이 많다.
3. 아픈 사람끼리 서로 돕자.
4. 소녀가 뭘 하고 싶은지, 자유 의지를 찾아보자.
흡족해하고 웃음짓는 아델라이데의 모습은 하얀 드레스에 하얀 꽃을 얹은, 그야말로 순백의 웃음이었다. 무의식의 생각 속에선, 약물과 기쁜 교미로 온몸이 얼룩지고 더렵혀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순백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아델라이데! 아델라이데! 아델라이데!
축포가 터지고 아델라이데의 이름을 만세 삼창하고, 둘 다 기뻐한다! 아델라이데! 아델라이데! 아델라이데!
그런 상상으로 순백을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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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거장 마에스트로.

복잡하지만 아름다운 2024년의 폰포르에 살고 있는 거장. 마에스트로.

딸을 주웠다네! 소녀를 집에 들였다네!

몸을 팔던 소녀일지? 아니면? 사실 비밀이 있는 소녀일지? 내 숨겨진 가족이면, 그것또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아차, 1편의 이야기는 잊어 주시게. 내 망상이었으며, 고리타분하고, 사실이 아니며, 아름답지도 않고, 그냥 추악한 이야기일 뿐이야.


이곳은 서울입니다.

마에스트로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칭하는 자가 있는 서울입니다.

마에스트로의 집은 어둡습니다.

주택입니다.

그러나 어둡습니다.

커튼을 치지도 않았고, 햇빛도 잘 들어옵니다.

역과도 가깝고, 공원도 있고, 공해도 심하지 않아 새도 지저귑니다.

그러나 마에스트로의 집은 어둡습니다.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온기가 없는 차가운 나무바닥만이 집 안에 가득한 것 같습니다.

가구 하나 없이, 침대 하나 없이, 큰 냉장고 하나만 보이는 게 기괴합니다.


아, 실례.

이자는 D네.

D가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했으니, 나는 극의 장단을 맞춰 줘야겠지.

가느다란 손가락을 이리저리 펼쳐내어.. 음! 그래, 냉장고에 가득한 시리얼을 꺼내는 거지. 즐겁게, 정적이지만 은은한 단맛을 손님 역에게 내오는 기획이었지.


그러나 손님은 없습니다. 서로 상극인 D와 마에스트로의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소녀는 없습니다. D는 냉장고 선반에 꽂히듯이 얼어 있는 시리얼 조각을 집어 입에 넣습니다. 은은한 단맛이 납니다.

D는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오늘은 멀리까지 나가봅니다.

마에스트로가 듣는 종소리를 듣지 않으려 노력하며, 늘 가서 춤추던 공원을 지나 어느 다리까지 갑니다.

마에스트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가난한 정신과 의사들이 붙인 병명 - '공황장애'가 마에스트로의 자아를 억압하는 것 같습니다.

참 신기하지 않나요?

정신질환의 일종이자 다른 저인 마에스트로가 다른 정신질환에게 억눌리는 모습이라니, 신기합니다.

어쩌면 공황이라는 현상도 또 다른 자아를 대표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에스트로가 깨어나려 합니다. 몸을 던지려고 애쓰는 안경잡이 꼽추의 비극이 아닙니다. 저는 생각을 하려고 다리 난간에 기대어 여러가지를 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의 하나로 인식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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