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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긋한 냄새…졸린 기운이 날아갈거 같은 꽃향기가 내 코를 찌르고 있었다. 일어나, 라고, 속삭이듯. 심연 속에 빠져 있던 의식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는 동시에, 청각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듯 모닥불 소리가 들려왔다.


타닥-타닥-


장작을 태울 때 나오는 은은한 열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머리 아랫부분이 포근했다. 베개나 매트리스 같은 포근함이 아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하지만 계속 이대로 누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부드러움이었다. 얼굴을 그대로 파묻히고 싶을 정도로.


"라라라-"


노랫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아직도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도 그럴 것이 내 눈에 소녀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미소녀가. 등까지 내려온 핑크색 스트레이트 헤어를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ㅁㅁ? ㅁ ㅁㅁㅁ!"


황금빛과 같은 앰버색 눈동자가 내 눈과 마주쳤다. 내가 깨어난 것이 매우 기뻤는지 소녀에게서 미소가 그려졌다. 평생 눈에 담고 싶을, 보기만 해도 잠이 깰 것만 같은 미소를.


분명히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여신님이시다. 핑크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여신이 직접 내려와, 나를 보살피고 있다고.


핑거리스 장갑을 낀 손이 볼에 붙여진 붕대를 쓰다듬어 주었다. 떨어지지 말라는 듯 살짝 치면서. 잔 사이에 붙여준 건가? 토끼에게서 긁혀진 상처였는데.


"ㅁㅁㅁㅁ. ㅁㅁ ㅁ ㅁㅁ ㅁㅁㅁㅁ ㅁㅁㅁㅁㅁ."


밝은 핑크색의 입술에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아직 비몽사몽인 상태라서 무슨 얘기를 한 건지 몰랐지만 확실한 것이 있었다.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나를 편안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붕대를 이루어 만졌던 손은 내 이마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은, 달아났던 졸음이 다시 돌아 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흐흥-하는 부드러운 콧노래는, 마치 자장가와 같았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아름다운 소녀의 무릎 위에서 눈을 감고 싶었다.


퐁-


뚜껑 여는 소리가 귀로 들어왔다. 소녀의 손에는, 녹색의 액체은 담은 병이 들려 있었다. 약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이 아니었다. 유리 재질로 만들어진, 주먹 크기만 한 원형의 병이 그녀의 한 손에 쥐어져 있었다.


"ㅁㅁ ㅁㅁ. ㅁㅁㅁ ㅁㅁ ㅁㅁㅁ."


소녀는 자신의 손에 쥐던 병을 내 입술에 가져왔다. 냄비에서 막 끓여진 스튜처럼 걸쭉한 녹색의 액체가 이빨 사이를 지나 입으로 들어갔다. 미묘한 맛이었다. 감미로운 맛이 혀를 젖혔다. 혀를 맴돌던 단기가 빠져나가자, 쓴맛이 맴돌기 시작했다.


흔히 약국에서 사 먹는 약에서 맛볼 수 있는 쓴맛이. 그 쓴맛이 코로 통해서까지 나오는 감각까지…."쿨럭-! 쿨럭!"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직전 내 몸이 벌떡 일어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려 했던 약물들은 격한 기침으로 뱉어냈다.


"ㅁㅁㅁ!? ㅁㅁㅁ!"


소녀는 내가 한 행동에 놀랐는지 양 눈을 크게 뜬 채 뒤로 물러갔다. 진정하라는 듯 양손을 펼치면서.


"너 뭐 하려고 했던 거야!?"

"ㅁㅁㅁ? ㅁㅁ, ㅁㅁㅁ."

"그 녹색 약은 대체 뭔데 나한테 마시게 하-쿨럭-쿨럭-"


기도 쪽으로 넘어간 약물이 남았는지 기침이 계속되었다. 침하고 같이 섞인 약물을 입에서 뱉을 때마다 쓴맛이 내 입안을 맴돌았다. 냉수 한 병 들이켜서 입안의 쓴맛을 씻겨내고 싶을 정도로.


"ㅁㅁ...?"

"...응?"

"ㅁ, ㅁㅁ ㅁㅁㅁ ㅁ ㅁㅁ ㅁㅁㅁ."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니 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 역시 놀랐는지, 가슴 쪽에 손을 올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 정면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의 소감은 이러했다.


'코스프레 중인가?'


금색 테두리의 검은색 스커트를 입은,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하얀색 민소매를 입고 있었다. 화염과 비슷한 붉은색 망토를 입은 그녀의 허리춤을 자세히 보니, 게임이나 애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색의 약물들이 담긴 포션 병을 비롯해 두꺼운 두께의 책까지 매고 있었다.


딱 봐도 이 세계 판타지 코스프레 하는 소녀였다. 앰버색 콘택트렌즈에 원래 머리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분홍색으로 떡칠까지.... 그것도 모자라 어떻게든 판타지 따라 하려고 누워있던 나를 눕힌 뒤 약을 먹이려고 한 것이다.


그런 것 떠나서 상당히 균형이 잘 잡힌 몸매를 가진 소녀였다. 가느다란 팔과 다리에, 매끄러움이 느껴지는 라인의 몸매는 그녀의 매력을 더욱더 돋보이게 하였다.


저런 몸을 가졌으니 판타지 코스프레를 하는 거지만.


"ㅁㅁ, ㅁㅁ ㅁㅁㅁㅁ?"

"저기 아까 전부터 뭐라고 하는 거야?"

"ㅁㅁㅁ ㅁㅁㅁㅁ?"


얘 입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언어가 나오고 있었다. 한글이 아니었다. 영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세계물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일본어도, 타국어도 아니었다. 처음 들어보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완전히 낯선 언어였다.


와아...얘 정말 중증이네. 아주 스스로가 이세계 언어를 만든 상태였다. 평소에 이세계물 판타지 소설만 읽고 살았나. 겉보기에는 나와 또래인 거 같은데 이래도 되는 건가.


"아-그러니까-안녕?"


그러면 나도 장단을 맞춰야겠지. 이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착각하는 코스프레 소녀랑 어떻게든 어울리려면 말이다.


"나는 이 세계로 떨어졌어. 곤니치와? 구텐 모겐? 봉쥬르?"

".....?"

"아이 엠 여신에게 선택받은 용사. 잘 부탁...해?"

"…?"


소녀의 반응은 이러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검지를 볼에 댄 채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이 그 증거였다. 나도 참 뭐 하는 거람. 내가 무슨 어린아이도 아니고 유치하게. 비록 이 세계 코스프레 하고 있다지만, 그녀로부터 충분히 이상한 남자애로 찍히기 좋은 행동이었다.


나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보던 소녀는 엄지로 턱을 받히면서 검지로 볼을 두들겼다. 흐음-하는 숨소리와 함께 골똘히 생각하듯 앰버색 눈동자를 위로 바라보면서.


따악-


뭔가를 생각해 냈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씨익-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소녀는 자신의 등 뒤에 매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안에 내용물을 꺼내려는 듯 손을 넣었더니….


불쑥-


여기서부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녀의 손에는 테이블이 꺼내졌다. 나무 재질로 만든 접이식 미니 테이블이. 보기만 해도 가방에 들어갈 수 없는 크기인데? 어떻게 꺼낸 거지?


가방 속에서 계속 물건들이 꺼내져 나왔다. 사극 드라마에서 자줄 볼 수 있는 약연으로 부터 시작해서, 온갖 종류의 허브, 버섯 그리고 다양한 색의 포션들을 색별로 테이블 위에다 놓은 뒤 자리에 앉았다.


저 가방 무슨 도라에몽의 사차원 주머니인가? 온갖 것들이 튀어 나오게.


"ㅁㅁ ㅁㅁㅁㅁㅁㅁ, ㅁㅁㅁㅁ ㅁㅁㅁ?"


소녀는 안경을 쓴 뒤, 허리춤에 차던 책을 펼쳐 보았다. 검지의 손톱으로 단어를 짚어가면서 읽던 소녀는, 버섯과 허브를 약연에 넣은 뒤 주판의 알과 비슷하게 생긴 연알을 앞뒤 굴러서 빻기 시작했다.


드르륵-드르륵-구를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는 내 귀에 간지럼 태우는 감각을 가져다주었다. 투득-하는 허브가 뭉개지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잘게 부서진 두 재료를 나무 그릇에 담은 뒤, 파란색 약물을 그대로 부었다. 화약 작용이라도 일어난 듯 부글부글-거품을 내는 모습에 만족하듯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음음!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면서.


빈 유리병을 가방 속에 꺼낸 뒤, 그릇 속에 있던 내용물을 담았다. 코르크 마개로 병뚜껑을 담은 뒤 포도주잔에 담긴 와인의 무게를 느끼려는 듯 몇 번 뒤흔든 뒤….


"ㅁㅁㅁㅁㅁㅁ!"


병을 쥔 소녀의 손에 빛이 생겨났다. 하늘과 비슷한 색과 빛이 가까이 갔으면 눈을 멀게 할 것만 같은 섬광은, 병 속에 있던 푸른색 액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 쏟아진 액체가, 키친 타울에 의해 빨려 들어가듯.


"ㅁ! ㅁㅁ!"


포션에서 변화가 생겼다. 평범했던 파란색이, 소녀의 손에서 나왔던 비슷한 색으로 변하였다. 하늘색의 빛을 내 뿜으면서. 안경을 벗은 뒤 소녀는 벌떡 일어섰다. 한 걸음씩 나한테 다가오면서. 해 맑은 미소로.


"ㅁ! ㅁㅁ."

"마시라는 거야 설마?"

"ㅁㅁ ㅁㅁㅁ ㅁㅁㅁㅁㅁ. ㅁㅁ ㅁㅁㅁ!"


원자력 방사능 보듯, 파란색의 빛을 내는 약병을 내미는 그녀가 다가왔다. 한 발짝 다가오면 한 발짝 뒤로, 두 발짝 다가오면 두 발짝 뒤로. 내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거 마시지 말라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반드시 후회할 일이 벌어진다고.


사실 약물도 약물이지만 진짜 무서운게 따로 있었다. 소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해맑게. 어떠한 악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린 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약물이 담겨진 병을 든 체. 걸어올때마다 타박-하는 발소리를 내면서.


만화나 영화에서 흔히 볼수 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비슷했다. 순수하게 웃는 모습에 안그래보이지만, 광기가 도사리는.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걸음을 멈춘뒤, 소녀는 검지로 나와 병을 가리켰다. 잠시 뒤 소녀는 구멍을 막은 뚜껑을 뽑은 뒤, 하얀 목덜미를 위에서 아래로 긋고서 한 모금 마셨다.


약이 썼는지 크으-하는 한숨 소리를 내뱉었다. 입을 한번 쓱 닫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내 오른손이 뻗어갔다.


직접 마셔가면서 안심시키려고 노력하는데 거절하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 아닐까 했다. 소녀에게서 약물을 건네받은 뒤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칠흑의 어둠을 밝게 할 정도로 빛나는, 하늘색 빛의 포션을 보아하니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마셔도 되는 건가?


만화에서 보면 이런 거 괜히 마시다가 큰일이 벌어지고 그러던데. 몸이 버티지 못해 폭발한다던가, 팔이 여러 개 달린다던가.


고개를 돌려보니 소녀는 양손에 주먹을 쥔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별처럼 반짝이는 앰버색 눈동자와 함께. 마시기를 기대하는 건가.


뭐 쟤도 한 모금 마시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죽기야 하겠어?


심호흡과 함께 입에 넣었다. 쓴맛에서 베어진 허브 냄새가 입안에 가득 메웠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약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서인지 현기증이 맴돌았다. 뱉을까? 라는 충동이 들었지만, 어떻게 안심시키려 했던 소녀의 모습이 눈에 그려져서 그대로 마시게 되었다.


이제 와서 실망하게 할 수 없어. 라는 생각과 함께.


후우-하면서 입에 묻은 약을 한쪽 팔로 닦으니, 소녀는 박수를 치고 있었다.


"ㅁㅁㅁ! ㅁㅁ ㅁㅁㅁㅁ ㅁㅁ ㅁㅁㅁ!"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칭찬하고 있다는 것을. 딱히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굳이 있다면 입에서 계피 향이 감도는 쓴맛이 입안에서 감도는 거 정도?

뭐야 괜히 겁먹었잖아. 그냥 단순히 마시기만 하면 될 것을. 덕분에 미소녀에게서 칭찬까지 듣고 말이야.


…라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두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들어간 무언가가 찢고 나오면서, 안구가 튀어나올 거 같은 감각이었다.


"너! 뭐한 거야!"


양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마지막 힘을 짜내 소녀에게 손을 뻗어 보았지만, 무거운 짐이 그대로 등에 올려진 듯 엎드리고 말았다. 

눈을 뜬 체 전신이 축 늘어지는 감각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뿌옇게 변해가는 시야 속에서 보였던 것은, 소녀의 하얀 맨다리밖에 없었다. 완전히 정신을 잃기를 기다리는 듯,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체.



저벅- 저벅- 저벅-


다가오고 있었다. 내 쪽으로. 천천히. 어떻게든 일어서려 할때마다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중력이 내 몸을 끌여들어 바닥에 붙여 있게 기분이었다.


저벅-저벅-저벅-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녀의 걷는 소리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하게 가만히 누워 있는 것.


외칠수 없는 입으로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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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노벨피아에 올린 에피소드 2 올릴 예정입니다.

이번주는 쉬는 텀으로 잡기도 했거든요. 추천 및 피드백 그리고 덧글은 작가에게 거대한 힘이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