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어가며 우리는 행복을 꿈꾸지만,

현실을 겪어가며 우리는 위선적인 이야기를 자아낸다.





"그렇게, 용을 죽인 용사는 탑을 정복하고 공주님을 구해내어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탁. 두툼한 그림책을 덮고 이야기가 막을 내린다.

이쪽을 빛내는 수십쌍의 눈망울들이 깜빡이고, 하나 둘 박수가 이어진다.


"여러분, 오늘도 고생하신 이야기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해야죠?"


"선생님! 고맙습니다!"


세월에 탁해지지 않은 특유의 맑은 목소리들이 울려퍼지며, 오늘도 어김없이 성황리에 마무리된 낭독회.

나 역시 꾸밈없는 미소로 화답해주며 자리를 정리해 나간다.


흘깃 살펴본 아이들은 용사의 용맹한 모습을 흉내내고, 어떤 아이는 공주처럼 멋진 결혼상대 이야기를 그리고, 용을 죽일 검을 만들겠다는 아이는 조금 특이하네.


하지만, 절대로 말해서는 안되는 결말 이후의 이야기.


구해낸 공주는 평생을 탑에 같혀있었기에, 왕국으로 돌아가는 고된 여행길을 버티지 못하고 풍토병에 시름댔고,

늦어지는 용사와 공주의 귀환에 국왕은 섵불리 이웃 왕자를 입양해 차기 왕위 계승권자로 임명해버렸고,

불안정한 왕국의 정치는 결국 귀족들의 영지간 다툼 끝에 내전으로 이어졌고,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공주와 용사는 도망쳐 둘만의 가정을 꾸리게 되고,

사라진 용사는 이후 인간의 위기에도 나서지 않아, 결국 대륙의 절반이 불타는 동안에도 숨어버린 이야기.


역사가 눈돌린 진상, 자랑스레 박제된 동화, 승리로 장식한 페허.


우리는, 눈을 현혹시키는 보석으로 장식된 책장을 걷어내고, 행간 너머에 숨겨진 과거가 잊혀지지 않게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언젠가 필요로 하는 이가 나타나면, 모아둔 자료를 전달할 수 있게끔.

그렇게 오늘도 나는 짐마차를 이끌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노래가락을 흥얼이는 여행가.


다음의 이야기는 어디서 들려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