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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쓴 거




 13번가를 지나 대로에 들어서자 앤네는 찬 바람이 밀려오는 것을 또렷이 느꼈다.

 5m 간격으로 설치된 가스등에서 아직 다 타지 않은 석탄 냄새가 풀풀 나고 있는데도 그랬다.

 앤네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렸다.

 금방 기억 속 대로와 지금 대로의 차이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체온이 없네."


 대로. 도시의 중심부에서 열두 방향으로 뻗어나간 이 놀라운 벽돌길에서는, 가스등의 환한 노란 빛 아래로 늘 마차와 사람이 돌아다녔다.

 마치 무브먼트에 금박으로 새겨진 열두 숫자 위를 돌아다니듯이 말이다. 그림자 구름 도시의 시민들은 그 세련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에 닿기 위해 넓은 대로를 애용했다.

 앤네는 눈을 감고도 한창 때의 풍경을 그릴 수 있었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제발 조용해졌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린 기억도 났다.

 그러나 금박인 줄 알았던 장식은 사실 네리오나이트였고, 사람들은 길에서 걷던 자세 그대로 응집체가 되어 죽었다.

 이제는 관리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가스등이 아픈 숨을 토하고, 그 숨결이 그림자 구름 떼를 쓸고 지나갈 뿐인...죽은 곳이었다.

 뛰어가는 형상. 걸어가는 형상. 호루라기를 물고 몽둥이를 든 순경의 형상. 개가 한쪽 다리를 쳐들고 오줌을 갈기는 형상. 그 외 기타 등등. 그림자 구름 떼가 대로를 새카맣게 메우고 있었다.

 한적했지만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벤데타 코르사. 벤데타 코르사. 작업을 시작하자."


 앤네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벤데타 코르사를 빼 들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그림자 구름 (키가 크고 연미복을 입은 신사였다.) 의 가슴팍을 찌른 다음 위로 올려 정수리까지 이어지는 선을 그었다.

 그러자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네리오나이트 펜던트였다.


"0.5캐럿. 쓸만하네."


 앤네는 기계적으로 펜던트를 챙겼다.

 쓸 데가 있었다.

 한편 보다 작은 덩어리로 쪼개진 응집체는 천천히 부서지며 하늘로 올라갔다.

 앤네는 이 작업을 20개의 그림자 구름에 똑같이 가했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앤네의 주머니는 네리오나이트 장신구로 묵직해졌다.

 하늘은 응집체 입자가 퍼지며 점점 잿빛으로 변해갔다.




 앤네가 도시의 중심부 안으로 들어섰을 때, 뮹랴이는 작동이 멈춘 분수대에 걸터앉아 철 지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신문 1면에 네리오나이트 광산을 발견한 기념비적인 순간을 박아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광산의 발견은 5년 전, 아포사이트 주식회사에 의해서 이뤄졌다.

 밝은 자줏빛 츄리닝을 입은 이방인은 앤네를 보자마자 우호적인 태도로 까딱 고갯짓을 했다.

 가슴 부분의, A와 P 가 커다란 눈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 그려진 배지가 눈에 띄었다.

 

"앤네. 여기서 볼 줄 알았지. 하늘이 더 시커메졌는데 아마 범인은 너겠지?"

"신경 꺼. 영업사원."


 앤네는 일부러 벤데타 코르사를 왼손으로 쥐고 분수대를 지나쳤다. 왼손은 뮹랴이 쪽을 보는 손이었고, 뮹랴이는 벤데타 코르사에 대해 아주 잘 알았다.

 Che la mia ferita sia mortale. 내가 남기는 모든 상처가 치명적이기를.

 벤데타 코르사는 피의 복수를 의미한다.

 여기서 뮹랴이는 앤네의 의도를 이해하고 조용히 사라져야 했다.

 조용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성질을 긁지는 말아야 했다.

 하지만 앤네가 1번가를 향하면서 널리고 널린 그림자 구름 중 유독 뚱뚱한 하나를 실수로 쳐서 무너뜨렸을 때, 뮹랴이는 얼굴을 차갑게 굳히면서 앤네를 멈춰 세웠다.


"부끄럽지도 않나?"

"뭐가."

"넌 테러를 벌이고 있는 거야. 가엾은 희생자들의 쇠락한 형상을 부수고 하늘을 오염시키고 있잖아. 당장 그만둬."

"하. 정정할게. 첫째. 난 테러리스트가 아냐. 오히려 이 사단을 해결하려고 고생을 사서 하고 있지. 둘째. 남들의 몰락을 가지고 돈벌이나 하려는 니네 아포사이트보다는 나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앤네는 멸시 어린 눈으로 뮹랴이를 쏘아보았다.


"너희는 내 친구 미여그를 죽였어. 사업을 벌여야 한다는 이유로."


 네리오나이트로 인한 가스암이 도시 전체에 창궐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아포사이트 주식회사가 그림자 구름 도시를 찾아왔다.

 시민의 대부분이 그림자 구름으로 변해 죽은 시점이었다.

 가슴에 반짝이는 배지를 단 영업사원 떼거지는 흥미로운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 도시의 몰락을 세세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 무렵에 미여그는 아직 살아있었다.

 하반신은 이미 구름 같은 테라토마로 응집되었고, 가스등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서있을 뿐이었지만...가망이 없지는 않았다.

 미여그는 영업사원을 보자마자 소중한 네리오나이트 목걸이를 내어주며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우린 사칙을 따랐을 뿐이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이랑은 명백히 다르지. 대기 환경을 파괴하고, 고인들을 모욕하는 짓거리 말이야."

"아무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너한테는 좋겠지."


 아포사이트 주식회사는 미여그를 '구조' 하여 병원이 아니라 회사 소유 연구소에 데려다 놓은 다음, '보호' 를 위하여 몇 가지 '검사' 와 '관찰' 을 '적절한 기간 동안' 시행했다.

 그렇게 미여그는 죽었다.

 "그림자 구름 도시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종말 관광으로 으스스하고 오싹한 휴가를 즐겨보세요! 가스암의 발병부터 사망까지 모든 정보도 구체적으로 제공해드립니다!" 라고 쓰인 홍보 전단이 외부 도시에 뿌려진 것은 그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