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이랑 키워드로 공통 주제 정해서 글쓰기 도전해봤습니다.


주제: 손톱, 샤프심, 당근

...지금 봐도 ㅈㄴ 뜬금없는 단어 조합이네...;;



***


그그그극.
가가각. 가각...


쉴새없이 마룻바닥을 거칠게 긁어내리는 소리.

코끝을 간질이는 비릿한 혈향.

그 사이로 스며드는 것은, 마치 고장난 기계처럼,

삐걱, 삐걱.

거친 쇳소리를 내며,

희미하게 이어지는 목소리.


"...살...려...주세......"


***


나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가볍게 상념을 떨쳐냈다.

시선을 돌리자, 나를 맞은 것은 어김없이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있는 종이.

그러나 그 대부분은 여전히 새하얀 백지였다.

나는 기계적으로 부러진 샤프심을 치우고 새것으로 갈았다.

뭐라도 써야 한다.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내 손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갈 곳 잃은 펜을 고쳐쥐고, 어설프게 엮인 활자 위로 성큼 내딛었다.

그러고는 스스로도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문장을 써내려간다.

글이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이것은 되는대로 내뱉은 일방적인 외침, 어쩌면 비명.

아니, 차라리 짐승의 울음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할 정도로, 그것은 아무것도 담지 못한 의미 없는 문자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이미 제대로 된 이야기를 꺼내기엔 늦었다.

제멋대로 날뛰는 글자들이 내 통제를 벗어나 종이 위를 헤집고 다녔다.

이미 당초의 계획은, 미리 정갈하게 다듬어 두었던 이야기는, 흔적도 없이 찢겨 나갔다.

몇 번이고 갔던 길을 지나고, 또 다시 지나며, 종이가 서서히 검게 물들어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이 펜을 멈추는 그 순간,


카각. 가가가가각...


잠깐의 적막 너머로 거칠게 추격해오는, 저 불쾌한 소음의 파도에,

흔적도 없이 잠식되어 버릴 것임을 알기에.


***


그 아이는 햇살처럼 빛나는 아이였다.

어느 한 군데가 특출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모나지도 않은 귀여운 얼굴.

집은 가난한 축에 속했을 터다.

언제나 똑같이 생긴, 오래되고 사이즈도 맞지 않는 옷에, 잘 관리되지 못해 군데군데 끊어지고 상한 머리카락.

조그만 등으로 짊어지기엔 지나치게 커다란 책가방은, 이미 절반쯤 색이 빠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항상 혼자.

때때로 짖궃은 바람에 드러나는 옷자락 틈새로 비치는 살결은, 언제나 멍자국이 빼곡히 수놓아진 채였다.

그러나 그 모든 어둠도 끝내 그의 미소를 꺾진 못했다.

혼자서도 온 거리를 가득 채울 듯, 당당하고 힘찬 걸음걸이.

커다란 두 눈동자에는 절망이나 체념이 아닌, 즐거움의 빛이 어려 있었다.

길가에 활짝 핀 꽃에게도 다정히 인사를 건네고, 조용히 지저귀는 새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무자비한 구둣발에 짓밟힌 잡초를 부드럽게 위로하는 아이.

그에게 말을 거는 모두가 그의 친구였고, 그렇기에 그는 외톨이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여리고 섬세하게 주변을 보살피면서도, 눈앞의 불행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굳센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아아.

그 모습은 마치 버려진 들판을 비추는 따뜻한 햇살과도 같았다.

모두의 발길이 끊기고, 기억에서 잊혀진 채, 마침내는 칙칙하게 죽어버린 그곳을, 상냥하게 어루만지는 햇살.

도움이 필요한 이가 있다면, 그는 그것이 누구일지라도 기꺼이 그 빛을 나누어 주려 하겠지.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평생토록 넘치는 불행에 잠겨 있었던 나로서는.

재물을 쌓아 두고도 언제나 빼앗길까 두려움에 떨며 살았고, 주변에 사람은 많았지만 그중에 진정으로 친구라고 말할 만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와는 달리, 나는 언제나 거짓된 미소만을 지을 줄 알았기에,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천진한 미소가 공포와 고통으로 추하게 일그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앙상한 배를 갈라 내부를 헤집어,

기어이 그 속내를 파헤치고 싶었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싶었다.

새까맣게 비틀린 속내를 감추고, 그 위에 그린 듯한 미소를 덧칠했다.

혹여나 안쪽이 비치지 않도록, 두텁고 꼼꼼하게.


***


친절한 어른을 위장해 다가간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낯선 사람에서 주변인으로 숨어들고, 그렇게, 얼마 없는 경계심마저 완전히 허물어 버린다.

순진하고 착한 그 아이는,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이 못내 기뻐 보였다.

무해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는 아이의 장단에 맞춰, 달콤하게 꾸며낸 말을 건네고, 있는 힘껏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조금이라도 주춤거리면 상처받은 척, 같잖은 연기를 펼친다.

사실은, 어쩌면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거짓으로 덧칠하고 또 덧칠해도, 어느샌가 스며나오는 본질을 완벽히 막아낼 순 없을 테니.

하지만 그럼에도 따라올 수 밖에 없겠지.

너는 상냥한 아이니까.

오히려 위태로운 모습을 알아버렸기에 외면하지 못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망울을 빛내며, 요란스럽게 거실에 들어서는 그의 무방비한 뒷모습을,

나는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


시멘트 벽 너머로 애원하는 흐느낌이 들렸다.

단단한 철문을 손톱이 부서지도록 긁어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철문을 걷어찼다.

그러면 곧 간헐적으로 들리는 딸꾹질 소리와 함께 조용해지겠지.


가각 가각 가각 가각 가각...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불쾌한 소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다.

이제 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부러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굳게 닫힌 철문의 자물쇠를 열고,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손목으로, 억지로 문고리를 잡아 비틀었다.

이윽고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나를 맞이한 것은,

적막에 감싸인 텅 빈 지하실.

그래, 그뿐이었다.

아까까지 들려오던 소리는, 그저 환청이었나.

됐다.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했으니, 이쯤에서 돌아가도 되겠지.

...그럴 터인데.

어느샌가 나는 홀린 듯,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극. 가가각.
카가가가가가가각...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예의 그 소음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렬한 기세로 사방에서 덮쳐오기 시작했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남아있던 피냄새가 나를 옥죈다.

나는 다급히 샤프를 찾았다.

떨리는 손길로 샤프심을 교체하려 했지만, 땀에 젖은 손가락에 미끌려, 바닥으로 쏟아진 샤프심들이 산산히 조각났다.

다시 주워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조각조각 나뉘어 떨어진 파편을, 나는 망연한 얼굴로 주워들었다.

금세 손끝에서 바스러지는 흑연 가루.

시간이 없다.

더 이상은-.

점점 더 가까워지는 소름끼치는 소리.

순간 소음의 근원이 바로 지척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지럽다.

머리가, 머리가 아프다.

몸을 가누기가 어렵다.

귀를 틀어막는다.

그러나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나는 창고 바닥에 엎드린다.

손톱으로 바닥을 긁는다.

온 힘을 다해 긁는다.

손톱이 엉망으로 부러진다.

손톱 끝에서 피가 배어나온다.

그러나 나는 그만두지 않는다.

그만둘 수 없다.

괜찮아.

들리지 않아.

들리지 않아.

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

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들리지않아...


아아.

드디어-

나는 해방된거야



...등 뒤에서 희미하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



손톱(긁는 소리)-살인에 대한 죄책감
샤프심(쓰는 소리)-죄책감으로부터의 도피
당근-지하실에 납치감금하기의 대명사(?)

사실 나도 키워드 맞춰서 막 짜낸거라 이게 뭔지 모르겠다
모두 당근을 흔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