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지나가며 날카롭게 철도를 베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위에서 울리던 시커면 매연의 커다란 비명도 어느새 크게 다시 울리더니 이내 멈추었다. 사람들은 움직였고 나역시 움직여야 했다. 많은 인파다. 그곳에서 난 낑겨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보통일이 아니다. 넓은 곳으로 발을 딛고 나면 한숨 돌렸다는 듯이 크게 숨을 쉬었다. 주변을 둘러 보았다. 연기가 은은하게 퍼져있다. 탄내와 사람의 눅눅한 향기가 섞인 향들을 맡자니 견딜수가 없어 난 어서 빨리 기차 곁을 떠나고 싶었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기차는 뒤에서 다시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내가 뒤를 돌아본 순간에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난 역의 작은 벤치에 앉아 짐가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지퍼를 열어 안을 보았다. 무언가가 사라졌으면 어쩔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다행이 쓸대없는 생각이었다.

가지각색의 발걸음 사이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언가 재미난걸 찾으려 했지만, 별 흥미롭지도 않고 다 가지각색으로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 뿐이었다. 그 순간, 유독 뚱뚱한 한 남자를 보았는데,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시뻘건 얼굴에 살짝 웃음이 올라왔다.

“성철씨!”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난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나에게 손을 흔들며 작은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영아!“

나도 벤치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녀는 나에게 뛰어가 나를 덥석 안기 시작했다. 나도 그 포옹을 부드럽게 맞이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잡은 채로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픽- 하며 서로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얼마만이야.“

”그러니까요. 잘 하다 왔나요?“

”그럼, 덕분에 휴가도 길게 받았어.“

”그거 좋은 소식이네요. 아버님이 많이 보고 싶어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항상 널 먼저 보고 싶었어.“

그녀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 어깨를 쳤다. 나도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는 그렇게 역으로 빠져나왔다.


우리는 손을 잡으며 길을 걸어갔다. 이곳이 시골이어서 역으로 나오면 바로 많은 밭들과 낡은 집들이 보였다. 한동안을 도시에 살면서 다시금 친숙하면서도 낯선 이곳을 오자니, 적응하지 못하면 어쩔까 생각했지만, 풀잎이 내는 그 푸르른 향기에 바로 생각을 집어 치웠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났다. 흙길을 얼마만에 밟아 보던가, 서서히 저무는 여름에 보이는 저 잠자리들을 얼마나 그리워 했는가, 바람에 나부끼는 어린 벼들의 춤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가. 경적과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가 서서히 저무는 것 같은 그 두려움은, 이제 고요한 이 시골에선 문제될게 없었다.

”나 많이 보고 싶었어?”

“두 말하면 잔소리죠.”

“얼마큼?”

“글쎄요. 크기를 못 정하겠네요.”

“그정도로 작은가?”

“에이, 설마요!”

“농담이야. 허허…. 아버지는 잘 계신가?”

“네. 다행이도 병이 호전되고 계셔서….“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모자도 날라갈 것 같은 강풍이었다. 정장이 나부끼고, 영이의 치마도 힘 없이 나부꼈다. 우리는 모두 팔을 들었다. 나는 모자를 잡았고, 영이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막기 위해 얼굴을 막기 시작했다.

둘다 표정은 찡그린 표정이었으나, 난 괜사리 기분이 좋았다. 이런 시원한 바람도 맞아본지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벼들이 부딫치는 그 우슬우슬거리는 소리… 난 바람이 멈추고 짧은 큰 소리로 웃었다.

”왜 그래요?”

영이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물었다.

”아냐 그냥…. 바람이 불어서.“

”바람 부는거 좋아하는 양반이었나.“

”아니,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서 그래.“

”바람은 도시에도 많이 불잖아요.“

”그렇긴 한데, 거기는 불순물 같은게 섞여 불어오거든. 차 메연이나, 가게에서 뿜어대는 수증기들. 때문에 시원한 바람을 잘 맞아보진 못했어.”

영이는 순응하듯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도시에 부정적이게만 말하네요. 난 가보지도 못했는데. 거기는 이렇게 걷지두 않고 맨날 차타구 댕긴다메요? 우리는 맨날 걸으면서 이리 됐다, 저리 됐다 알리기만 하구. 물 퍼올때도 그 무거운 양동이 들자니 허리랑 무릎이 견딜수가 있어야지.“

영이는 못마땅하다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난 조금 귀여워 보였다. 난 작게 웃으며 말했다.

”어느 한 곳이든 한동안 머물게 되면 다른 한 곳을 그리워하기 마련이야. 난 도시에 있으면서 이런 깨끗한 공기를 그리워했어. 이 고요도. 그리고 아까 강하게 불던 바람도 말이야. 당신도 도시에 살다 보면 이런 곳을 그리워하게 될껄?“

”칫, 그런 말을 하면서도 맘속으론 도시를 그리워하고 있죠?“

난 영이의 말에 말을 하다 멈추었다. 문뜩 옛날에 시골에 살면서 겪은 불편한 것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초반에 도시에 왔을때는 난생 처음보는 편리한 새로운 것들에 감탄하며 살아왔는데, 지금은 그냥 내 하루에 한 편이 되어갔다.

또 내가 그리워했던 것들도 계속 겪다 보면 다시 내 하루의 한 부분이 될것이고, 난 다시 도시를 그리워하겠지.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앞으로의 시골에서 보낼 나날들을 걱정하진 않았다. 지금은 오히려 더 기대할 뿐이었다.

“하하….. 나도 잘 모르겠네.“

”거봐요.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줄 알아요? 아픈 당신 아버지 부양하느라고 더 늙은거 같아요.“

그 소리를 듣고 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확실히 주름은 전 보다 늘었지만, 그 탱탱한 피부와 붉게 물든 고운 입술은 그대로였다. 아직 영이는 젊은 여자의 나이 답게 청춘을 유지하고 있었다.

문뜩 나도 내 얼굴이 궁금하여 내 볼을 쓰다듬어 보았다. 까슬까슬한 짦은 수염이 집히고, 눈가의 피부는 텁텁하게 말라있었다. 도시에 살면서 영이 눈치 안보고 담배를 너무 많이 폈나 생각했다. 나는 도시에 살면서 어쩌면 서서히 게을러졌을지도 모른다.

”아냐. 당신 아직 예쁜데 뭐. 되려 내가 더 늙어진거 같아.“

”설마요. 나 봐봐요.“

그녀는 손을 뻗어 내 턱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마주치게 했다. 그녀의 눈은 생기가 돋는 깊은 구멍의 광안이었다. 태양이 쨍쨍하게 비춰져서 영이의 검은 눈에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작은 당황스러움으로 영이를 응시했다.

이내 영이는 손을 놓더니 말했다.

“좀 더 남자스러워졌네요.”

어설프게 말한 그녀의 대답이었다. 난 영이의 대답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조금의 정적이 흘렀다. 문뜩 제대로 응시한 그녀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깊숙히 잠들어 있던 뭔가가 깨어난 느낌이 들었다. 약간의 야릇한 기분이 돌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영이의 작게 심퉁난 얼굴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난 다시 영이를 돌려 보았다. 그녀도 뭔가를 느꼈는지 역시 나를 향해 눈을 마주쳤다. 난 순간 놀라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난 확실히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한 사랑의 한편이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것이었다.

“저기.”

“네?”

“키스할까?”

“지금요? 에이, 안되요.”

“아무도 없는데, 집에 가면 눈치도 보이고.”

“그래도…”

영이는 뜸을 들이며 앞을 보고 있었다. 말은 사랑을 거부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깊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난 어느 순간부터 놓은 영이의 손을 다시 잡기 시작했다. 적당한 고온이 내 손에 스며들었다. 난 영이의 손을 부드럽게 꼭 잡았다. 영이 또한 순순히 그 압박을 받아드렸다.

영이의 손을 잡자 그녀의 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영이는 항상 부끄러울 때 귀 부터 붉어지곤 했다. 볼이 붉어질려면 난 다시 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이런 시간이 조금씩 지나가니 점차 심장은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내 고요했던 내 귀에 심장 박동 소리로 가득 채워질 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영이가 크게 웃는 것이었다. 난 황당함에 영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영이는 숨이 가쁘게 웃다가, 이내 진정하고 말했다.

“당신 얼굴이 홍당무처럼 엄청 빨개진거 있죠.”

영이의 말에 난 내 얼굴을 만져 보았다. 확실히 얼굴엔 열이 있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 내 긴장도 소리는 숨길 수 있어도 겉으론 숨길 수 없었나 보다. 난 부끄러움에 아무말이나 내뱉었다. 영이는 내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계속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는 그렇게 우물쭈물 하며 길에 서있다가. 한 사람이 우리에게 뛰어오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한 꼬마 아이가 영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의아심에 달려오는 그 아이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누나!“

”왜그래? 뭔 일이야?“

마침내 그 꼬마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지금….“

꼬마는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말도 못할 정도로 달려왔다는 것과, 찡그린 그 표정, 뭔가가 심상치 않았다. 난 꼬마에게 뭔 일이냐며 대답을 재촉하였다. 그러자 꼬마가 말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뭐? 뭐가 말이냐? 빨리 말해!“

금방이라도 가슴이 철렁거리는게 무너저내릴 듯 했다. 영이도 영문을 모를 심각한 표정으로 꼬마의 대답을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꼬마는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빨리 기다리신대요!”

”뭐?‘

“기다리신데요. 어서 오시라네요.”

뜻밖의 꼬마의 대답에 난 다시 안정을 찾으면서도 화가 올랐다. 때문에 난 꼬마를 잡아 머리 한대를 쥐어 박았다. 꼬마는 아프다면서 죄송하다고 격하게 몸짓했다. 영이도 이런 꼬마를 보고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이놈이 벌써 어른을 골려먹냐.“

”헤헤.. 죄송해요.“

영이의 소박한 웃음에 사태는 진정되었다. 골탕먹었다는 사실에 조금 서먹한 기분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거짓말로 아버지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더 확실하게 알았다는 사실에 남몰래 안정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길을 걸어갔다. 그 꼬마도 같이 길을 걸어가며, 꼬마에 대한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영이의 어린 동생이었고, 집에서 영이와 같이 아버지를 돌보던 아이였다고 한다. 난 이런 기특한 행동을 듣고 나중에 한 번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할 때는 이미 하늘을 주황빛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저 끝면에는 옅은 암흑이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마중을 나오신 건 바로 어머니셨다.

”아이고, 아이고. 내 아들 왔나.“

”아유 어머니.”

우리는 서로 깊게 포옹했다. 그 짧은 순간에 어머니의 포근함을 느꼈다. 특히 옷에 깊게 새겨진 푹푹한 냄새 마저도 얼마나 그리웠는지, 난 더 어머니를 껴안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어머니가 손을 놓고, 어서 아버지께도 인사를 드리라고 말하셨다. 난 서둘러 신발을 벗고 두텁한 마룻바닥에 올라 방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누워계셨다.

“아버지!”

“응, 오냐, 오냐 그래 왔느냐?”

난 몸을 이르킬려 했던 아버지의 행동을 손을 흔들며 저지했다. 아버지는 괜찮다며 몸을 이르켜 세우셨다. 난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안부인사를 건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모두 모이고, 오랜만에 따뜻함이 맴도는 저녁밥을 먹으며, 어둑어둑한 저녁을 만긱하였다. 그 감격했던 시간이 벌써 지나가고 어느새 지금은 잘 시간이 되었다.

달은 빛나고 있었다. 도시에도 달을 본적은 많았지만, 그 어린 시절이 젖어있는 마룻바닥에서, 저녁의 싸늘함을 맞으며 먼지 구름 하나 없는 맑은 달을 보고 있으니 마음은 어느새 달이 만든 빛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러자 뒤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온건 영이의 얼굴이었다.

“안자요?”

“자야지. 근데, 너무 예뻐서.”

“뭐가요?”

“저 달이.”

“하핫, 어짜피 내일도 볼 달인데, 그렇게 빤히 볼 필요가 있데요.”

“그래도, 저건 의미가 있어. 저건 어쩌면 거대한 향수야…. 절대 잊게 하지 못하는 마음의 한편이라구. 절대 잊지 못하는…”

영이는 그런 내 모습을 말 없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말을 꺼냈다.

“어서 들어와요. 밖에 많이 추울텐데.”

”그럴까.“

난 몸을 틀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내음과 동시에 화사한 향기가 맴돌았다. 어디선가 느껴보던 그 두근대는 순간이었다. 난 무심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듯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점점 가까워져 갔을 때, 그때, 우리는 막을 수 없는 하나의 타오르는 생명이 되어 있었다. 서로를 느끼며 그 싸늘한 저녁을 보냈다.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내 귀에 맴돌았다. 작게 속삭이며 사랑을 신음하던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