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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 너 요리사였어? 한국이라 불리는 곳에서 말이야."
"정확히는 학생이지만."

나하고 키스는 자리에 앉아, 가방 속을 정리했다. 다행히 잃어버린 물건들은 없었다. 식칼, 도마, 조리용 수건, 요리책, 그리고 학교에서 시험용으로 써먹으려 했던 소시지와 떡볶이용 떡이 담긴 플라스틱 봉지들이 그대로 내 가방 속에 담겨 있었다.

"요리를 전공으로 배우긴 하지만, 아직 정식 요리사가 된 건 아니야. 자격증 한 개도 없는 상태인데."
"정식이 아니더라도, 매우 대단하다고 보는데?"

양손으로 식칼과 프라이팬을 들고 있던 키스는, 가방 안에 있던 요리책을 꺼내 보았다. 그녀가 알 수 없는 언어인 한글이 적혀 있었지만, 눈으로만 봐도 군침이 돌 거 같은 사진으로 찍혀진 요리들 덕분에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오오-하는 감탄사와 함께.

키스의 저 모습, 왠지 내 어릴 적 모습 보는 거 같네. 나 역시 요리책 볼 때 음식 사진만 보고 나머지는 뒷전이었는데.  군침이 흘릴 정도로 당장 사진속에 손을 넣어서 음식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그럴수도 없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같은거였다. 

오죽 하면 종이체 찢어서 입에 넣으면 맛을 느낄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했는데.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배고플때마다 이렇게 책에 그려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거잖아. 집에서든 밖에서든 말이야. 나 같아도 엄마, 아빠 그리고 모두에게 직접 구운 쿠키를 주면, 매우 좋아하시는데. 아이구 우리 귀여운 딸 그리고 와아 키스 선배 고마워요-라면서."
"네 말대로이긴 해 키스. 가끔 혼자 있을 때 마다 간단한 요리를 해먹어. 연습 좀 할 겸. 단지..."

말이 끊기자, 요리책을 읽던 키스는 내 쪽으로 쳐다보았다. 마치 내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은 체 앰버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면서. 

"부모님은 내가 요리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셔."
"뭐?"

분명히 들려왔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라는 식의 반응이. 양손으로 들고 있던 책이 내려오면서 드러낸 표정도 똑같은 단어로 말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내가 조리사의 길로 걸어가는 것을 별로 안 좋게 생각하셨거든. 누나나 형처럼 의사나 변호사가 되시길 원하셨어. 요리사는 장래성이 없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말이야."
"좋아하는 것을 전공하는 것이 뭐가 문제야?"

물건들을 정리하던 내 손이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한 얘기가 이상하다는 듯, 앰버색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키스가 보였었다. 물끄러미-하는 효과음을 내는듯한 분위기로.

"나 같아도 연금술을 배운 것도 내가 원해서 한 건데,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좋은 거 아니야? 설마 안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얻는 것도 많을테고. 무엇보다."

키스는 가방 속에 있던 붉은색 액체가 담긴 병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 궁금했는지 불빛에다가 비춰보기도 해보고 찰랑-하는 미약한 소리가 들릴 정도로 병을 흔들기도 하였다.

"요리를 잘한다면 어디든 환영이잖아. 여관에 요리 잘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맛집이 될 수 있고, 모험가들이랑 모험을 떠날 때 맛있는 밥만큼 든든한 한 게 없잖아?"
"그건…."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돌이 올라온 듯 억눌러진 마음 때문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 오케아나라는 국가에서는 그러겠지. 어디를 가도 요리사는 환영받는다는 것은.

하지만 한국은?

장래성이 없는 직업, 백종원 같은 스타 쉐프가 되는 것은 10명 중 한 명이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니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내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말이다.

무릇 부모님뿐만 아니라 누나하고 형도 늘 나한테 하는 말이다. 변호사 그리고 의사라는 동네에 자랑할 만한 직업을 가진 두 분이 말이다.

"괜찮아. 지금 얘기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깨에 따스함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키스는 미소를 지은 체, 한 손으로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고 있었다.

"힘들면 잠시 묻어두다가 편할 때 해도 돼. 괜히 무리했다가는 마음만 아파지니까. 지금 너 표정 참 어두워졌다? 슬픔으로 가득 찼고?"
"내 표정이?"

갑자기 키스는 양손으로 내 볼을 당기기 시작했다. 반죽하듯 주물럭거리면서.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뭐-뭐 하는 거야 뜬금없이."
"미소를 그려주려는 겁니다 성운 학생? 내 예쁜 미소를 보고 따라 해봐. 그렇게 음울한 표정만 짓지 말고. 사내대장부가 여자애한테 그런 표정을 지으면 써?"

미소를 키스를 보니 내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역시 미소하고 어울리는 소녀였다. 그래도 아름다운 얼굴에 지어진 미소 덕분에, 주변을 환하게 해주었다. 어떤 어둠도 밝게 해줄 것만 같은.

"아 성운아, 나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네 가방 속에서."
"뭐를?"
"체력 포션 같은 거? 그 상점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약 말이야."

체력 포션? 빨간 약? 머릿속에 여러 그림이 그려졌다. 나한테 그런 게 있던가? 쟤처럼 가방 속에 약 같은 것을 넣었을 리가 없는데. 소스라면 몰라도.

잠깐....소스? 키스가 언급한 빨간 약 같은 것은 하나밖에 없는데?

"이거 말이야. 참 재미있게 생겨서 보고 있었어. 이것도 한국에서 가져온 거야."

내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키스 손에는 병이 들려 있었다. TABASCO라고 적힌,  하얀색 스티커가 붙여진 손바닥 크기의 유리 재질의 병을. 붉은색 액체가 병이 키스에 손에 흔들림과 함께 출렁거리고 있었다.

"혹시 요리 재료야? 재미있어 보이길래 아까 전 부터 보고 있었는데."
"매운거."
"....에?"

키스의 표정이 변해버렸다. 이슬과 같은 땀 한 방울이 이마를 타고 내려오면서. 스르륵-하게.

"방금 매운 거라고 했어?"
"엄청나게. 타바스코라 불리는 고추로 만든 거야. 식사에 매운맛을 겉들이고 사용해. 주로 서양식 레스토랑에서 볼수 있는-"
"그만."

내 말을 멈추게 한뒤, 키스는 나와 병을 번갈아가 보았다. 흔들어보기도 하고, 킁킁-살짝 냄새를 맡기까지 한 핑크 머리카락의 소녀는, 위협을 느꼈는지 내 손을 꼭 잡은 체 병을 쥐게 하였다.  보지 말아야 할것을 봤다는 표정과 함께.

"에헤헤...그냥 너 가져."

병을 주는 키스의 손에서 미약하게 떨림이 느껴졌다. 진동이 내 솜으로 전달 될 정도로.

"왠지 맛보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아. 치워줘."
"잘생각했어."

소스를 건네받은 뒤, 여전히 변하지 않는 표정의 키스를 바라보았다. 에헤헤-하는 작은 웃음까지 내뱉으면서 매운 거 싫어하나? 매운맛하고 거리가 먼 여자애로 보이긴 하지만.

파닥-파닥-파닥-

“아 드디어 왔다.”

어디선가 날갯짓 소리가 들려와 키스가 팔을 뻗자, 무언가가 그대로 그녀의 팔 위에 앉았다. 강아지만한 크기의, 전신이 붉은색 비늘로 감싸져 있고 머리 부분에는 작은 뿔이 달려져 있는 도마뱀 비슷한 거였다. 비늘의 색에 맞게 날개가 달린 것을 보니 설마..

“드래곤이야?”
“맞았어. 내 사역 마이자 레드 드래곤인 블레이즈야. 블레이즈 인사해. 새로운 친구인 성운이라고 해.”

캬악-하면서 손을 흔드는 새끼용을 향해 나 또한 손을 흔들었다. 이 녀석 상당히 똑똑하네. 주인 말을 알아듣는 것도 모자라 저렇게 손까지 흔드니.

키스의 하얀 팔 위에 앉아 있던 블레이즈는 검지로 추정되는 손가락으로 복도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는 거라고는 카악-하는 울음소리 정도일 뿐이니.

“수고했어 우리 블레이즈군. 내 팔 위에서 쉬어 이젠.”
“뭐라 하는지 알아들어? 난 못 알아 듣는데.”
“사역마하고 계약자는 교감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어.”

키스가 블레이즈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나 또한 바라보았다. 아까 전 혼자 있었을때와 비슷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기만 해도 집어 삼킬 듯한 칠흑의 어둠이. 무방비한 상태로 갔다가는 뼈 조각 조차 남기지 못할것이라는것을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다행히 안에는 나 혼자서 상대할만한 하급 타입 몬스터들밖에 없는데, 아직 출구로 추정되는 곳을 못 발견했대.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지 뭔가 알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잠깐 너도 그럼 길을 잃었다는 거야? 나가는 곳도 모르고?”
“아하하……그렇다고 볼 수 있지.”

얼떨결한 미소를 지은 체 검지로 천정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어갔다.

"떨어졌거든. 다른 동료분들이랑 파티 맺고 던전 돌다가,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아 혼자 낭떠러지로 떨어졌거든. 그래서 나 하고 블레이즈가 여태까지 나갈 곳을 찾고 있었어. 일행분들하고 합류 하기 위해서."

캬악-하고 블레이즈가 다시 허공으로 날아오른것을 확인 한뒤, 키스는 옆구리에 차던 책을 펼쳤다. 깃털 팬으로 무언가를 적더니 페이지 위에 푸른색의 지도가 떠올랐다. 하얀색 점이 지도 중간 부분에 깜빡 거리면서.

"그럼 이젠 어떻게 할 거야? 네 말대로라면 우리 둘다 맨 아래쪽, 깊숙한 곳에 갇힌 건데."
"연금술사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해서는 안 된다. 늘 진리를 탐색하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 그것이 연금술사다."



키스는 혀를 쏙 내밀고 윙크를 한뒤, 목에 걸려 있던 펜던트를 민소매 안에서 꺼내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원형 안에, 삼각형이 위아래로 붙여져 있었다. 삼각형 안에 있는 작은 원형에는 역삼각형이 붙여져 있었다.


"교수님이 늘 신신당부하시던 말이야. 연금술사 학과의 급훈이고."


펜던트를 집어넣은 뒤, 키스는 펼치고 있던 책을 다시 닫은 뒤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의미로 제일 먼저 1차 목표를 먼저 달성 하는 것에 집중하는 거야. 그래야 탐사에 좀 더 수월해 질 테니까."

"1차 목표라 하면?"

"캠핑하기 좋은 장소를 찾기."


캠핑이라. 숙박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 낸다는 건가 즉? 먹고 자기 좋은 장소를.


"던전을 탐사하면서 1차 목표가 바로 쉴 곳을 찾는거야. 불을 피울 수 있고, 텐트를 칠 수 있고, 피곤 할때는 잘수 있는 장소를 말이야. 임시라지만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 거대한 영향을 주는데. 특히 성운이, 네가 어쩌면 거대한 도움이 될지 몰라."

"나?"


내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검지가 저절로 내 몸을 가리켰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했지만, 키스는 여전히 그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싸움 같은 거 할 줄 모르는데. 집어넣은 아는 재주란 것은 요리밖에 없고."

"그 요리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랍니다, 성운이 학생. 그것도 많이요. 그러니..."


싱긋 미소를 지은 체 분홍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뒤 치마 가락을 양손으로 잡은 키스였다.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앞으로 맛난 식사 부탁드려요? 쉐프 정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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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그림은 Nijijourney로 그린것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