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지 않은 벚꽃 나무 아래. 

꽃잎은 이파리가 되기 전에 제 손을 놓아버렸다. 


  아이보리색 커튼 너머로 비치는 햇살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오후의 햇볕은 퍽 따갑기에 커튼이 도움이 될까 하여 설치해 놓았던 것인데, 생각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수영은 오렌지색으로 물들어가는 탁자 위를 바라본다. 반 즈음 채워져 있는 유리잔, 빛바랜 약 봉투가 놓여 있다. 한숨을 쉴까 하다가도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마저 끝내야지 하며 수영은 손을 뻗었다. 부스럭대는 비닐 속으로 손을 넣어, 언제 받아온 것인지도 모를 약들을 손에 쥐었다. 한 손에는 약을, 다른 한 손에는 유리컵을 잡고, 물을 한 모금. 간단하게 마른 입안을 적신다. 곧이어 네댓 알쯤 되는 약들을 무성의하게 입안으로 털어 넣고는 고개를 숙인다. 자신만의 약 섭취법이었다. 목에서는 ‘꿀꺽-’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제 속으로 약이 아마 넘어갔으리라, 수영은 침을 다시 한번 삼키고는 고개를 들었다. 

  좁은 거실, 그 중앙에 놓인 의자. 군데군데 칠은 벗겨져 있고, 파인 곳도 있다. 수영은 커튼 너머의 햇볕을 덧씌운듯한 색의 의자를 바라본다. 의자를 중심으로 한쪽 벽에는 책장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전집이나 언젠가 떠나리라 생각한 나라들의 회화책, 도서관에서 읽은 후 괜찮다고 생각했었던 책들이 꽂혀있다. 책장의 맞은편에는 수영이 애지중지하며 기르던 선인장과 어디서 사 온 것인지 모를 유화 그림이 콘센트를 가리고 있다. 그림에는 푸르른 바다와 돛을 펼친 목조 선박이 그려져 있다. 하이얀 배.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다. 수영은 늘 그런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를 바랐다. 

  발걸음을 뗀다. 바닥이 바닥과 만난다. 오후 내도록 데워지던 바닥은 따스했다. 기분 좋은 까슬거림이 온몸을 타고 올라온다. 수영은 의자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어제, 어쩌면 이틀 전, 혹은 그 이전에 묶어 놓았던 끈을 잡았다. 견고하게 고정해 놓은 끈은 천장이 무너지지 않는 한 떨어질 이유가 없어 보인다. 수영은 다시 한번 양손으로 끈을 잡고는 힘을 실어 당겨본다. 그러나 그 끈은 너끈히 수영의 몸까지도 떠받칠 수 있을 것이다. 

  목에 밧줄을 걸기 전, 커튼을 바라본다. 오렌지색이든 황금빛이든, 커튼의 색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탁자 위에 놓아둔 유리컵 속 물은 투명하다. 바다는 푸르다. 수영은 아주 진한 푸르름을 찾아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수영은 눈을 감았다. 

바다 저 아래는 푸르지 않다. 

수영은 생각했다. 

저 깊은 곳 아래로, 내려가자. 

수영은 몸에서 힘을 떠나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