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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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마선형이 내준 차를 탄 지원 일행은 목적지까지 자동으로 움직이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 씨가 말했다.


“목표가 있는 미래동은 여기서 별로 멀지 않아. 단지 전체에 보안이 엄격하긴 하지만, 해킹으로 어느정도는 무력화시킬 수 있을 거야. 목표는 아파트 1동 28층을 혼자 쓰고 있어. 딱히 가족도 없는 것 같고, 본인 성격인지는 몰라도 아파트 자체 보안을 뚫고 넘어가면 그 안의 보안은 없다고 봐도 무방해. 일단 도착하면 미세스 리랑 알리사가 내려. 레나는 차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인호는 근처에서 경비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진 않는지 감시해. 그리고 꼭 알아둬, 통화로 뭘 직접적으로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그래, 확실히 기억했어.”


“확인했어요.”


차가 멈추자, 지원과 알리사가 먼저 내렸다. 조 씨는 자동차의 설정을 수동운전으로 변경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인호 넌 반대편에 내려줄 게. 둘 다 행운을 빌어.”


지원과 알리사는 아파트 단지의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마치 중세시대 성처럼 한쪽은 자동차가 드나드는 지하주차장 통로가, 다른쪽은 경비실과 보행자용 출입구가 위치해 있었다. 출입구에는 당당하게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의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고, 경비실의 경비원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원과 알리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미래제타 단지. 아파트 22개동 1700세대라고 해요.”


“1700세대? 씨발, 메가타워 하나에 1800세대가 사는데 아주 호화생활이 따로 없구만? 그보다도 저길 어떻게 통과할까? 경비원이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알리사는 후드를 뒤집어쓰고는 경비원을 노려보았다.


“재울까요?”


지원은 다급히 알리사를 제지했다.


“아니, 멈춰. 경비원 하나 제압해 봤자 단지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 통제실에서 CCTV로 우리를 확인할 거야. 단숨에 허가받지 않은 외부인이라는 게 들통날거고, 그럼 순식간에 아파트의 모든 경비원들이 몰려들겠지. 그 틈에서 탈출하는거랑 별개로 그렇게 소란을 피우면 임무는 실패야. 여기서 기다려.”


지원은 경비실의 경비원에게 다가갔다. 보안업체 모자를 쓴 경비원은 인공 안구를 번쩍이며 지원을 스캔하더니 탁자 위로 손을 올렸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는 사람이 여기 사는데, 깜짝 파티를 열어주려고 하거든요? 혹시 집주인 몰래 들어갈 수는 없을까요?”


경비원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지원을 바라보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


“허이고, 나 참. 아가씨, 여긴 외부인은 거주자 허가 없인 못 들어갑니다. 깜짝 파티는 안 돼요. 그 아는 사람 허가를 받던가, 아님 돌아가시죠.”


지원은 아파트 담장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물었다.


“고전적인 수법은 안 통하네. 역시 담장이라도 넘어야 하나?”


“CCTV 이야기한 건 언니 아니었나요?”


“당연히 CCTV는 주의해야지. 알리사, 저기 입구에 CCTV 보이지? 해킹해서 CCTV 영상이 어디로 전송되는지 확인해봐.”


알리사의 두 눈이 반짝이자 시야에 있던 CCTV도 작게 반짝였다.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알리사가 입을 열었다.


“단지 안쪽이네요. 해킹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골치아프네…”


때마침 조 씨에게 연락이 왔다.


“혹시 벌써 들어갔어?”


“그럴리가, 솔직히 난이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니야?”


“방금 레나가 괜찮은 방법을 찾았어. 가지고 있던 프로그램 중에 구세대 바이러스가 있거든. CCTV 중 하나에 이걸 심을 거야. 바이러스는 통신망을 따라 주변 CCTV에 침입해 CCTV 모니터에 녹화된 영상을 전송하지. CCTV가 뭘 찍든 상황실에는 기존에 녹화된 영상만 나올 거야. 하지만 오래는 못 버텨. 구세대 바이러스는 10분이면 서버 내부의 백신에게 소멸해 버리니까. 물론, 미세스 리라면 10분 안에 끝내리라 믿어.”


지원은 자기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다가 말했다.


“씨발, 한번 해보지 뭐.”


바이러스가 모든 CCTV로 퍼져서 본격적으로 가동되는데에는 1분 정도 걸려. 거기서 1동은 바로 앞에 있고, 정문의 보안은 쉽게 뚫을 수 있지. 시작한다.”


지원이 말했다.


“알리사, 해킹 완료되면 저 경비원 재워버려.”


“지금이야!”


그 말과 동시에 알리사의 눈과 머리카락이 반짝이더니 경비원은 하품과 함께 그대로 엎어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를 거쳐 1동 출입문 앞에 섰다. 알리사의 가느다란 손이 도어락 위로 올라가자, 문은 조용히 열렸다. 고급스러운 마감을 한 엘리베이터 문은 몇 초 전에 단 것 같은 버튼을 누르자 잡음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엘리베이터 버튼 역시 손때 하나 없이 깔끔했는데, 버튼 밑에 입주민 용 카드인식기가 붙어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조 씨가 말했다.


“카드를 찍어야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방식이야. 물론 해킹으로 파훼 할 수 있지. 그리고 9분 남았어.”


알리사의 두 눈이 반짝이자 자연스럽게 28층 버튼에 불이 들어오고,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지원은 엘리베이터 구석 천장을 바라보았다. CCTV가 빛을 잃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지원이 물었다.


“내가 지금 저 CCTV를 부수면 문제가 될까?”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지금 CCTV 뿐만 아니라 통신망도 영향을 받았거든. 그 말인 즉 미세스 리가 목표를 죽인다고 바로 기업 병원에서 비행정이 날아오지 않는다는 소리지. 당연히 기업이 도청할 일도 없어지고. 최대한 시간을 버는 거야. CCTV가 모두 멀쩡하다면 혼란은 가중되겠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1개 층에 단 2개의 집 밖에 없는 고급아파트는 아예 바닥이 대리석으로 깔려 있었고, 집의 주인이 보통 재력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오른쪽에는 현관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지원은 왼쪽의 유일한 현관문을 가리켰다.


“알리사, 해킹해.”


알리사는 자연스럽게 손을 문 위에 올리다가 그녀 답지 않게 당황했다.


“이거… 해킹할 수 없어요. 잠금장치가 전자식이 아니라 기계식이에요.”


현관문은 대부분의 집 현관문에 달린 전자식 도어락이 아닌 열쇠를 넣고 돌리는, 수십년 전에 도태된 낡디 낡았지만 확실한 잠금장치로 잠겨 있었다. 지원은 이마를 짚으며 조 씨에게 연락했다.


“조 씨, 목표는 아무래도 20세기에서 방금 타임슬립을 했거나 나보다 더 악랄한 기계치가 틀림없어. 현관문에 잠금장치가 열쇠를 필요로 하거든.”


지원은 조 씨가 한숨을 쉬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귀찮은 자식이네. 알리사, 문 스캔해서 문이랑 연결된 경보장치 같은 건 없는지 확인해 봐. 없으면 강제로 열어버려.”


“확인.”


알리사는 가만히 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연결된 설비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잠궈둔 거예요.”


지원은 양 손을 풀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뒤로 빠져 있어. 힘으로 열어보자고.”


“이제 7분 정도 남았어요.”


지원은 문고리를 꽉 붙잡더니 심호흡을 했다.


‘하나, 둘, 셋!’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금속 손잡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문 뒤에서 울렸다. 둘은 순간 숨을 죽였으나, 집 내부에서 이렇다 할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원은 문에 뻥 뚫린 문고리 구멍을 잡고 한번 더 거칠게 문을 열어 젖혔다. 내부의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몇 차례 들리더니, 3번째로 문을 잡아당기자 마침내 문이 활짝 열렸다. 

지원은 곧바로 총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 안에는 CCTV를 비롯해 그 어떠한 보안장치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반대로 두 사람을 순간 당황하게 할 만큼 화려한 가구들이 그만큼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잘 알고 있겠지만 아무것도 건들지 마. 어디가서 팔아봤자 금방 출처가 들통날 거야.”


그렇게 말한 지원은 마침내 안쪽 방에서 목표를 찾았다. 다크서클이 짙은 두 눈은 표독스럽게 찢어져 있었고, 양 볼에 두꺼비처럼 늘어진 살은 사이버웨어로도 숨길 수 없는 나이와 약물중독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여인은 거칠게 지원을 노려봤으나 공포를 숨길 수는 없었다.


“도, 도대체 뭐야?! 어떻게 들어왔지?”


“사람 하나 잡아먹고, 아주 잘 살고 있었구만?”


여인은 탁자 밑에서 권총을 꺼냈다.


“당장 나가!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


지원은 여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기 총으로 그녀의 권총을 쐈다. 권총은 공중에서 빙그르르 돌다가 저 구석에 떨어졌다.


“누군지는 내 알 바 아니고, 네가 서울에 놀러가서 지랄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기억은 나냐?”


여인은 침묵했다.


“그래, 그럼 그렇지. 마천루 꼭대기에 사는 것들이 골목의 사람들한테 관심을 가질 리가. 네가 자초한 일이야. 순순히 뒤져.”


지원이 총을 겨누자, 여인은 당황했다.


“이, 이봐! 잠시만! 그래, 기억났어! 그 여자애! 맞아, 내가 잘못했어! 그날 좀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다고! 돈을 줄 게! 그 애 유가족한테 주고 너한테도 잔뜩…!”


총성과 함께 여인의 몸이 축 처졌다. 미간과 뒤통수에 난 둥근 구멍 사이로 피와 뇌수가 흘렀다.


“잘못한 줄 알았다면 그때 사과했어야지. 조 씨, 임무 완료야. 대가리에 구멍을 뚫어줬어.”


“잘했어. 이제 빨리 와. 5분 남았어.”


지원과 알리사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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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