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셸 티나는 리앤 지방의 한적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외부와 단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생기가 돌았다. 마치 자신의 것마냥 아이들은 푸른 잔디와 저잣거리의 흙바닥을 먼지가 날리도록 뛰어다녔다. 그곳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노동에 종사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달빛을 보며 잠들며 다음 날을 생각했다. 평화롭고 따분한 일상이었지만, 행복한 삶이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은 행복을 누리며 나이를 한살한살 늘려갔다. 그녀의 부모는 평범한 농사꾼이었지만 자영농에 속했기 때문에 가난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여유가 컸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교육을 받게 할 정도의 투자는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을에 있는 유일한 학교에서 몇 명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았다. 그 학교-’언덕-은 마을 뒷쪽 언덕에 지어져 있어서 가고 싶다면 꽤 힘든 육체노동을 견뎌야 했다. 높은 언덕 위에 짓는 것도 고통이었겠지만, 짓고 나서의 문제가 일단은 더욱 컸다. 주민들을 징발해 상위 계층을 위한 시설을 축조하는 것이 가능했었던 과거가 드러나는 곳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원래 학교 이름이 있었으나 언덕을 왕복하며 자재를 운반한 일꾼들은 그 건물을 ‘언덕’이라고 명칭했고, 시간이 흘러서 정말 이름이 ‘언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티나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는 소홀히 했다. 어떨 때는 언덕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몇 주를 보낸 적도 있었다. 그녀가 좁은 마을에서의 삶이 따분해져 보다 넓은 대로로 나가고 싶었다던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부모와 친구들에게 악의를 품거나 할 인간이라고도 보기는 어려웠다. 이유는 단순했다. 무언가에 몰두하면 끝까지 붙잡고 있는 고집이자 끈기가 그녀의 발을 언덕 위에 묶어 두고 있었다. 분명 언덕 아래는 평온하지만 멈추지 않고 확장되는 세계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끝을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 동기는 충분했다.

그래서 세계의 지식들을 담고 있는 두꺼운 장서들을 지금도 읽고 있었다. 너도밤나무를 깍아 만든 기둥이 떠받히고 있는 도서관에서, 미지의 변경을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리며 촉감을 느껴본다. 눈 앞에 있는 표식들에 마치 스며들듯 그녀는 빠져들어 있었다. 

“티아나.”

그 말을 어쩌다 듣게 된 그녀의 시선은 서서히 오른쪽 상단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고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에서 자기를 호명할 사람이라면 추론하는 건 쉽다.

“오실 것 같았어요.”

날카로운 쇠붙이에 상냥한이란 덮개가 씌워졌다. 오래 전부터 마음 속에서 품고 있었던 숨겨진 비수였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만드는 것은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려운 작업이므로, 연마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다 잘못 휘둘러 재 손을 배이는 불상사를 피하려면 필수적인 준비 동작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날렵하면서도 과감하게. 가볍게 내지르고 정교하게 되받는다.

“혹시나 해서. 어딜 싸돌아다닐 정도로 그릇이 좁지는 않으니까, 뭐 대충 이런 데에 기대고 앉아 있겠거니 했지. 설마 진짜일 줄은 몰랐지만.”

물론 그녀의 앞에 있는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외형상으로도 특별히 민감해 보이는 부분이라곤 가죽장갑을 낀 왼손뿐이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른손 쪽이–”

눈 앞에 보이는 약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일단 반응을 확인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 나오는 반응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꼭 필요하다면 반드시 이행해야 할 필요를 찾을 수는 있다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 이거? 별 거 아니야. 칼날에 익숙해진 댓가지, 뭐.”

처연한 태도를 보아하니 이번에도 역시 둔감한 특징이 두각을 드러내는구나, 속으로 조소했다. 심장박동이 보다 빨라지는 것을 느껴서였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겠습니다만, 꽤나 불편할 것 같은데요. 육안으로 봤을 때 그 정도의 부상이라면 완치 시점은 지금으로부터는 상당히 멉니다.”

유셸 티나의 이 지식은 책에서 전달받은 것이 아닌,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자기 키보다 길었던 검을 드리우려고 하다가 손바닥이 갈라진 체험은 고통과 그에 수반하는 두려움으로 눈물샘을 가득 넘쳐흐르게 했다.

그게 손가락이건, 손등이건, 자기 무기에 자기가 상처를 입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울고 있던 그녀에게 아버지가 다가가 그녀를 안고 들어서는 이렇게 말했다. 

“검사의 최대의 수치는 다른 사람에게 패배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의 검에 배이는 순간이라고 하곤 하지. 하지만 정말로 수치스러운지는 그 다음의 에게 달려 있는 거야. 살면서 모든 1분 1초를 수치에서 벗어나지 못해 수렁으로 떨어지거나, 단 한 순간이라도 그 족쇄에서 풀려나거나, 그걸 결정하는 건 바로 야. 그러니 너무 서러워 할 필요 없어.”

그 기억은 그녀에게 남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선명하게, 어제, 혹자는 한 시간 전에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수치스러워 할 수가 있었을까. 남겨둔 딸과 아내를 향해서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을까. 아니면 족쇄를 끊고 하늘 높이 날아갔을까. 모두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었다.

“아, 그건 그렇고.”

사냥꾼과 비슷한 복장을 한 자가 끼어들자 비로소 생각의 흐름이 멈추어졌다. 

이내 그가 등에 맨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냈다. 

“선물.”

그녀의 눈이 시선 바로 앞에 있는 긴 물체에 멈추었다. 물론 멈춘 것은 시선뿐만이 아니었다. 

“갈 때 쓰라고. 이펜이 설계하는 걸 봤는데, 공을 들어던 걸. 자기 말로는 돈 부족하면 팔아도 된다는데, 직접 본 사람 입장에선 그래도 되는지 잘 모르겠네.”

검은색 검집으로 싸여 있는 예기는 비록 내부의 광채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균형적이고 비틀린 부분 하니 없이 매끈해 쓸 만해 보였다. 아버지가 쓰던 것보다는 확실히 말해 짧았지만 그래도 숨을 일순간 멈춘 만큼,그 무엇보다도 화사했다.

“좋은 검이네요.”

“확실히. 이펜 같은 녀석이 마을에 있다는 건 참 행운이야. 아니, 온 우주에 있어서 행운일지도? 너무 과장인가?”

“확실히요.”

하지만 그 내용에 일부에는 공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대장장이 이펜은 분명 굉장히 특별한 존재였다. 낫이 휘어지고 검이 녹슬 때 그는 쇠망치로 그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접고 펴고 두드려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새로이 태어난 그 쇠붙이들의 수명은 다른 것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길다는 것이 장수하면서 증명되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각종 토목공사, 설계, 등등. 마을의 어디 하나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금 있는 도서관 역시 그가 보수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했다.

“감사를 표해야죠.”

그녀가 책을 덮고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몸을 일으키지 않아서 그런지 관절이 삐걱거리는 느낌이 감각을 통해 전달되었다. 검을 선물로 받기 이전에 들 수 있는 상태인지부터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뒤늦은 깨달음. 이제 와서 원망해봐야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