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대장간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길이었지만 그날은 한산했다. 그러나 수 년의 사람들의 왕래가 다져준 평평한 흙길은 계속된 이웃들의 방문을 추론하는 뒷받침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유셸 티나에게 있어서 그 대장간은 자기도 모르게 어느세 가까워진 곳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국경으로 차출될 때마다 대장간에 들러 검을 날카롭게 깍아냈다. 달빛을 받으면 환하게 빛나는 회색의 때를 검날에서 밀어낼 때마다, 그의 입가에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미소가 이따금씩 배어들곤 했다. 검의 기쁨은 그의 기쁨, 슬픔은 그의 슬픔. 적을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도 보이지 않던 미소. 그런데 무기를 손질하면서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항상 의아해 하곤 했었다. 

그런 아버지의 행동에서 추론할 수 있었던 결론이란, 적의 피로 더럽혀진 자신을 정화할 수는 없다. 대신 검을 닦고 날카롭게 갈아 스스로에게서 때어낼 수 없는 붉은색 각질이 적어도 자신의 분신에서는 깔끔하게 벗겨지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라고 그녀는 머릿속으로 망상했다.

깊고 얕음의 중점에 서 있던 생각은 다시 얕은 해안가로 방향을 틀었다. 이전에 결론을 내리고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새. 아닐 수도 있겠지만, 몇 번째인지 샐 수 없을 정도이니 아마 맞을 것이다. 

대장간은 마을의 동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괄목할 만한 족적을 남긴 것 치고는 작업실은 상당히 남루해 보였다. 군데군데 썩어서 도려낸 소나무 기둥은 겉모습으로만 보면 세계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리고 두 기둥 사이에 있는 현판에는 대충, 아주 흘려쓴 글씨로 이렇게 써 있었다.


“절대로 방해하지 말 것. 절대로.”  


미안해, 이펜.

타나는 문을 누가 들으면 부러뜨리기라도 하는 줄 알 정도로 쾅쾅, 세게 두드렸다.

아마 몇 초 후면 문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의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얄팍한 수긴 했지만, 문 앞에서는 원래 떨어지는 게 방문자 입장에서 예의이기도 하고,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한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몇 초가 더 흐르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대장장이가 자리를 비우는 일은 보통은 없다. 그럼 자나? 아직 해도 안 졌는데?

머릿속에 의문점이 튀어오르는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거리며 문이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천천히 열렸다..

“하암.”

두 문짝 사이로 손이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밤새 깨 있어가지고. 혹시 누군지 말만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눈을 비비며 그가 문 뒤에서 잠옷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리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눈가에 붙어버린 눈꺼풀을 때려고 하는 찰나, 어떤 사람의 시선을 보고는 최면된 것처럼 움직임이 일체 소거되었다.

“깨워서 미안.”

타나가 이펜에게 말했다.

그 말을 하자 비로소 정지해 있던 것들이 다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그녀는 알게 모르게 느꼈다. 

“아. 괜찮아.” 그가 바로 대꾸했다. 그 와중에 왼손은 오른쪽 눈을 비비고 있었다.

정말로? 라고 타나는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눈가 주변에 검은색이 물들어 있는 걸로 보아서는 나중에는 추궁해야 할 듯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안에서도 되지? 들어줬으면 하는 게 조금 있거든.”

본래는 감사 인사만 하려고 했지만, 계획이 조금 바뀌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앞장서서 대장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불빛이 밝혀지지 않은 그 공간의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특성상 밝어져도 특유의 검은색 검댕이 군데군데 드러나 보일 것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다. 수 십년간 딱히 특별한 보수 없이 계속 대를 이어가며 사용되었던 곳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건물과 공간은 수리해 주지만, 정작 자기가 살 곳은 그 덕분인지 몰라도 방치되어 있었다. 

물론 이펜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지적, 혹은 그걸 가장한 걱정을 표할 때마다 그는 손사래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티나, 이건 말이야, 일종의 증거야.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거잖아. 나는 그것만 인정받을 수 있다면, 만족까지는 아니어도 입 삐죽 내밀고 있지는 않을 거야. 세상에는 관심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 그래서 나는 오히려 행운이라 생각해.”

“...”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소화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답답함을 장작으로 삼아 두뇌에 불을 땠던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며, 유셸 티나는 한숨을 쉬었다.

“휴우…”

“혹시 또 그 얘기 할 거야?”

한숨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갈 정도로 시끄러웠거나, 대장간 안이 조용해서였거나 둘 중 하나이다. 물론 지금은 어느 쪽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안 들어줄 거잖아. 이펜. 나도 더는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은 없어. 단지 널 더 알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냉랭함이 스며드는 것을 상대방도 느꼈는지 그 뒤로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칠흑같은 적막과 코를 파고드는 쇠 냄새에 신경이 절로 날카로워진다. 이 여자아이에게 있어서 감정 과잉은 만악의 근원. 그렇다면 빨리 해치우고 떠나는 수밖에는 없다고 결론짓게 된다.

그녀가 숨을 크게 고르고 등을 돌려 열린 문 아래에 서 있는 남자를 마주한다.

“할 말이 있어, 이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