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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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LAD로 돌아온 일행은 곧바로 찬호와 만났다. 찬호는 박수를 쳤다.


“아주 대단해. 이정도면 의뢰인도 만족할 거야. 얘기했던 위조 사원증은 곧 줄게.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선물이야.”


그는 방 한쪽에 세워놓은, 자기 몸집만 한 상자를 가리켰다. 조 씨가 물었다.


“저게 뭐야?”


“인명구조용 드론이야. 한진스카이 건데, 암시장에 나왔더라고. 팔아도 되고, 써먹을 곳 있으면 써도 돼.”


조 씨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 알아서 잘 쓸게. 고마워.”


조 씨는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다들 수고했어. 이제 돌아가서 연락 있을 때까지 푹 쉬고 있으라고.”


지원은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가 문을 열었다.


“다녀왔어.”


여전히, 그날로부터 8개월이나 지났고 집을 두 번이나 옮겼지만 이렇게 현관에 들어올 때마다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원의 귀에 들리는 건 남편의 살가우면서도 낮은 목소리가 아니라 갓 변성기가 오기 시작한 소년의 목소리였다.


“오셨어요? 생각보단… 늦게 오셨네요.”


“미안, 사정이 생겼거든. 밥은 잘 챙겨 먹었어?”


“네. 누나…는요?”


“잘 먹고 있었지. 저녁은?”


“아직 안 먹었어요.”


“기다려, 금방 해줄 게. 아님 라면 먹을까?”


“아… 그, 그게, 저…”


준용은 몹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밥 먹을 게요.”


지원은 의외의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준용을 바라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좋아. 이번에는 투정부리지 않기다?”


그 순간, 지원은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느꼈다. 바이오 모니터에 ‘경고: 사이버웨어 오작동’이라는 표시가 뜨기 무섭게 오금이 저리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지원은 싱크대를 잡으려다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수저가 금속음을 울리며 바닥에 떨어지고, 준용이 급히 달려와 지원을 부축했다.


“괜찮아요?”


지원은 자신보다도 작은 준용에게 의지해 스스로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괘… 괜찮아. 조금 무리했을 뿐이야. 금방… 밥 해줄 테니…까…”


지원은 시선이 바닥으로 처박힌다고 느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땐 자기 방 천장을 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다름아닌 조 씨가 의자에 기댄 채 지원을 바라보다 이내 다가왔다.


“정신이 들어?”


“조 씨…? 여긴 어쩐 일로…”


“그 애가 불렀어. 알고 있는 주변인이 나뿐이니까.”


“꼬마는?”


“방에서 자고 있어. 밤새 미세스 리를 간호했거든.”


“꼬마가? 기특하네… 정말.”


그러다 문뜩, 지원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밤새? 설마 내가 그동안 잤다고?!”


“맞아, 정확히는 18시간동안 잠들어 있었지. 김 선생도 왔다 가고, 파트마도 왔다 갔는데, 단순하게 사이버웨어 문제 보다는 피로가 중첩된 상황에서 사이버웨어 사용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하더라.”


지원은 이마를 짚었다. 밤새 땀을 흘렸는지 이마가 아직도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요즘 들어 몸이 좀 이상해. 뭐랄까… 말로만 듣던 갱년기가 오는 기분이야. 33살 밖에 안 먹었는데.”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달리니까. 사람이 앞만 보고 달리면 빠를 수는 있지만 자기가 어디로 달리는지, 주변에는 뭐가 있는지는 볼 수 없어. 때때로 잠시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이 어떻게 달려왔는지 뒤를 돌아볼 때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


지원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거 정말 멋진 말이네. 책에서 나온 말이야? 아님 영화?”


“내 머릿속에서 나온 말이지. 준비는 다 끝났으니까, 이제 약속된 날까지 푹 쉬어. 그 부천에 경찰이랑 놀던가, 아님 저 애를 돌보던가, 마음대로 해. 난 이만 가볼게, 파트마랑 저녁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그래, 여기 있어줘서 고마워. 파트마 씨랑 좋은 저녁 되고.”


조 씨는 손짓을 하더니 집 밖으로 나갔다. 지원은 조심스럽게 바닥을 딛고 일어났다. 가벼운 어지럼증이 있었지만 금방 진정되자 몇 걸음 걷더니 방문을 열고 거실을 바라보았다. 바이오 모니터에도 이상은 감지되지 않았고, 자신이 느끼기에도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지원은 방에 들어가 곤히 잠든 준용을 바라보았다. 의자에 앉아 준용을 더욱 가까이서 내려다보자 새근새근 숨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지원은 고마운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준용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준용아.”


지원이 다시 거실로 나왔을 때, 이번엔 수화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영화 언제 볼 건지 계획 다 했어?”


“기다리고 있었나 봐? 내일 13시, 시간 되지?”


“당연하지, 어디서 볼까?”


“홍대에 BDV방이 있어. 아, 건전업소니까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마.”


지원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그런 여자로 보여?”


수화는 몹시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 그, 아니, 그러니까! 그, 그… 내일 보자!”


지원은 끊긴 전화를 두고 웃기다는 듯 실실 웃었다.


“참~ 내 주변에 남자들은 어쩜 이런 사람들뿐일까.”


다음날, 지원은 수화가 알려준 BDV방 앞에 도착했다. 대낮임에도 LED 간판은 마치 우주에서 갓 내려온 것 같은 보라색 불빛을 반짝거렸다.


“SPACE ODDITY, 우주 괴짜라. 뭔가 마음에 드는데?”


그때, 지원은 수화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어이, 여기야!”


수화와 마주한 지원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잘 지냈어?”


“당연하지. 너는…”


수화는 지원을 슥 훑어보더니 빨개진 얼굴을 살짝 돌렸다.


“잘… 지내는 것 같네.”


“가자, 키아누 리브스 만나러.”


그렇게 들어온 BDV방은 간판처럼 보라색 조명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곧바로 인조 피부를 뒤집어쓴 휴머노이드 직원이 두사람에게 다가와 태블릿 PC를 들이밀었다.


“SPACE ODDITY에 어서오세요. 두 분이신가요?”


수화가 말했다.


“네, 방 하나요.”


“시청하실 영화 또는 드라마를 화면에서 골라주세요.”


수화는 화면을 주르륵 넘기다가 멈췄다.


“존 윅.”


직원은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치더니 허리를 숙였다.


“존 윅 선택하셨습니다. 고객님이 이용하실 방은 8호실입니다. 음식 및 음료는 방 안에서 주문하실 수 있으며 선택하신 영화는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들어가시기 전에 문에 붙은 경고문을 꼭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SPACE ODDITY였습니다.”


직원이 BDV가 잔뜩 꽂혀왔는 선반으로 향하자, 둘은 8호실로 향했다. 지원은 문에 붙은 경고문을 따라 읽었다.


“1번, 술 또는 약물을 복용한 상태로 입실을 금지합니다. 2번, 방 안에서 성관계를 비롯한 심한 애정행각은 금지합니다. 3번, 외부음식의 반입을 금지합니다. 4번, 22시 이후 청소년의 출입을 금지합니다. 너무 정석적인 경고문이네. 대학생 때랑 달라진 게 없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발을 벗도록 작은 현관이 있었다. 그 뒤로 푹신한 매트를 깐 바닥과 푹신한 소파, 그리고 먹을거리를 주문하는 키오스크와 BDV기기가 붙어 있었다. 심지어 한쪽 벽에는 아예 TV까지 설치해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구비된 방이 두 사람 앞에 있었다. 지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을 바라보았다.


“좀 멋진데? 나 때랑은 다르네. 그땐 낡은 BDV 기기밖에 없었는데.”


“시대가 흐르고 경쟁자가 많아질수록 시스템은 발전하는 법이지. 뭐 먹을래?”


“카라멜 팝콘, 음료수는 콜라.”


“오케이, 나도 같은 거로.”


오래지 않아 아까 그 직원이 BDV와 함께 팝콘과 콜라를 가져왔다.


“좋은 시간 되세요.”


수화는 곧바로 BDV 카드를 TV에 꽂았다.


“그럼, 시작한다?”


두 사람은 완전히 영화에 몰두했다. 그리고, 지원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수화는 자기 옆에 앉은 지원을 신경쓰며 조금씩 그녀 곁으로 움직였다. 가끔씩은 한쪽 팔을 뻗어 자기도 모르게 지원의 어깨를 감싸려고 하기도 하고,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보기도 했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자, 지원은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으~~~아! 오랜만에 보니까 이렇게 재밌네. 어때? 너도 재밌지?”


“어? 어… 그럼! 키아누 리브스는 ‘콘스탄틴’이라던가 ‘매트릭스’ 같은 영화도 있지만 그래도 ‘존 윅’만한 게 없다니까! 전쟁 중에 급사한 게 너무 안타까운 사람이야.”

‘사실 너 본다고 반쯤 날렸지만…’


“2편도 볼래? 아무래도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지 않겠어?”


“그럴까?”


“그렇게 2편, 3편에 이어 4편까지 모두 보게 되었다. 마침내 영화의 막이 내리자, 수화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쳤다.”


“배우도 영화 시리즈도 아쉽게 끝났지만, 그래도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마무리된 상태라 다행이야. 이제 뭐 할래?”


지원의 머리가 수화의 어깨 위로 톡 떨어졌다. 깜짝 놀란 수화가 고개를 돌리자, 지원은 수화의 어깨에 기대 쿨쿨 잠들어 있었다. 수화는 잠든 지원을 바라보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깜짝이야… 잠들었구나. 그래, 몇 시간이나 달렸는데 피곤할만 하지.”


수화는 잠든 지원을 따뜻한 얼굴로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소파에 눕힌 다음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귀 아래로 데이터 카드 포트와 사이버웨어 시술 자국이 눈에 들어왔지만, 수화의 눈은 그보다도 하얀 눈밭 위에 붉은 과일즙을 뿌린 것 같은 뺨을 향해 있었다.


“어쩜… 어쩜 이렇게…”


수화는 몸을 굽혀 지원의 뺨 쪽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아주 자그맣게 속삭였다.


“잘 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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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