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걸어왔을 때, 나는 하마터면 짜증을 낼 뻔했다. 다음 열차를 타지 못하면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정시 출근을 못할 게 눈에 훤했고, 그녀의 팔은 열일곱 개였다. 정말로 골치 아픈 일이라는 거였다. 미리 밝혀두건대 그들을 곱지 못한 눈으로 보는 것은 오직 나만의 시각이 아니다. 인식 차이에 대한 관련 논문도 엄청나게 많고, 내 친구들도 술자리에 모이면 대놓고 하지 못한 팔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어쨌든 나는 얼굴을 바꿔 용건을 물었다. 눈알을 굴리고 여덟 쌍하고도 하나의 손바닥을 비비다가 할머니는 지갑을 두고 왔다며 집에 가기 위한 돈을 줄 수 있느냐고 털어놓았다.


    이것 보라, 결국은 항상 이런 식이다. 솔직히 말해서, 팔 많은 인간과 대화를 시작하면 나 또한 몸이 근질거리다가 팔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불필요한 잡생각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할머니의 팔들은 입은 옷도 제각각 달랐다. 돈이 없는 것은 아닌지 몇 개는 천연 가죽이거나 근사한 디자인이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사회의 통일성을 해치는 문제는 정말로 심각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녀를 한번 보고는 짐작이 가는 귓속말을 수군거렸다. 다 들릴 텐데도 할머니는 늙은 사람 특유의 떨림이나 건들거림도 없이 꼿꼿이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당신들을 돕는 정부의 사람이 아니고, 출근을 마쳐야 하는 직장인이며 사정은 안타깝지만 우리 모두가 각자의 본분에 충실해야 복지에 힘쓸 여력이 생긴다는 논리로 거절했다. 

    물론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나를 붙잡았다. 가관인 것은 허공에 멈춰선 듯한 팔들이었다. 두 팔로는 뒷걸음질 치려는 내 두 팔을 붙잡고, 다른 두 팔은 내 어깨에 얹었다. 두 손바닥을 오므려 공손히 돈을 기다리고 있다는 제스쳐를 취했고, 몹시 전략적이게도 나머지 팔은 알아서 손바닥을 문지르거나 손톱을 뜯으며 자신이 절대적 약자임을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각인시켰다. 또한 그녀는 영리했다. 은근슬쩍 언제까지 양팔로 살 수 있을 것인지를 강조했다. 당신처럼 이성적인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틀림없이 자신처럼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자매들이 생기리라며, 혹시 주변에 그런 사례가 없는지를 떠올려보라고 속삭였다. 나는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였다.


    당신께서는 한번 울타리 안으로 들일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결코 마음을 되돌리지 않는 분이셨다. 한 번은 어머니가 건강 내지는 의료 프로그램에 출연하셨는데, 후에 미처 편집하지 못한 과격한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팔이 많으면 그만큼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재정에 부하가 실리므로, 개인의 안락을 위해서 무작정 팔을 늘리면 곤란하다는 투였다. 물론 발언을 취소하지 않으셨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전문의 자리에서 퇴직하신 후, 어머니는 우리 부부의 아들을 낮에만 도맡아 키우셨다. 아이를 잘 돌보셨던 분으로 소문이 났던 사람이었고, 곧 동네에서 낮이면 당신의 손길 아래 아이들이 모여 뛰놀고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의사 시절에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팔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하셨는지 마음을 바꾸셨다. 각기 다른 아이를 대하듯 온 신경을 쏟아 다르게 팔을 사용하셨다. 성격이 모두 다른 애들을 돌보는데 어떻게 두 개로만 아이를 보겠니. 그러다가 금세 몸이 쇠하실 거라고, 더 이상 늘리지 마시라는 내 부탁은 안중에도 없이 말이다.


    내 어색한 미소를 본 할머니는 씨익 웃었다. 곧 모든 팔을 바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쯤 되니 나 또한 한숨을 푹 내쉬며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드릴 수밖에 없었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었지만 결국 그게 사람 아니겠는가, 하며. 어머니, 저도 어쩔 수 없는 당신의 자식인가 봅니다. 곧 돌아올 고맙다는 대답에 나는 벌써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지폐를 받은 할머니는 대뜸 화부터 내며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느냐고 삿대질하는 것이 아닌가.

    야, 이 팔이 다 다른 팔이야? 왜 이 팔한테만 돈 줘. 지금 날 차별하는 거야, 어? 이 팔들은 모두 똑같이 나로부터 생겨난 하나의 팔이라고. 네 팔만 팔이야, 응?

    황당함과 주변의 눈초리에 못이겨 나는 열여섯 개의 지폐를 더 드려야 했다. 그녀의 논리가 맞는 것도 같은데. 하지만 나는 이번이 처음으로 내 생각과는 반대로 행동한 거였다. 내 첫 일탈이 무참히 부서지니 눈물도 나고, 마음도 쓰라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