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장은 널찍했고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그답게도 멀었다. 가까이 해 논의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곳에 모인 정복을 입은 재각각색의 인간들은 각자 서로만의 비밀스러운 궁리에 심취해 있었다. 그리고 환한 햇살이 천장의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그 거대한 공간의 광원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안을 차지하고 있던 공기는 엄숙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정적을 유지했다. 서로를 힐끗거리며, 태세를 파악하는 전초전이 계속되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렇게 영영 깨지지 않을 침묵이 깨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흠, 흠.”


그 소리와 함께 살짝 해진 옷을 걸친 남자가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그와 함께, 모든 이들이 그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깍듯이 조아린다. 그는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믈론 마음속 깊은 곳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이란 점에서였다. 몸을 떨고 있는 자들도 속속이 보인다. 


당장 주의를 쏟을 필요가 없는 이들에 대해선 후에 처리하는 편이 더 나았다. 처신을 신중하게 하는 것은 다른 것보다도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


그가 회의장 정 중앙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는 주변을 고개만 돌리면 전부 살펴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곧 권능의 눈인 동시에 권력자의 망루였다. 그렇지만 특권이란 것은 적당히 사용해야 마땅했다. 목표는 한 명을 제외한 모두의 위에 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다리로 올라가는 건 한계가 있었다. 오직 높은 첨탑에 올라서는 것만이 실현 방안이었다.


“하실 말씀이 많을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기우였군요. 폐하께서 우리가 이리 나른하게 정좌하고 있기만을 원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중히 대해야 할 사안은 신중을 기하고, 가벼이 대해도 될 일은 힘을 줘 밀어붙이세요. 폐하께서 내리신 명령이십니다.”


그가 나지막히,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본래 소리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회의장 안 사람들에겐 벽력과도 같았다.


“정말 반대 의견이 없다면, 바로 처리에 들어가지요. 우리 과거의 모습을 돌아본다면, 더 신속히 행동해야할 건에도 늦장을 부리다 폐하께 위해를 끼친 적이 수두룩합니다. "


안심하라는 듯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성공은 폐하께도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우리 대신들이 깊이 경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더 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논의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신 알베르. 집정대신께 건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춤거렸다. 그의 허리는 돌산에서 자란 굴곡진 나무처럼 굽어져 있었다.


“이번 법안의 통과를 재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단정적이고 곧바로 폐부를 찌르는 그 말에 회의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숨을 급히 들이마셨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젊은 관료의 혈기왕성한 기세에도 밀리지 않는 어조였기도 했다.


“경의 의사가 그 주장의 근거요?”


집정대신이 알베르라고 불린 노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럼 어서 말해 보시지요. 그리 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알베르가 잠시 뜸을 들인 후,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집정대신께선 물론 이 나라의 모든 정사를 총괄하고 계시지요. 허나, 그렇다고 해서 원하는 데로 하실 수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순간 회의장 내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주위를 감싼 시선들이 갑자기 위압감을 드러내는 두 사람 사이로 옮아갔다. 그들이 충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초에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불안하게 서 있을 만한 내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면, 알베르의 이의 이전에 자신들이 앞장서서 요구사항을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초조함은 비정함을 덮기 위한 하나의 손수건이었을 뿐이다. 


각료들의 동요를 눈치챘을까, 집정대신이 큰 소리로 웃었다.


“장난이 심하시구려, 알베르 경. 내가 국정을 기분대로 농단하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다른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그대들도 친애하는 알베르 경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오? 만약 그렇다면 큰 오해를 범하고 있는 것일 테지요. 이 나라가 누구 것입니까? 바로 폐하의 것이지요. 그런 절대적인 폐하의 명을 받아 신성한 국사를 책임지고 있는 신이 어찌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가 미소를 지으며 앉은 의자 옆에 자리한 서류함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알베르 경. 그럼 경께선 이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편지로 보이는 무언가는 누군가가 이미 읽었는지, 이미 개봉되어 있었다. 

“이른 이침부터 날아온 신선한 고발장입니다.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대신 읽어드리지요.”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마치 노래를 부르듯 부드럽고 차분한 형태였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형태처럼 도리어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폐하께서는 당장 국정을 농단하고 국가를 수렁에 빠뜨리는 집정대신 일파를 즉각 파면하시고 즉시 이들의 비리와 부패를 조사해 엄벌에 처하는 동시에, 중앙 회의장으로 복귀하시어 황제의 위엄과 권위를 다시 세우셔야 합니다… 중략하자면. 혹여나 이 터무니없는 고발장을 작성한 인물을 알고 계시오, 경들은?”


“...” 그 질문에 대답하는 인물은 없었지만, 회의장에 자리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잠시 마주보며 눈빛을 재빠르게 교환했다. 


“말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제가 직접 말해드리지요.” 그의 살가운 목소리에 처음으로 노기가 실렸다. “이스 케이안. 지식의 나무 소속 관원입니다. 이자에게 신성한 분의 뜻을 느끼게 해 주여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가 손으로 단상을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