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아담은 추방되었다. 동산은 이제 '그룹'이라는 천사들이 지킨다. 아담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도록.




아담은 간간이 나를 찾아와 묻곤 했다. 도대체 왜 살아야 하냐고.


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그의 몰골은 추레했다. 볼은 움푹 패여 있었고 손은 늘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의 가죽옷은 땀에 절어 냄새가 났다.


아담은 농사일이 바쁘지 않을 때, 동산의 가장자리를 지키는 나를 찾아오곤 했다. 어쩔 때는 울며 탄원했고, 어쩔 때는 화를 냈으며 어쩔 때는 하나님께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다양한 언행에서도 늘 반복되는 문장이 있었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 겁니까?"


아담에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살도록 명령하신 주님을 그가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냥 죽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그에게 반문했다. 

"어떻게 천사가 그런 망언을 할 수 있어요?" 속이 상했는지 아담은 내게 따져 물었다.

"뭐 어쩌라고?" 무수한 물음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피곤했다.


아담에게는 살고자 하는 본능이 남아 있었다, 여느 동물처럼. 그는 살고 싶었다. 그는 살고 싶어서 살 이유를 찾고 있었다.


"양과 염소들은 그런 물음을 묻진 않던데." 나는 풀밭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아담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걔넨 짐승이잖아요. 그냥 살고 싶으니까 사는 거죠. 아무 의문 없이."

"너도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 살 이유가 필요한가? 살고 싶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인간이에요. 이성을 갖춘 인간이요. 동물처럼 살 수는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짐승과 다름없다고 여기시는 것 같던데(전3:18)."


잠깐 침묵.




나는 그 침묵이 영원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 후로도 아담은 왜 살아야 하냐고, 앵무새처럼 자꾸 물었다. 나는 몹시 싫증이 났다. 결국 나는 아담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천상에서 지혜로운 정신과 의사 한 명을 데려오게 되었다.


의사는 아담을 '왜 살까요-병'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왜 살까요-병이네요. 육체는 살고자 하는데, 정신은 살기 싫어하는 거예요. 사실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에는 마땅히 이유가 없거든요. 그냥 본능이죠. 그냥 존재하는 본능. 중력이 존재하듯 그냥 존재하는... 근데 아담의 이성은 그와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 괴리가 의문의 형식으로 계속 표출되는 거죠."


"선생님, 그럼 이 병은 어떻게 치료할까요?" 나는 의사에게 물었다.

"간단해요, 적당한 믿음을 처방하면 돼요. 다시 살 마음이 들어지는 주장을 믿게 되면, 이제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을 겁니다."


의사는 아담에게 말했다.

"아담아, 하나님을 믿니? 그가 널 사랑하심을 믿니?"

"그닥이요. 나를 쫓아내신 분인데."

"그럼 유신론적 처방은 안 되겠네. 패스."


의사는 차트를 뒤적거리다 이렇게 말했다.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목적이 있단다. 만물은 그 목적을 따라 운행하지. 질서 있게. 그 질서를 탐구하고 질서를 따라 사는 게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

"뭐라는 거예요?"

"별로야? 다른 얘기를 해 봐야겠네."


의사는 조금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허무하단다. 오직 기계적인 움직임 뿐이지. 가치란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상이야. 의미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 그저 물질이 이리저리 움직일 뿐이지. 종래엔 극도의 무질서하고 균일한 우주가 될 테고열역학2법칙. 너는 티끌이야,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는 너만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어. 네 삶에 가치를 너 스스로 부여하면 되겠지!"

"완전 개소리네요." 아담이 의사를 흘겨보았다.

"별로 마음에 안 드니? 다른 소리를 해 줄게."


"똑같은 세계관을 가정하자. 허무한 세계. 진리는 없다. 어떤 관점도 개인의 의견일 뿐이야. 그러니까 너는 네 관점으로 생각하면 돼. 이렇게 생각해 봐, 너는 중요한 존재다, 살 가치가 있는 존재다. 이건 어때?"

"흥. 아까랑 비슷한 소리네요."

"이것도 별로야? 유물론적 세계관도 네 정신이랑 잘 호환이 안 되는 모양이네."




아담에게 맞는 처방을 찾느라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의사의 실력이 없던 모양인지, 아담은 그 어떤 처방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의사는 점점 더 알아먹지 못할 이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이름들을 내세우며. 예수 가라사대, 부처 가라사대, 다윈 가라사대... 그러나 진전은 없었다. 의사와 아담 둘 모두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아담이 의사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해요?"

의사가 태연하게 답했다. "네가 받아들일 때까지. 그럴듯한 의미를 찾을 때까지."


나는 지친 아담에게 포도주 한 잔을 건냈다.

"이게 뭔데요?"

"기분 좋은 거. 마음이 근심하는 자에게 주는 거(잠31:6)."

아담은 잔을 들이켜곤 잠깐 캑캑거렸다. 조금 있으니 취기가 돌았는지 아담의 우거지상이 조금 폈다.


포도주는 이성을 마비시켜 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담을 설득했다. 철학서들이 조급하게 "그래도 열심히 살자"는 결론을 지으려 들듯, 대충 감상적이고 교훈적인 척을 하며 말이다.

"아담아, 네겐 토끼 같은 자식들과 여우 같은 마누라가 있지 않느냐? 서로가 있지 않느냐? 세계가 아무리 허무하다 해도 서로가 있으면 그래도 살 가치가 있는 게 아니겠느냐? 아내와 별을 구경하고 아이와 함께 보리밭을 거닐거라. 네 삶은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단다."


개소리.

나는 무심코 내 말을 비웃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담은 엉엉 울며 내 말이 맞다고 끄덕거렸다. 마침내 살고 싶다는 의지가, 그의 기진맥진한 이성을 꺾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아담에게 그의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제 집이 어디 있는지 도통 알려 주지 않던 아담은 취기 탓인지 쉽게 불었다. 나는 아담을 그의 집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 뒤 아담의 집 위치를 알게 된 나는, 아담의 집과 동산 사이에 거대한 강을 내어 아담이 다시는 동산에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문제 해결! 드디어 갔다! 나는 의사와 함께 한바탕 웃었다. 




이 모든 일이 끝나고 의사는 떠날 채비를 했다. 떠나기 전 의사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아담이 그런 주장에 감복할 줄은 몰랐어요!"

"크크, 다 포도주 덕이죠. 이성이 흐려진 틈을 타 감성Pathos이 자극된 거죠. 원래, 왜 사냐는 게 이성적인 물음이 아니잖아요? 해답도 이성적일 필요가 없죠. 아담도 그걸 원하지 않았던 거고요."

"이성적일 필요가 없다라. 맞네요. 돌아가면 예술을 한 번 해 봐야겠어요."

"좋은데요."


"아무튼, 잘 지내요, 그룹!"

그 말을 끝으로 의사는 천상으로 다시 돌아갔고, 나는 다시 파수를 서기 시작했다.


아담을 생각한다. 술이 깨면 내게 배신감을 느끼려나? 아니, 정말로 가족을 위해 살겠다는 믿음을 품고 살아갈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그가 다시 살 마음이 들었다면, 어떤 우스꽝스런 믿음을 지녔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좋은 일이지.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개인적으론 살 이유가 필요한지 싶다. 살고 싶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글쎄, 이 또한 내 믿음일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