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하늘이 유독 눈에 띈다. 인상파의 그림같다. 미묘하게 섞인 명도 낮은 분홍색과 서서히 짙어가는 보라색을 배경으로. 캔버스에 흰 물감을 대충 문질러 만든 구름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곳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한 검은 철골이 올라가고 있었다. 저 야만스러운 물건은 파리하고는 안맞다니까,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다만 루이의 불평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서서히 바뀌어가는 하늘빛은 그 흉물마저도 자신이 그린 수채화의 배경으로 감싸안았기 때문이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같이, 빛은 시민들의 욕받이던 철 무더기를 거장의 걸작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무튼 파리의 시간은,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색채의 향연은 사람의 감정마저도 그 팔레트에 넣어 섞어버리곤 했다. 지금도 계획에도 없는 충동적인 티타임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기억 한켠에 묻어둔 추억 한 장을 멋대로 꺼내어버리지 않은가. 잠시 쉬기로 결정했으니 오늘은 그 페이지나 다시 곱씹어볼까. 그래, 그녀를 만난 것도 꼭 이런 날이었다.


아무튼 그것도 빛의 소행이었다. 그때, 그녀의 머리칼 사이로 빠져들어와 그녀를 밝히는 건 무슨 짓인가. 하필이면 그 빛깔이 나를 절로 울렁이게 하는 은은한 주홍빛일 건 또 뭔가. 그리니까 신사답지 못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입맞춘 건 내 잘못이 아니다. 아닐거다. 


상념에 빠진 그를 깨운 것은 서서히 쌀쌀해져가는 파리의 저녁 바람이었다. 어느덧 점등원이 하나 둘 빛의 도시를 밝힐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옷깃을 여미곤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상의 불빛이 하나 둘 늘어가며 하늘 별빛을 찾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었으나 그는 여전히 별빛을 좇곤 했다. 그 사랑의 끝자락을 찾을 수라도 있는 것 처럼. 검은 실크가 완전히 세상을 뒤덮은 후에야 루이는 테라스를 나왔다. 내일 이 시간에 하늘은 또 다른 작품을 내게 보여줄 것이다. 결코 모작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허나 또 다른 그림이어도 좋으니 그녀를 닮은 빛깔을 칠하여 주길. 그리하여 다시금 그녀와의 시간이 스치어가기를. 그는 자신의 바람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아니 알고 있었다. 그는 바로 'La Belle Époque'ㅡ모든 것이 가능한 그 아름다운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으므로.


그림링크: http://www.artfixdaily.com/blogs/post/7482-the-%E2%80%9Cbeautiful-age%E2%80%9D-of-painting-works-of-the-belle-%C3%89po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