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전교1등을 하고서도 동네에서 가장 지독하게 독립과 연애를 못한채 나이 먹다가 위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산책하던 중 복도식 아파트 25층에 올라가봤다

동네 애들 한 놈쯤은 징징거리는 고소공포증 따윈 내겐 없었으니까 동네에서 제일 많던 여드름이 다 사라지는 십 년 후면 서울 뉴욕의 빌딩에서 가볍게 내리까볼 줄 알았던 동네의 높이가 심장을 움켜쥐고 끌어당기길래 황급히 등을 돌려 상대적으로 사람들 살아가는 기운이 풍길 안쪽 복도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네모 네모 네모 네모 네모 ……. 떨어져 죽을 사람은 여기에 곱게 넣으란 듯이 마름모꼴 아가리와 나 사이엔 아무것도 가로막혀 줘 있지 않았다

창원에서 그랜저를 끌며 외근하던 시절의 아버지 숙소를 알아보러 다닐때 이런 중앙공간이 있는 오피스텔쯤은 내 커리어 상을 가볍게 거쳐갈거라 생각했던 네모의 중첩이 코웃음치며 명치를 밀쳐올리길래 나는 떨어졌다 내겐 너무도 낮은 난간에게서.

 

그제서야 내 시야에는 2501, 2502 ….. 2505호와 그 앞에 성기게 놓인 작은 택배 박스들이 들어왔다 수 층 밑에서는 도어락이 열리고 닫히고 재촉하는 신발 소리가 들려왔다 야. 원치도 않게 목숨이 25층 높이에 걸려도 다들 눈 질끈 감고 살아가는구나. 복도로 난 창문에는 철창을 달고 현관문은 굳게 닫고 살아가는구나. 나 역시 없던 고소공포증이 생기고 눈 질끈 감고 살다가 죽는게 바를 팔자가 됐지만 이 땅에서 죽더라도 같은 바닥에서 죽어야지 바닥 높이 차이로 죽지는 않으리라를 넘어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