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생님 밑에서의 수습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머나먼 산골짜기 깊은 곳으로의 왕진이 예정되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군의관시절의 복장을 하시고선, 산을 올라야함에도 불편하게 흰가운을 걸치셨다.


그러한 모습이 평소와는 달리 느껴졌던 것인지 나는 아무말 없이 선생님의 뒤를 따랐다.

산을 오르는 과정은 힘들고, 고되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가운에 흙먼지들이 묻어가는 와중에도 불평하시지 않고, 무언가에 홀리듯이 산을 오르셨다.

산등성이를 오른지 반절이나 지나니 겨우 환자의 거처로 보이는 곳에 이를 수 있었다. 사실 거처라고 볼 것도 없이 그저 땅을 참호처럼 파놓고, 그 위에 낡은 천을 덮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선생님께서 침묵을 유지하신채로 천으로 덮인 구덩이로 다가가자 곧바로 한 노인이 나뭇가지를 겨누며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자신의 군의관 마크를 보여주고는 뭔지모를 단어를 말하셨다. 그제야 노인은 경계를 풀고는 우리를 구덩이 안 쪽으로 들여보내주었다. 



구덩이 안 쪽으로 들어가자 인간의 뼈로 보이는 것들과 말라비틀어진 통조림, 그리고 녹슨 금속 조각들이 널려있었다. 



또한 자세히 보니 노인의 품에는 인간의 두개골이 있었는데, 노인은 진찰을 받아야한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품에서 두개골을 떼어내지 않았다.



노인의 왼쪽팔에는 천쪼가리가 감겨있었는데, 아무래도 치료부위 같았다. 



선생님께서는 왕진가방속에서 의료용 가위를 꺼내 천쪼가리를 잘라내었다. 노인은 고통에 신음하였다. 그럴 만도 한것이, 노인의 왼쪽 팔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이 패여있었고, 간신히 지혈만 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고름이 줄줄 흘러내렸고, 천쪼가리를 완전히 제거하자 노인의 감염된 상처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한 상태라면 강제로라도 당장 병원으로 옮겨 수술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태연히 왕진가방 속에 있는 마취제와 이름모를 약이 들어있는 주사기를 꺼내 줄 것을 부탁했다. 



내가 그것들을 건네자 선생님은 안개처럼 흐릿한미소를 지으며 내게 고맙다고 하셨다. 



그러고선 전신 마취제를 그나마 멀쩡한 부위에 주사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고통이 멎어감을 느끼며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물론 그러한 이야기들은 길지 않았지만 선생님께 고맙다는 둥, 이제 다시 싸울 수 있겠다는 둥 별의 별 말을 늘어 놓었다. 



노인은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의식하였는지, 나무뿌리를 뜯어내 씹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잃고 마취상태에 빠져버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름모를 약을 노인에게 주사하셨다. 병원에 가길 거부할 것을 예상해 노인에게 마취약을 주사한 것은 이해가 갔으나 이름모를 약을 주사한 것은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다.



주사가 끝나자 선생님께서는 이제 그만 되었다며 돌아가자고 하셨다. 나는 당장이라도 노인을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으나, 

선생님의 의지는 완고 했다. 

노인의 상처가 깊지만 치료를 하는 것이 의료인의 의무라고도 말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이미 왕진가방을 정리하고 계셨다.


그날부로 난 선생님 밑에서의 수습생활을 관두었다. 히포크라테스선서와 같은 기본조차 되어있지 않은 의사에게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습생활의 마지막날, 선생님께서는 내게 노인에게 주사했던 이름모를 약을 건넸다. 성분이라도 알아볼까해서 받아는 두었다만 바쁜 생활탓에 시간은 없었다.



그것이 벌써 40년도 더 된 일이다.



이후에는 내 개인 병원을 개원하여 의사로써의 본분을 다했다. 수많은 환자들을 진찰하고, 수술로써 살려내며 보람을 느꼈다. 

그러던 중, 내 병원에 한 환자가 찾아왔다. 

그 환자는 나의 아버지. 

현장에서 많은 사고를 당하셨지만 나의 수술로써 되살아나신 분이다. 100세를 바라보고 계신 98세의 아버지가 이번에는 어떤 상처를 입으셨을지 진찰했다만 아버지에게서는 아무 상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저, 편히 쉬고 싶다고 하셨다. 

불편하신 곳이 있나 여쭤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쉬고 싶다는 것일 뿐.

내가 말문이 막힌채 가만히 있자 아버지는 내게 더욱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나고 싶구나" 라고.

너무 많은 삶에 지치신 것일까? 정신적인 문제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제서야 난 선생님이 그 노인을 내버려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선생님과 그 노인이 무슨 관계인지, 이름모를 약이 어떤 약인지, 나 또한 그 약을 나 자신 혹은 환자들에게 쓸 것인지 등의 생각이 머릿속에 마취제를 투여한 것처럼, 마치 안개처럼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