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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잠한 세계의 고요 속에서 소년은 눈앞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그 나무는 하염없이 자라 소년이 살던 마을을 뒤덮었다.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속에서, 소년은 마당뜰의 풀밭에 누운 채 입을 열었다.

"...네가 말한 순간은, 언제쯤 찾아오는거야?"

쏴아아.

소년의 물음에 대답하듯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저 큰 나무가 가지를 흔들기 시작했다.

"있지, 더 이상은 힘들어."

바람에 휩쓸린 초록빛의 나뭇잎 한장이 살랑이듯 소년의 머리에 툭하고 떨어졌다.

"너무...조용해."

"..."

마치 대답을 기다리듯 물끄러미 나무를 흘겨봤지만, 나무는 침묵을 지켰다.






어느 순간부터 나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작디 작은 그 나무인형이 처음 나무가 된 순간부터였을까. 소년은 인형 또한 침묵할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걸지도 몰랐다. 자기 주변에 무성한 그 수많은 나무들처럼, 인형도 한 그루 나무가 되었을 때, 결말이 정해졌을지도.

환한 햇살 아래서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지만 소년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가슴을 옥죄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화창하고 아름다운 세상은 소년과 유리된 채 있었다.

한참을 누운 채 있던 소년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나무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커졌다.'

나무는 더욱 자라나 구름을 향해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소년이 처음 나무를 묻어주었을 때, 소년은 나무의 곁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왜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세상은 넓어. 너무 넓어서 두 팔을 쭉 벌려도 담아내지 못할 정도야!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저 있을 뿐이야. 세상은 바뀌어도 세상이고. 바뀐건 말이지, 세상이 아니야.'

'침묵은 민감해. 단 하나의 소리라도 들려오면 침묵은 깨져. 나의 어린 주인, 꼭 기억해. 그 작은 소리가 침묵을 깨는 순간이 올거야. 그 순간을 기다려.'

그러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 속이서 무심코 잠에 들고 두 눈을 떴을 땐, 나무는 이미 그의 집보다 커졌다.

'야.'

'...'

'야.'

'...'

'...'

그리고 나무 또한 침묵했다.



나무는 커갈 수록 소년에게서 멀어졌다. 보이지 않는 그 육중한 뿌리가 대지 깊숙히 자리 잡고, 굳건한 기둥이 창공을 향해 솟고, 가지들이 온누리를 덮을 듯 자라날 수록, 나무는 소년에게서 더욱 멀어져만 갈 뿐이었다.

지금 소년은 멀어져 가는 나무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고요한 세상 속에서 들리는 건 소년의 걸음소리 뿐. 내딛는 발자국마다 소년은 세계에 자신을 새겨넣었다.

그것은 일종의 충동이었다. 소년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해 못할 한 순간 마음의 동함이었다.


소년의 숨소리는 가장 우렁찬 돌풍보다도, 심장박동은 대지를 찢는 지진만큼이나 컸다. 고요 속의 소리였다.

침묵. 침묵만큼이나 소년을 잘 표현해내는 단어가 또 있을까. 그런 소년이 지금의 세상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존재라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소년이 내는 소리는 폭풍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폭풍의 눈이 세계수의 지척에서 걸음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