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번뜩임이라는게 없어졌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건 아마 조금 더 어렸을 때의 축복같은 것일 것이다. 나는 내가 나쁜 습관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이제 나는 나의 능력을 인정해야만 한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연습을 하면 할 수 있다거나, 준비기간을 거치면 할 수 있다는 건 다 나의 제한된 자원과 불가능한 목표를 목전에 둔 나 자신에게 하는 합리화일 뿐이다.

 

  멈춰있다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을 연상시킨다. 나는 난의 잎을 닦는 행위가 실제로 난에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난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정물을 가꾼다는 것은 그것이 멈춰있다는 것에서 나 자신도 멈춰있는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정물은 영원을 누릴 수 있다는 역설이 나온다.


  나는 긴 소설을 읽을 만한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나는 그나마 영화를 좋아했다. 나는 단 한 편의 드라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던 적이 없다. 나는 나 스스로를 한심하게 느낀다. 내가 과거에서부터 한심했던 걸까, 아니면 지금에서야 그 열등함이 드러나는 건가? 나는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유튜브 숏폼을 보는 것 보다는 유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시간만 소모되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나 자신의 기억력이 나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나는 인지능력도 떨어지는 듯 하다. 그러니까 나는 차라리 합리화를 하는 편이 더 낫다. 나는 시간이 더 필요하고 선행사항을 이행해야 본 작업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시간이 부족함을 알기에 영원함을 얻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동물임을 안다. 정확하게는 안다기보단 최근 들어 조금씩 더 깊고 현실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에 가깝다. 나에게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도록 나는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하는데 그것에는 시간이 소모된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나는 그것을 그동안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무한한 자원에서 피어나는 작업물은 사실 잘 없다. 나는 15분 타이머를 눌렀고 이 이야기는 더 많은 방향으로 뻗어나갈 허망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 여기에서 이야기를 끝내야 한다. 그러니까 그건 태만이 아닌가.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필요한 번뇌와 걱정.


  하지만 나는 이 바보같은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을 배려해서 이 글이 완결성을 지닐 수 있도록 몇 줄을 더 추가하기로 마음먹었다. 감사하지 않은가? 그냥 갑자기 AI 생각이 난다. 창작이란 소재를 맥락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작가 관점이고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감정의 대비 및 포화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다. 인간의 최종 목표가 예술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했었다. 나는 그것이 의미있는 주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회피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창작이란 창조가 아니라 소재를 맥락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라는 건 AI가 인공지능으로서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지능과 AI의 메커니즘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AI는 인간처럼 배고픔이나 추위를 느끼지는 못한다. 또한 감정을 온전히 느낀다고 할 수도 없다. 그건 생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AI가 오감과 감정 및 욕구를 결코 체득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기술적인 면에서(작가 관점에서) 그것을 충분히 설계하여 '겉으로 보이기에는 충분히 그런 것들을 가진 것 처럼 보이는' 경지에 충분히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딥 러닝의 도움을 받아서 실현될 수도 있고 이전의 문명의 산물처럼 순수한 인간의 지성만으로 실현될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게 가능해진다면 단순히 인간의 비서가 아니라 실제 인물이나 캐릭터를 충분하게 모방하는 것은 충분할 것이며 그것과 소통할 수 있다면 사람은 드디어 실체가 없는 대상과 진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경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예술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예술의 정의부터 해야한다. 예술의 요소 중 하나로 '고도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은 비생산적이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예술은 사치일 수도 있다.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과제를 앞에 두고 있는데도 휴식할 시간부터 찾는다면 그것이 사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하지만 사람은 나름의 '이데아'를 마음에 둘 수도 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곳에 다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탄산의 거품이 다 빠지고 팝콘이 뒤엎힐 정도로 내 마음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싶다. 목표 설정은 인생의 한 요소이며 그건 각자의 자유와 제한을 어느 정도씩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귀신같이 까먹었다. 모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한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나는 지금도 거진 5분 간격으로 할 이야기가 없어 아무것도 못쓰다가, 기어코 할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라서 막 적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나는 내 자신이 50% 정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너무 단편적인 판단 기준일까. 또 편협한 시야를 나는 가졌던 것 같다. 이럴 때에는 거리를 멀리 두어야 한다. 바로 지금의 내가 하려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