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에 한 번 기억을 잊고야 만다

아주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탓에

매일 일기를 적지 않고서는 일상생활이 힘들다


그렇게 이십년 이상을 살아왔다

결과물이라면 방 안을 가득 채운 내 일기장들

일 주일에 한 권을 쓰는 그 노트는

어느덧 칠백칠십칠 권이다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어디서 어떻게 됐는지

언제 왜 그랬는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그 기록은 너무 무거워 져서

이제 나는 그 일기가 나 자신인지

일기를 쓰는 내 몸뚱이가 자신인지

통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일기를 가지고 나갈 수도 없어져서

내가 나일 수 없을 것이 두려워져서

저번 주 부터는 외출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가 의문이다

이제 방 밖을 나가지 않는 나는

완전히 이 일기 더미에 종속되었다

그렇다면 이 일기가 나의 본체일까


이 일기가 불타면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사라져가는 걸까


칠백칠십칠권째의 일기는 허무한 생각

일기장 첫 출에 오늘의 표정을 그려본다


헤롱대는 소용돌이가 나의 표정이었다

이제부터 아마 매일 표정만을 그리면서 살것이다

더이상의 외출은 할수 없어졌기에


아마도 이 일기장에 묻혀갈 것 같다

오늘의 표정은 스마일.

내일의 표정은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웃어. 웃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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