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수림의 한 가운데에서 있었던 일이다. 울타리 바깥은 달콤한 열매들이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수확의 장이며 늑대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사냥터. 열 몇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였을까. 땅에 떨어진 열매를 줍던 중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는 늑대가 있었다. 짙은 회색의 털을 가진 늑대는 이따금 몸을 떨기만 할 뿐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이라도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떤 위협도 없이. 하지만 그건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알고 있었다. 나를 향한 시선은 처음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그대로였기에. 등을 보인다면 수풀 사이에 숨겨둔 발톱으로 나를 꿰뚫을까? 날카로운 송곳니로 나의 몸을 찢어발길까? 그저, 그럴 뿐인 일일까. 그런 나는 가만히 늑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늑대는,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꽤나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자그만한 어린 아이가 아닌 나는 이제 손바닥으로 들어 해를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커졌으니. 땅바닥에 떨어진 과일만 줍던 그 시절과는 확실히 다른 하루를 살고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이 몸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피를 느끼며. 분명, 그럴테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그 날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우연찮은 도움으로 늑대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그 때 내 몸에는 짙은 회색과 먹이를 노리는 눈동자가 아로새겨졌다. 곤봉을 든 아버지들이 지키고 있는 울타리 안에 늑대가 있을리도 없는데도, 나는 이따금 늑대의 시선을 느낀다. 그를 생각하며 불안을 꿈꾸고, 공포에 덜덜 떠는 몸을 못내 추스리면서도 그를 그리게 되는 나는,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자라와 숨을 쉬는 나는 언덕 위에 가만히 누워 한껏 여유를 부린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지만 내겐 너무도 먼 이야기이다. 정말 가끔가다 별 거 아닌 일을 할 때 빼고는 내게 아무런 의무도 주어지지 않아서, 배가 고프거나 저들이 나를 부를 때가 아니라면 나는 언덕의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구름, 나뭇잎 사이를 파고 드는 햇빛과 같이.


 하지만 오늘은, 있는 그대로 사는 어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일어날 시간이야.”


 손을 뻗지도 않았는데도 해가 가려졌다. 빛을 대신해 자리한 건 익숙한 사람의 얼굴.


“...아버지.” 


“너한테 그렇게 불릴 이유는 없을텐데.”


“모두가 그렇게 부르잖아요.”


 남자건 여자건, 그 몸집이 크건 작건, 어떤 구별도 상관없었다. 아버지라는 말은 본래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름보다도 더 친숙한 것이었고, 본인도 내심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내 아이들’의 아버지지 너의…”


 구태여 내색을 하지 않는걸까. 아버지는 무어라 말을 꺼내려다가 입을 닫고, 다른 말을 꺼냈다. 


“...빨리 일어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먹을 거라면 지금 많이 있잖아요. 며칠은 안 나가도 될텐데.”


“그런 시시한 일을 하러 가는 게 아니야.”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동굴로 간다.”


 오늘은 분명 날이 아닐텐데, 어째서? 어떤 생각이냐고 물어볼 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얼굴에 떠오른 의문을 읽고.


“설명은 나중에 할테니까, 어서.”


 나를 채근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울타리를 넘었다. 새가 지저귀는 나무 사이를 걷는다.


 울타리 너머, 열매를 따는 곳에서도 멀리 떨어져있는 동굴. 우리가 그곳에 가는 날은 정해져있다. 특이한 일을 하는, 하릴없이 지나가는 하루와는 다른 때. 해가 질 때 즈음을 경계로 모두는 조심스레 울타리를 건너 숲으로 향한다. 울며 보채는 아기도, 길을 잃는 아이도 있지만 발길을 멈추지 않고 향하는 곳. 횃불을 키고 동물을 내쫓으며, 결국 발걸음을 옮기는 곳. 


“다른 사람들은 안 오는 거에요?”


“언젠가는 오게 될 거야, 언젠가.”


“그러면 오늘 왜 동굴로 가는 거에요?”


“...”


 아버지는 아무런 말없이, 앞길을 걷기만 했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 뒤부터 우리는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도 시리다고만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할 뿐. 


 그렇게 우리는 동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한낮이었지만, 오히려 그 탓에 어두운 입구가 더 눈에 밟혔다. 


“밤에 볼 때랑 다를 줄 알았는데, 다를 건 뭐 없네요.”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왜 불렀을까. 지금이라면 분명 그 의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물어보려던 찰나로.


“우리 모두가 왜 여기를 찾는 지는 알고 있겠지?”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두가 여기를 찾는 이유. 모두가 이 동굴에 오는 건 사냥을 위해, 또 풍족한 양식을 위해. 어느 누군가가 이 안에 들어가 바라마지 않는 소원을 그린다면, 그 소원을 위해 절을 올린다면 그는 분명 우리의 손에 주어진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삶의 한 순간. 


“살기 위해서잖아요.”


 이게 정답이겠지. 그렇게 답을 말한 내게 아버지는.


“잘 알고있구나.”


 미소를 지어보였다. 얼마만에 받는 호의인가. 이제 아무래도 좋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그림을 네가 그려라.”


“예? 잠깐 뭐라고…”


 갑작스런 권유에 당황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버지는 내 팔을 붙잡고 동굴의 안으로 나를 끌고갔다.


“잠깐… 아버지 잠깐만…”


 그 손길을 뿌리 치려고 했지만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동굴의 깊숙한 곳, 어느 낭떠러지의 앞에 섰다.


“너는 저 아래에서 그림을 그린다.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꿈을, 소원을 그리는 거야.”


 아버지는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가리키며 말했다. 혼자서는 기어오르지 못할 그 아래를. 애시당초 저런 곳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햇빛을 맞이할 수 있을까. 


“저같은 게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순간 시린 바람이 등을 스치고, 나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아….으….”


  …단단한 벽에 부딪힌 몸이 비명을 지른다. 찢어진 무릎,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팔. 그를 통해 전해지는 고통은 자연스레 신음으로 새어나와, 하지만 그렇게 앓는 소리만 낼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나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저 사람은 나를 버릴 게 분명하니까.


“아…애시당초, 윽. 그…그림, 그거 중요하잖아요…”


 모두가 찾아오는 곳에 그려지는 그림이다. 나같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그릴 수 있는 것일리가 없다. 나는 이곳에 ‘잠시’만 있다가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구걸했다. 


“저같은 게 그, 그리면 망쳐버릴 거에요. 무엇이든, 뭐든지… 모두가 오는 그 날도 형편없이 되어버려서…”


 혼자가 되면 나는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테니까.


“...”


“그러니까 제발, 제발 꺼내줘요. 가서 무엇이든 열심히 할테니까 제발, 여기만큼은… 여기에다가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등을 돌린 채로, 한 마디 말을 남겼을 뿐.


“때가 되면 찾으러오마.”


“아버지…아니, 아빠. 잠깐만…”


 숲을 거닐며 맞았던 시린 바람은 예언이었을까.


“여긴 너무 어두워. 혼자 있기 싫어. 나, 나 그 때 처럼 또 버려지기 싫어. 제발, 제발 아빠…”


“이런 소리를 다시 하기 싫었는데, 나는...”


 입이 채 닫히기 전이었지만 어쩐지 이어질 말을 알 수 있었다. 온 몸이 으스러질 때까지 흙바닥을 뒹굴던 날의 기억. 


‘나는… 우리는 너의…’


 비명을 질렀다. 귀로 흘러 들어오는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머리를 파묻고 소리를 치기만했다. 언젠가의 고통이 지금 이 순간을 잊게 해줄 거라 생각해서. 그럴 리 없다는 걸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데, 나는 다시 실수를 반복한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어서.


 더 이상 토해낼 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고개를 들어 저 위를 바라보았다. 남자… 아버지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이, 희미하게 새어들어오는 빛이 동굴의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 날카롭게 깎아진 돌, 그 끝에 맺혀있는 맑은 물방울. 하지만 역시 그 사이에는 어떠한 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

.

.

 눈을 뜬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동굴의 바깥, 햇볕이 나를 맞이할 거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등 뒤에서 부터 전해지는 서늘한 감각이 현실을 알려주었다. 나는 이 동굴에 홀로 앉아있다. 언제쯤 저 위를 향해 오를 수 있을까? 애시당초 이 바깥에 나갈 수나 있는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로 해는 저물어, 진실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 찾아와 몸을 웅크렸다. 


 …며칠이 지나고서 나는 오히려 해가 저무는 순간을 바라고 있었다. 햇볕을 뚫고 아버지가 나를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에 지쳐, 그런 기대도 품지 않기를 바라는 하루. 실망만 할 바에야 고통에 몸부림치는 게 낫다고. 그 사이로 말라 비틀어져가는 어느 날, 나는 불안을 꿈꾸었다. 


 내가 쓰러져 있는 이 곳에서 열 몇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눈동자가 번뜩였다. 생각해보면 이곳은 울타리도 무엇도 없는 곳. 아무도 나를 지켜줄 수 없어서 등을 돌리지 않는 게 최선인 늑대의 사냥터. 나는 희미하게 번뜩이는, 저 눈을 바라본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나만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분명 늑대이리라. 그는 내가 힘이 빠진 걸 확인하면 당장 그 아가리를 벌려 나를 씹어먹겠지. 그것이 나의 끝이라고, 공포에 떨며 그리던 순간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늑대를 바라보았다.  


“...저기.”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늑대의 울음소리 대신.


“들.. 내…리가…”


 사람의. 


“...너…괜…아?”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에 답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저게 나를 부르는 소리였으면 좋겠다고, 나는 아직 늑대에게 잡아 먹히기 싫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