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타를 읽고 자라지 않은 사람의 글이 읽고 싶다는 말에 대하여, 또한 현대 순문학에서 자주 보이는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프로파간다적 문학이라고 해야 하나. 다만 프로파간다를 단순히 어떤 정치적 메시지에 한정하지 않고, '얘기하고자 하는 것'의 범주까지 넓힌다면 그럴 테다.


 우선 몇몇 순문학 작가들에게 사과해야겠다. 최근 강의로 인해 몇 편의 현대 한국 문학, 개중에서도 여성 작가(미리 말하지만 여성편력이 아니다. 교수가 그렇게 준비해서 어쩔 수 없었다)들의 단편을 읽으면서 느낀 점인데, 서사가 없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스토리가 있고, 전개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읽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서사보다는 그저 겉치레에 불과하게 느껴진 것이다.


 당시에는 이게 무슨 문제인지 몰랐는데, 최근 서두의 말을 보고서 미약하게나마 깨달았다. 나는 인물의 관계와 심리, 감정, 사회적 위치 따위에 집중해서는, 서사를 메시지를 위한 장치로 쓰는 소설에 질린 것이다.


 조금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현대 문학계가 단순히 예쁜 글을 쓰는 것에 집착한다는 문제와도 일맥상통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것 같다. 말하자면 이야기의 진전보다는 순간순간의 아름다운 감정에 집착하는, 그래. 작품 전체가 단순히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하는 공허한 메아리 같았다.


 그래서 포타를 읽고 자라지 않은 사람의 글이 읽고 싶다는 것은, 복고주의이지만 동시에 소설의 기능에 대한 부름이기도 한다. 필자는 여전히 소설의 오롯한 기능은 서사라고 믿는다. 그저 서사가 아닌, 다른 어떤 매체보다 서사의 압축과 표현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