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내전 중인 발키리 부대에 등장한 주인공.
새 근무지에 떡을 돌리기도 전에 출장부터 잡혔다.
출장지는 대장간.


*



"흥흐응흥♪."


이동이 따분해진 소녀가 발걸음 하나하나에 노랫가사를 흥얼거릴 즈음, 

소녀는 대장간 마을에 이르렀다.


마을은 독특하게도, 외곽에 담장과 문을 둘러 낯선 이의 침입을 막는 모양이었다.



"계세요?"



소녀가 마을로 들어가는 문을 두들겼다.


마을 안에서의 대답은 없었다.



"거, 아가씨 마법소녀요?

동화책에서 본 그대로구만."



옆에서 한 남성이 소녀를 불렀다.


인간치곤 반투명하고, 다리도 없이 둥실둥실 떠있었다.


소녀가 토끼눈이 되었다.


질문을 받기도 전에 남자가 자기소개를 했다.



"놀랐남? 마법소녀면 괴물도 볼 텐데 귀신을 보고 놀라네."



얼떨결에 마법소녀로 인식된 소녀는 해명할 생각도 못했다.



"귀, 귀신이요오? 어디요?"


"여기 있잖나. 나."



쉬이 신용하기 어려운 내용이렸다.


소녀 발키리는 땅에서 작은 돌을 주워 남자에게 던졌다.


돌은 남자의 몸을 뚫고 바닥에 떨어졌다.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인제 믿겠는감?"



"으힉"하며 소녀가 두손을 앞으로 모았다.



"잡아먹지 마세요! 저 맛 없어요...!"


"내가 왜 잡아먹겠남.

아휴, 성불은 글렀구만."


"정말 안 잡아먹으실 거에요?"


"그래."


"진짜요?"


"그렇대도. 아가씬 잡아먹히고 싶은감?"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왜 여기 계세요?"



한번 그렇게 정해지자 겁이 없었다.


어쩌면 모습처럼 정신도 어린애여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이 아가씨 의외로 당돌한 구석이 있구만'하고 사내는 생각했다.



"아가씨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지."


"저 같은? 왜요?"


"여기 이, 내 이마에 이걸 보게."



남자의 이마엔 먹으로 그린 듯한 숫자가 써져있었다.


'7'이었다.


숫자는 이내, '6'으로 변했다.



"뭐라고 써져있나."



소녀는 본 바를 그대로 전했다.


남자는 한탄했다.



"그렇구만. 시간이 별로 없군그래."


"이거 혹시...."



소녀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전생에, 게임의 설정집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녀가 빙의해있는, 이 세상에 대한 설정집이었다.


남자는 소녀의 추측에 확신을 주었다.



"맞네. 남은 시간이야.

6이랬으니 6일 남았겠군.

설마 망자의 몸에도 남은 시간이란 개념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그 시간 안에 발키리가 성불을 시켜줘야한다는... 거였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설정집에 적혀있지 않던 부분을 물었다.



"이 안에 성불을 못하면 어떻게 돼요?"


"전에 같이 다니던 망령이, 이게 0이 된 적이 있었네."



'이게'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남성은 이마를 가리켰다.



"사라지더구만."


"사라진다고요?"


"그래. 흔적도 없이.

끔찍하고 두려워서 달아나버렸네.

다른 발키리들은 뭘하는 겐가? 수많은 망자들이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데."


"그게-."


"애초에 다들 이상하네.

발키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염소는 울음소리라곤 조금도 안 들리며

간혹 보이는 헬헤임의 심부름꾼들은 바닥에 엎어져 죽어가고 있어.

우릴 저승으로 거둬갈 이가 하나도 없네."



어른의 불평에 아이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죄송해요. 저도 잘 몰라요, 신입이라."


"신입? 신입 마법소녀인가?"


"신입 발키리인데요."


"발키리라고?"


"아, 전투복 따로 있어요."



소녀가 '변신'하고 외치자 은색 드레스가 소녀의 몸에 덧씌워졌다.



"더더욱 마법소녀같구만은."


"발키리라니까요."



양자 주장이 평행선이었다.


더 따지려던 망자의 넋은 "그, 저기... 어유, 됐네."라며 포기했다.



"진짜 발키리면 성불이나 시켜주게. 지상에 남아있긴 께름칙하니."


"성불이요? 어떻게 하는 거에요?"


"그야 자네가 알지 않겠나.

날 발할라든 트루드반가르든으로 끌고 가주게."



발할라와 트루드반가르, 둘다 저승의 명칭이었다.


남자의 간절함과 소녀의 황당함은 서로 엇갈리는 대화를 낳았다.



"저 그런 거 몰라요."


"엥? 모르는 게 어딨나. 하기 싫단 겐가?"


"진짜 몰라요!

전 신입이라고 했잖아요.

애초에 게임할 때도 얘는 논플레이어블이었... 아차, 이건 말하면 안 되나."


"논플레이어블이 뭔가? 알 수 없는 말일랑 관두고, 내 부탁함세."


"여하간 몰라요. 다른 발키리한테 요청해보세요."


"다른 발키리가 안 보이잖나.

혹, 귀찮아서 그러는 겐가?"


"대장간에서 일하는 발키리들 있다고 들었어요."


"나도 그 소문 듣고 왔네만...."



사내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듬성듬성 솟은 대장간들말고는 죽은 쥐조차 보이지 않는 쓸쓸한 마을엔, 역시나 발키리라곤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없잖나."


"이상하네요."


[겨울이라 남쪽으로 날아가기라도 했나보지.]



소녀가 등에 진 보따리에서 난 소리였다.


[으으 허리야!]하며 여우가 뛰쳐나왔다.


황색 보따리.


대장간에서 무기를 회수해올 때 쓰라고 받은 것이었다.



"깼어?"


[내가 시체라면야 그렇게 떠들어도 마저 자겠지.]



피식.


유령 남성이 웃었다.



"아가씨네 그... 말하는 여우도 나처럼 귀신인가?"


"아뇨. 저도 잘 몰라요."



오늘따라 모르는 게 많은 소녀였다.


막 이 세계에 빙의했을 당시의,

'설정집이라면 열심히 읽어봤으니 내가 다 아는 것일 터'라던 자신만만한 태도는 간데없었다.


여우는 스스로 해명하였다.



[요정 비슷한 거야.]


"전에 요정이라고 불렀을 땐 엄청 화냈으면서...."


"그 옷에, 동행으로 요정?

완전히 마법소녀지 않나! 아가씨."


"발키리라고요."


[됐어, 시시한 얘긴 관둬.

해는 지고 있고 갈 길은 멀잖아.]


"무슨 말인감? 해는 쨍쨍한데."


[비유야 비유.]



남자가 다시금 물으니 아직 할 일이 많지 않냐는 뜻이었다.



"맞아! 대장간 발키리들!"


"그래, 내 성불!"


"예?"


"응?"



잠시 또다른 마찰이 있었다.


짧은 갈등은 [대장간의 발키리는 성불시키는 법을 알고 있겠지]라는 조언으로 종식되었다.



[그럼 뭐가 됐든 마을로 들어갈 수 밖에 없겠네.]



소녀가 마을 입구를 막는 문을  가리켰다.



"문이 잠겨있어."



소녀는 보여주기식으로 몇차례 문에 걸린 자물쇠를 흔들어보았다.


자물쇠는 굳게 잠겨있었다.


귀신 사내도 거들었다.



"나도 들어가려 했는데 통과가 안 되더라구.

자물쇠와 담장을 중심으로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모양일세."


[이 걸쇠냐?]



여우는 툭툭 자물쇠를 두드렸다.


두드린대도 육구가 있는 발바닥으로 건드린 거라 말랑말랑한 느낌이었다.



[이런 건 때리면 열려.]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잖아.

차라리 내가 무기로 부술-."



소녀가 마법으로 대포를 꺼냈다.


꺼내자마자 무의미한 짓이었단 걸 지적당했지만.



"어? 열렸다.

아가씨, 이거 열렸는데?"


"?"


[봐. 됐잖아.]


"?"



소녀가 대문짝만 해진 눈으로 자물쇠를 살펴보았다.


자물쇠에 이상은 없었다


분명히 단단히 잠겨있었을 터였다.



"뭐 이런...."



소녀는 황당해하였다.


마을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셋은 마을에 있는 대장간 중 가장 큰 곳을 들어갔다.


대장간 내부도 사람은 없었다.


대장간은 풀무질을 하는 곳과 완성된 무기를 놓는 곳으로 나뉘어있었다.


후자에는 잘 닦인 무기가 즐비했다.


화로 근처엔 검게 탄 숯이 이따금 붉은 빛을 내비쳤다가 사라지곤 했다.


대장간의 벽에는 못을 박아서, 망치나 집게를 걸어두고 있었다.


내부가 침침한 대장간은 사람이 없는 점과 맞물려서, 어쩐지 으스스한 인상을 주었다.



"아무도 없네."


[곧 돌아오겠네.

우물가에 애를 두고 갔으니.]


"웬 우물?"


[저긴 못다꺼진 불씨가 있잖냐.

누가 집 태워먹으려고 불을 안 꺼뜨리고 나가리?]


"오오. 여우야, 너 머리 좋다."


"아가씨네 여우가 참 영특하네."



남자와 소녀가 짝짝 박수를 쳤다.


[그, 그런가?]라며, 여우는 답잖게 부끄러워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왜 나간 거 같아? 여우 네가 생각하기엔?"


[불씨를 놔두고 갔단 건 급하게 자리를 떴단 거지.]


"그렇지?"


[대장간이 여기말고도 마을에 수두룩했지.

그 중 사람이 있는 곳은 한군데도 없어보였고.

다같이 급하게 이동해야 할 일이란 게 뭐가 있을까.]


"알겠다!"



소녀가 아는 체를 했다.



"다들 소풍 간 거 아니야?

약속시간에 늦어서 서둘러 나온 거지.

소풍 점심은 치즈김밥인 거고. 히히, 맛있겠다."


[농담하는 거지?]


"아, 아니야? 미안해...."



여우의 핀잔을 먹고 소녀가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남자가 추측했다.



"마을을 공격당해서 도망이라도 간 거 아닌감?"


[대장장이 밥줄인 망치를 두고 갔어. 돌아올 생각은 분명히 있던 거겠지.

그리고 공격당한 마을치곤 너무 깨끗하잖냐.]


"소풍 맞는 거 같은데...."


[그것만은 단연코 아니다.]


"어렵구만."


[어렵지? 여기서부턴 어려워서 나도 잘 모르겠다.]


"뭐야 그게! 그럼 소풍 맞을 수도 있는 거네."



싱거운 결론이었다.



[정보가 적으니 어쩔 수 없잖냐.

꼬맹이, 넌 여기 오기 전에 들은 내용 같은 거 없어?]


"대장간에 나쁜 놈이 나타났으니까 무찌르고 오랬어."


"그거구만."


[그거네. 대장간의 발키리들이 괴물 사냥을 나갔구만.]



아무래도 소녀는 지능까지 소녀 수준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여우의 말을 듣고, 그제서야 소녀가 '아'하며 알아듣는 체를 했다.



"어쩌지? 나도 가세해야 하는데."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건 그래... 힝."



어쨌거나 정보가 너무 적어서, 할 수 있는 건 대장간 마을 관광 뿐이었다.


셋은 다른 집을 들러보고자 대장간 밖으로 나왔다.


실외로 나간 그들의 눈엔 보라색 물체가 들어왔다.


성인 남성의 주먹만한 크기의 그것은 공중에 둥실둥실 떠있었는데, 앞에서는 삼각형으로 보였고 뒤에서는 사각형으로 보이는 기묘한 물체였다.


심지어 위에서는 원으로 보이는 이것에 대해, 각자 한마디씩 털어놓았다.



"뭔가? 이건."


[예전에 언뜻 봤던 기억도 있는데... 이게 뭐였더라.]


"그러게요. 뭘까요 이건.

떠있는 걸 보니 초전도체?"


"그게 뭐야. 먹는 건감?"


[아, 이쪽에 뭐라고 문자가 써져있네.]



삼각형으로 보이는 각도에서, 여우가 일렀다.


둘은 여우에게 가서 얼굴을 붙였다.


찌그러진 타원 모양의 문자였다.



[유쾌한 물건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뭐였더라, 이게?]



여우의 감상이었다.


돌연 하늘이 어두워졌다.


그들 머리 위의 하늘만 어두워졌다.


먹구름치곤 신통한 조화라 모두 고개를 들어 올려보았다.


전신이 돌덩이인 거인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재빨리 위험을 감지한 건 꼬마 숙녀였다.



"괴, 괴물이야!"


[괴물? 어디.]


"나와라!"



한차례 거두었던 대포를, 소녀가 다시 꺼냈다.


돌덩이 거인은 굳이 소녀의 촉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돌덩이는, 골렘의 외모치곤 인간의 육성과 무척 닮은 목소리를 내었다.



"침입자.

침입자 발견했다."


*


역시 옆동네 대회 출품작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ts임.
원본은 이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