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어둠의 끝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을 발견했다. 눈이 멀 정도로 빛나는 태양을 향해, 앞으로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된다. 단 한 걸음만 이라도 발을 뻗는다면 나는 다시 어머니의,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차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리고 두 눈은 오히려 어둠 속에서 빛을 찾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앞이 안 보이는 일은 없었으니까. 비록 땅을 기는 구더기를 삼킬지언정 뭔지 모를 것을 먹는 불쾌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물에 비친 내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한 치의 탁함이 없는 투명한 물결임에도 내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을까. 놀라 뒤를 돌아봐도 그 답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홀로 괴로워할 뿐.

 결국 나는 나아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어중간한 목표에 멋대로 타협해서, 그마저도 차마 참아내지 못하는 외로움에 포기해버렸다.

“결심은 섰어?”

 그런 내가 뭐라도 되는 것 처럼 말해도 괜찮을까. 같잖은 자존심에 불과할 지 몰라도… 그래도 저 사람을 바깥으로 보내주고 싶다. 나와 똑같이 이곳으로 굴러 떨어졌지만, 저 사람만큼은 나와 다른 삶을 살기를. 나와 비슷한 저 사람만큼은 이곳을 벗어나 구원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니, 여기까지 왔으면 다른 말이 필요 없겠지. 빨리 출발하는 게 좋을 거야. 해가 오래 있을수록 여러가지로 편할 테니까말야.” 

 돼먹지도 않은 너스레를 떨면서 나만의 이별을 준비하는 때.

“역시 그렇겠죠. 해가 떠있을 때 밤을 보낼 준 비를 해야할테니까요. …그래도 전.”

 뜸들이는 말투가 이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분명히 이룰 수 있는 소망을 포기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만큼 기대로 부풀은 마음은 멋대로 믿고.

“이대로는 나갈 수 없어요.”

 멋대로 배신 당한다.

“...널 데려올 사람들이 생각나서? 그렇게 돌아가 봐야 좋은 꼴은 못 볼 거 같은데.”

“그런 건 알고 있어요. 저도 바보는 아니니까. 단지…”

 한 번, 숨을 고르는 소리.

“함께가 아니고서야, 어디로 향하던지 다시 혼자가 될 것만 같아 두려워요.”

 그건 오로지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 돌아갈 곳도, 향할 곳도 잃어버린 사람이 마지막으로 추구하는 건 결국 단 한 사람이었다 …지독하게 나를 닮은, 그를 보는 내 가슴 깊숙한 곳부터 구역질이 치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가줬으면 하는데.”

“이유를 여쭐 수 있을까요…?”

“이런 곳에서 썩어가기에는 네가 너무 아까워.”

 나를 밀쳐내려는 내가 너무 역겨워.

“너의 행복은 저 빛의 아래에 있을테니까.”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마구잡이로 내뱉는 내가 싫어서.

“그러니까 너는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해. 그래야만 한다고!”

 그러면서도 끝내 나만큼은 구해내지 못하는 내가 비참해… 참을 수가 없다. 생애 처음 바란다. 이 어둠 속으로 숨어들 수 있기를. 하지만 저물지 않은 태양이 우리를 비추고, 저 사람의 슬픈 눈초리가 있는 그대로 내게 다가온다. 그곳에 비친 내가 보기 싫어,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는 순간.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곳에 떨어지고, 행복하다고 느낀 때가 여럿 있었어요.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얼굴도 몰랐던 당신의 호의를 받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저 사람은 우리의 추억을 말한다.

“...비웃지 않을거야. 그 마음은, 나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어.” 

“다행이네요. 그런데 저는요. 저는 처음이었어요. 다른 누군가가 저를 신경 써준다거나 그 사람들과 평범하게 대화한다거나.”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느꼈다. 울타리 안에서, 그럴 일이 있을리가 없을텐데.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이 이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살면서 그러지 못한다는 게 역시 이상한 일이죠. 그런데 있잖아요, 저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당연한 일이었을까요. 나는 수풀에서 주워온 아이니까, 결국 나는 그 사람들의 자식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말에 올려다 본 얼굴은 금방 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울먹이고 있었다.

“그저 울타리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갈 뿐. 옆에 다른 아이가 있지 않았더라면 금방 늑대에게 잡혀 먹혀버렸을 거에요. 그런 식으로 이어온 삶에 좋았던 일이라고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 입을 열 수 없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빌어먹을 시간 속에서 좋았던 일이라고는 딱 하나였다는 걸. 그리고 나는, 어느새 내가 그토록 내치려 발버둥 친 사람의 품에 안겨있었다.

“어디를 향하더라도 제 행복은 당신에게 있어요. …그리고 그건 변하지 않을 거에요.”

“...나도 마찬가지야.”

 이 동굴에 떨어지고, 정말 긴 시간이었다. 이제서야, 이제서야 나는 한 발 내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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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은 지천에 과일이 떨어진 수확의 장이자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들이 눈을 번뜩이는 사냥터. 황량한 고원은 이 대지의 위대함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신성한 곳이자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척박한 땅. 바다는, 강은, 그리고 하늘은… 앞으로 두 사람은 이토록 가혹한 환경을 마주해야만 한다. 겨우 살아가기에도 벅찬 땅에서, 결국 누군가 쓰러질 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기적인 사람의 본성 탓에 심하게 다툴지도 모른다. 그 끝이 비극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사람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그럼에도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발을 뻗는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은 해가 지지 않은 푸른색. 두 사람이 그리는 내일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