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순천의 한 거리. 이곳에는 밤만 되면 스리슬쩍 나타나는 가게가 있다. 절대 낮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12시가 되면 나타나는 작은 가게가 있다. 여기는 바로, 심야식당이다. 오늘도 12시가 되자마자 주인장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가게문을 열자마자 한 여자가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제발, 저에게 안식을 주세요." 그는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곧 국수 하나가 나왔다. "천천히 먹어. 급하게 먹다가 체하니까."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안식이 국수 이름이냐고? 그건 당연히 아니다. 이 가게는 들어오는 사람의 기분에 맞추어서 주인장이 특별한 재료를 넣어 요리를 해준다. 그게 국수든, 비빔밥이든, 선짓국이든.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그가 첫 손님에게 물었다.
"그냥...안식이 필요했어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근데 왜 여기 상처가 있는거지?"
"사실은... 헤어지자고 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뺨을 올려붙이더라구요..."
"나쁜놈... 어떻게..그런 짓을 한거야..."
"모르겠어요. 항상 그 사람은 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저를 옭아매고 집착했죠. 전 그게 너무 싫어서 갈라서자고 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왜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걸까요..과도하게 집착하면 오히려 더 힘들다는 거를..."
"관계라는 걸 자기 한 사람 입장에서 생각한거지. 자기가 끌어당기기만 하면 네가 따라올거라고 생각한거야."
"그랬군요...전 그사람에게 맞춰주기만 했어요. 그게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제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군요."
"알았으니 다행이야. 일단은 여기 왔으니까, 편안하게 있다가 가. 면 더 줄까?"
"아뇨, 괜찮아요. 조금만 쉬었다 갈게요. 감사합니다."
30분 후 첫 손님이 일어섰다. "감사했어요, 다음에 올 수 있으면 올게요." 주인장은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첫 손님이 나가자마자 한 남자가 들어왔다. 이 남자는 첫 손님과는 다르게 웃고 있다. 그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장님 오늘은 어떤 음식이에요? 궁금해요."
"기둘려라, 알아서 줄게."
"아 그러지 말고 한번만요...헿"
"기다리라고 혔다."
10분 뒤 나온 음식은 달래장을 넣고 꼬막을 친 꼬막정식이었다.
"또 이거에요?"
"무슨 소리지?"
"맨날 저 울적할 때만 주셨던 음식이잖아요. 오늘은 텐션 최고라구요."
"그래, 난 그런데 왜 너의 눈에서 그림자가 보이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적막이 이어졌다. 적막을 깬 건 주인장이었다.
"굳이 힘든데도 안 힘든 척 하지마. 힘들면 주변 사람에게라도 말해."
"제가 말 안해봤을 것 같아요? 말했는데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뭘 그런 걸 가지고 힘들어 하냐고 하고 일부는 병신이라고 욕까지 하고... 이러니까 힘든데도 안 힘든 척 가면을 써야되는 거에요. 그걸 표내면 사람들은 비수를 꽂아서 더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버리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근데 그거 알아? 그런 사람들은 어차피 너를 떠날 사람들이야. 겉에서만 위해주는 척 하고 정작 네가 힘들 때는 떠나버리는 게 그런 사람들이야."
"저도 그런 건 알아요. 하지만... 알면서도 못 놓겠는걸요... 인연이라는 게 있잖아요.."
"놓을 인연은 놓는 게 좋아. 그걸 붙들어 매는 건 참 힘든 짓이야. 인연은 바늘이 박힌 고운 비단옷과 같아. 평소에는 매우 소중하고 귀하지만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순간 바늘이 살을 찌르듯이 너의 마음도, 몸도 갈가리 찢겨 나가게 되어 있어. 널 위해서야. 놓을 건 , 확실히 놓아버리고 훌훌 털어버려."
그 말을 끝으로 가게에는 밥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슬픈 울음소리는 이미 들어간 채였다.
"다 먹었어? 이제 문 닫을 시간이야."
"네, 다 먹었어요."
"그릇 저기다가 갖다 놔. 그리고 있잖아, 사실 내가 말은 쉽게 했지만 놓는 것도 어려워. 적어도 네가 부담스럽지 않을 선에서만, 천천히 보내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어."
"알겠어요. 이젠 돌아가 볼 때가 되었네요. 감사히 잘먹었습니다."
"그래, 가서 푹 쉬어."
이 말을 끝으로 그도 가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가게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