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작은 육첩방에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하나 둘 스쳐지나간 일이 떠오르곤 합니다. 별이 내리던 동리의 밤하늘. 흐르던 별 무리 사이에서 툭ㅡ 슬그머니 나와 고즈넉하게 내 옆을 밝히던 별 하나. 끝이 보이지 않게 쏟아져 숨막히던 별들 사이에서 저는 그대를 보았습니다. 가식의 전짓등과 오만의 달빛 사이에 서있던 당신은 가장 밝지는 않았으나 순수한 흰빛으로 반짝이셨지요.


시간이 지나 와사등 빛에 치여 하나 둘, 어릴 적 동무를 잃고 또 기억도 마멸해갑니다. 보고싶던 별들은 전지와 달빛에 씻겨나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다 서느런 바람을 느끼며 고개를 듭니다. 분홍빛을 덧칠한 듯 빛을 뽐내이던 구름을 어디선가 몰려온 어둠이 뒤덮고 있습니다. 어둠은 서서히 미끄러져 하늘을 덮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달빛이 쏘일듯 쬐이기 시작합니다. 오만하게 빛을 내는 달을 보니 오늘도 동경에는 별이 보이지 않을 듯 합니다.


작은 책상을 끌어와 원고지 칸을 하나하나 메워갑니다. 태양빛을 탐욕스럽게 훔쳐와 뿜어내는 육첩방 남의 나라 달빛 아래, 희고 정하던 고향의 별빛을 저는 오늘도 써나가고 있습니다. 


<묘비명 싸게 해드립니다>


그는 초조해지고 있었다. 지난 몇 년동안 자신을 먹고살게 해준 일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빈곤이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교양이라고들 하지만 그도 옛 이야기에 불과했다. 당장 배를 곯는데 펜을 잡을 일이 쉬우랴. 그는 자신의 남은 돈을 억지로 상기하며 잠시 치워두었던 원고지를 가져와 끄적이기 시작했다.


선생의 호는 OO, 자는 □□이다. K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선생은 정의롭고 총명한 소년이었다. 애국심이 투철했던 선생은 후에 만주국 장교가 되어 대일본제국을 도와 중국 진출에 힘썼다...


남자는 여기까지 쓰고 펜을 쥐고 있던 손의 힘을 풀었다. 데구르르. 펜이 굴러 떨어졌다. 


시인은 문인은 무엇인가. 글을 쓴다? 무슨 글을? 좋은 글을.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아름다운 글. 아름다움은 또 무엇이구? 모르겠다. 나는 시인인가? 모르겠다. 내 글은 아름다운가? 아니아니. 애초에 글이 아름다우면 무엇하나? 그저 내게 급한 건 내일 먹을 빵 한 조각인것을.


잠시간 생각을 놓은 사이에 흘러간 상념들은 그를 지독한 모멸감에 들게 해 끝없는 자조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했던 생각은 무엇인가. 이게 아까 전까지만 해도 가식의 말을 혐오하고 그에 피로해 하던 사람의 모습인가?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소주를 마신다. 곧 빈 병이 된다. 조선 독립 만세. 잃어버린 과거의 잃어버린 열정이다. 술 만 마시면 과거의 상념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많고 많은 파편 중 하필 저것이 튀어나오는 건 무슨 까닭이냐.


어둠이 날아들어 남자는 불을 있는대로 밝혀놓는다. 불을 켜고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밝힌다. 어두워지고 그렇게 잠이 들면 과거에 쌓아놓은 오욕의 역사 위로 미래의 사서(史書)들이 함께 심장을 짓눌러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날이 밝고 남자는 다시 펜을 드니, 속세와 절연치 못해 양심을 거세당한 지식인의 표상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