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는..'
공책위에서 묘기를 부리며 자유롭게 움직이던 손이 어느 순간 멈춰 섬과 동시에 흑연이 바스러지며 흰 종이를 검게 물들이는 소리가 사라졌다.
익숙한 사각거리는 소리가 귓가에서 물러나감에 따라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의 남자도 정지된 시점 속에서 가만히 서성이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손은 자신을 멈추어 세운것에 항의하듯 연필을 위에서 아래로 흔들며 종이를 가볍게 건드렸고, 나의 머릿속 또한 손을 다시 움직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힘겹게 작업을 이어나려 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었고 그녀는 그의 글을 보며 잘 썼구나, 소설 속 남자아이가 불쌍하다는 등의
평가를 중간중간 내리며 그의 글을 감상하고 있었다.
어느덧 끝에 다다르자 그녀는 글에서 좋았던 부분과 고치면 더 좋을 것 같은 부분은 어디인지 일러주며 그의 글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라는 문장이 손끝에서 나올뻔하였다.
실수로 쥐약을 먹고 이를 후회하며 뱉어내는 사람처럼 나 또한 독이든 이 문장이 생각났던 것이 후회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독은 이러한 질문을 내려놓았다.
"아무도 읽지 않은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본래 독이라는 것들이 몸을 마비시키는 것이기에 이 또한 내 손을 굳게 만들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글을 쓸 때는 망각하고 있던 기초적 상식이 지금에 와서야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상식은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나를 제외한 어떠한 생존자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도.
일 년하고 육 개월까지는 붉은색의 휴대용 라디오의 다이얼을 움직이며 내 행동에 반응해 줄 소리를 찾고 있었지만
희미하게 잡히는 여러 말들은 어떠한 위안이나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원래 초기의 계획대로라면 라디오로 신호를 받고 방공호의 가능한 모든 물자를 챙겨 밖으로 나가 신호를 따라가는 것이었지만 나에게는 신호도 방공호의 열린 문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영원히 갇힌것이다.
사실 기억을 타고 올라가면 최초의 계획은, 정확히는 그들의 명령은 방공호에서 VIP가 올 때까지 계속 대기할 것이었지만 결국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마 이것이 앞으로 벌어질 내 계획의 최후에 대한 복선일 것이다.
처음부터 꼬여버린 계획이여.
그렇기에 내가 미치도록 글 쓰기에 전념했는지도 모른다. 글은 특히 소설은 무제한적인 상황과 사람, 공간을 다루기에
나 또한 그들의 입을 빌려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었고
지금 다시 되돌아 읽어볼 때 이는 어떠한 가치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내 글이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어쩌면 타인의 인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만약 이게 맞는다면, 이게 사실이라면
여태껏 써온 모든 것이 사상누각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해야했다.
그래서 갑작이 모든것이 싫증이 났다.
더 이상 그녀와 그 사이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내 글 속에서 그녀와 그는 영원히 하나의 글을 부여잡고 있는지도 모를 의미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었다.
싫증이 났기에 방금까지 쓰고 있던 공책의 종이를 구겨서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럴만한 힘도 의지도 없었기에 그러지는 않았다. 대신 연필을 내려놓고 침대로 움직여 몸을 쓰러지듯 떨구었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기에 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우며 안식을 찾기 위해 시도했으나 역시 어떠한 도움도 될 수 없었다. 이 계획조차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연필과 공책을 보았다.
나무로 감싸진 흑연이 내동댕이 쳐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그것들을 떠받들고 있는 책상도 볼 수 있었다. 고급진 목제로 만들어진 값비싸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 모두가 눈에 들어오고서 마지막으로 공책이 보였다. 공책에서 흑연이 빛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쓴 부분이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은근히 아름다웠다. 빛나는 모습에 뜻을 부여한다면 즉,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를 말한다면 빛과 가장 대비되는 색인 검은색이 모순적으로 빛에 의해 빛나며 더욱 그 모습을 뽐내는 상황이 나에게 역설의 미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과연 내가 했던 모든것이 의미가 없었을까?"
모든 것을 부정했던 문장을 다시금 부정하는 문장이었다. 내가 썼던 모든 글들이 단지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타인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무의미한 것일까?
책상을 바라보다 튀어나온 생각이기에 나는 책상을 지켜보며 생각을 이어나가다 어떠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연필의 흑연에 비해 공책에 묻어 나온 흑연이 더욱 반짝이며
더 아름다웠던 것이다.
독에 중독되어 괴로워하면서도 정작 눈앞에 있는 해독제를 보지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나는.
이토록 공책이 빛나는 까닭은 그곳에 목적을 가지고 새겨진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흑연과 종이로 살아있는 하나의 인격을 창조하고, 목적도 이유도 없는 것에게 목적과 이유를 부여하는 행동의 결과인 그 무언가는 단언컨대 모든 것이 가치 있었다.
반짝이는 글을 보며
가장 반짝이는 물체, 문뜩 별이 떠올랐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은 죽어버린 모든 사람의 생각속에서도 여전히 반짝이며 그 가치를 증명할 것이다.
세계의 온갖 고전들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마지막 기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기에 가치가 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서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라도
아름답게 그 글들이 새겨져 남는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던 것이다.
손에 힘이 들어가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
그와 그녀는 다시 활기를 얻어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내게 영원한 추억을 남기며.
'...가치를 더하고 있었다. 그의 글에는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기에.'
+) 예전에 쓴 거 올려봤음, 이상하거나 잘못되거나 고쳐야 할 점은 댓글로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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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꿈을 펼쳐라 그것이 바로 문학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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