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징글입니다. 읽으시고 이 새낀 뭐하는 병신이지 싶으실 수 있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싶으실 수 있습니다.

 딱히 목적은 없고 제 심정을 적은 글이니 행여 읽으신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 읽으셔도 좋구요. 

비판과 오타, 맞춤법, 띄어쓰기 등의 지적은 달게 받겠습니다. 비난도 달게 받겠습니다.




스물 네 살 처먹고 기말고사 망쳐서 한탄하는 글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과연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물론 자기성찰이 아니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압박감에 못 이겨 해야 할 때나 종종 생각한다. 당장 눈 앞의 향략을 쫓아 근시안적인 행동을 취할때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즉, 변명이고 도망이다. 다만 여태껏 이 정도로 강렬하게 이런 사고에 휩싸인 적은 처음이다. 방아쇠는 물론 시험이다.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응당 이런 결과는 당연하며 내가 받아 들여야 한다. 공부를 안 해놓고 시험을 잘 보겠단 도둑놈 심보를 가지진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당연한 결과다. 허나 그리 달갑진 않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스물 넷이란 나이는 젊은 동시에 늙은 나이라 생각한다. 세상을 알기엔 아직 어리지만 철 없이 행동하기엔 너무 늦었다. 스물 넷이란 나이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나이인가 보다. 그도 그럴게 난 아직도 철없이 행동하며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며 당장의 즐거움만을 쫓고 있으니 말이다.  여태껏 내 멋대로만 살아왔는데 어느새 내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결코 원하던 건 아니다.

 나라고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이 없던 것은 아니다. 내가 어른이 돼서 무슨 일을 하며 밥 벌어 먹고 살지에 대해 학생때 종종 생각을 해봤다. 그 당시엔 적어도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어 묵묵히 굴러가는 그런 인생만은 피해겠다고 스스로 결심했었다.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 명확히 단정 짓진 못하였지만 창작가가 되고자 했던 기억이 있다. 내 생각, 신념, 인생관 등을 하나의 작품으로써 표현하며 살아가길 원했다. 내 작품이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버리는 상상을 하며 잠들곤 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며 이 글을 적는 지금, 겨우 수년이 지났지만 나이가 들어버린 내가 보면 참 허무맹랑하고 창피할 뿐이다.

 부모님이 추천해주신 대학에 진학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몇번 더 했다. 물론 시험을 망치고 나서다. 스무 살이던 나는 나름의 진지한 고민으로 대학을 휴학하고 8개월간 내 인생의 갈림길를 고르기 시작했다. 어느 길로 가는게 맞았을까. 아직 그 정답을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스무 살의 내가 골라 이제껏 걸어온 이 길이 내 인생의 정답인가? 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오답임에 틀림없다. 
 8개월이란 시간은 굉장히 길다. 어떤 것이든 하나 쯤은 이루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휴학한 동안에 뭐 했어요? 정말로 피하고 싶은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8개월 간 이뤄낸 것은 커녕 배운 것도 경험한 것도 없다. 8개월이란 긴 시간을 써서 알게 된 것은 그저 내가 빌어처먹을 게으름뱅이에 도망만 치는 겁쟁이란 것 뿐이다. 웃으며 이런 대답을 해주면 상대도 덩달아 같이 웃어준다. 그나마 다행이다. 덕분에 나도 이 곱씹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으니까.

사실 8개월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스물 다섯살 처먹고도 아직도 시발 정신 못차린 새끼

오랜만에 somnote에 로그인했다. 아카라이브의 창작소설채널을 둘러보다 문득 생각이 나서다. 들어오자마자 이 글이 보였다. 글귀를 쭉 읽어보니 당시의 내 모습이 기억난다. '소설이고 자시고 간에 글을 쓰는 능력을 먼저 길러보자'. 편도 두 시간의 하교를 시작할 때 든 생각이었다. 30분간은 술술 써내려갔다. 내 솔직한 심정을 적으려니 막히는 거 하나 없이 글이 적혔다. 매우 신났었다. 접었던 소설가의 꿈을 다시 꿔봐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딱 30분동안만. 스물 네 살에 적은 글이 미완성인 이유다. 고작 30분 적다 말았다. 조금 적다가도 금세 질려 게임이나 했을 것이 뻔하다. 지난 1년간 나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가 않다. 슬슬 두렵다.

 요즘에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게 되면 주요 화제는 직장생활이다. 일 하다가 누가 뭣같이 굴었네, 오늘 무슨 사고가 있었네, 내일도 출근해야 된다는게 너무 싫다네 등등. 나 혼자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화자의 말을 듣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대화 방식이니까. 친구들의 직장생활을 듣다보면 재밌는 이야기도 많고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비록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지만 나름 즐겁다. 다만 동시에 불안하다. 아직은 학생이란 방패가 있어 취업이란 단어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지만 그것도 앞으로 1년뿐이다. 내년엔 졸업을 해야 하고 취업해야 하고 나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부모님의 비호 아래에서 평생을 살 순 없다. 현실이란 단어가 점점 무서워 진다.

 당장 직면한 문제는 대학 성적이다. 3년제 대학이기에 올해로 3학년인 난 원래 대로라면 내년 2월에 졸업을 한다. 그런데 학점이 모자라다. F를 맞은 과목이 몇 개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한 손으론 못 셀거다. 정말 막막하다.

 새벽 3시에 잠이 안와 이런 푸념을 적고 있자니 다시 울적해진다. 겨울방학이 끝나가는 2월 26일. 국가고시 응시를 대비하려던 작년 12월달의 패기넘치던 나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두꺼운 문제집은 고작 앞 부분 10장 정도만 펼쳐봤고 새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아는 것 하나 없는 멍청하고 철없는 복학생으로 돌아간다. 또 다짐하고 포기하고 실망한다. 내년에도 이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똑같은 패턴에 질릴때도 됐건만 질리질 않는다. 분명 다음에도 이럴거다. 그래도 오늘은 나름 기분이 좋다. 혼자서 끙끙앓던 고민들을 글로 표현해보니 나름 괜찮은 것 같다. 당나귀 귀를 가진 미다스왕의 이발사가 파낸 구멍에 임금님의 비밀을 폭로 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오늘도 친구들과 만날 약속이 있다. 점심이 지나고 PC방에서 친구들과 만나 걱정따윈 전부 잊고 즐겁게 놀 터다. 저녁이 되면 같이 밥을 먹으러 가 자연스레 반주(飯酒)를 시작할 터다. 오랜만에 만나는 인연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타 들어가는 입 안을 술로 적실 터다.
 새벽 3시에 잠이 안와 이런 푸념을 적어보니 조금 담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