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생각하던 소재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단순히 그것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글을 쓰는 건 재밌었다.

누군가 봐주지는 않았지만, 내가 무언가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래서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머리 속에 소재는 많았으니까.

너무나도 빠르게 써내려갔다.

그렇게 생각했던 소재들이 모두 떨어졌을 때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그저 글을 쓰고 싶다는 본능만이 남아있었다.

지금 와서 다른 것을 보고 소재를 떠올리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본능이 허락하지 않는다.

글을 쓰라는 명령에 온 몸이 지배당한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그냥 귀찮거나.


뭐라도 생각해 내야 한다, 머리를 굴린다.

'난 글을 적고 싶지만 적을 내용이 없어서 슬픔을 느낀다.'

이걸 주제로 적는다.

"이것도 수필의 일종이니 상관없지 않은가?"

아니다. 이건 비상식량과 같은 개념이다.

이것 또한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다음에는 난 이와 같은 주제로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소재를 생각해야 한다.

아니면 아무것도 못한 채 텅 빈 메모장을 보며

슬픔을 느낀 채 앉아있을 테니까.


잘은 모르겠는데 그냥 슬프더라고 

보통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내 주위의 물건을 보고 글을 쓴다.

꽃이 있다면 씨앗과 관련된 글을

저금통이 있다면 돈과 관련된 글을 쓰는 식이다.

옥탑방으로 이사 온 후, 전보다 좁아진 방에

내 물건 대부분을 처리하고 나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시 슬픔이 몰려온다.

옥탑방에 갇힌 죄수처럼,

없어져버린, 없었던 피해자에게 슬픔을 호소한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뚝. 필름이 끊기는 기분이다.

뭔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뭔가 떠올려야 했었는데.

내가 뭘 쓰고 있는거지?

아, 그래.

지금 글을 쓰는 가치가 있을까?

가치가 있어야만 글을 쓰는걸까?

지금 쓴 글이 내가 나중에 쓸 글에 쓰이는 대사가 된다면

지금의 나는 무너져도 나중에 내게 도움이 된다면

무의미한 시간들을 바쳐 가치를 빚어낸다면

무의미한 시간을 바꿀 수 있는걸까?

그래, 아마도 "덜 효율적인" 시간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피차 정상적인 시간에 비하면 폐급이지만

0보다는 0.1이 낫지 않겠는가?

남들이 훌륭한 작품 10개를 쓸 때

난 한 개라도 쓰면 되는 것이다. 그거면 만족한다.

언젠가 나올 하나의 작품을 위해.


생각나는 말을 계속해서 적어나간다.

운이 좋다면 나중에 보면서 뭐라도 하나 건지겠지

사실, 글에 목적도 주제도 아무것도 없다.

그냥 심심해서 적는 것이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글을 쓰는 데에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누군가는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지금 안 들리니 상관없다.

내가 뭘 하든 내 마음 아니겠는가?

문득, 예전 기억이 났다.

독서를 할 때는 어떻게, 저렇게 하라고 강요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못 배워먹었느니 책을 그냥 심심풀이로 안다느니 별 개소리를 다 했었다.

내가 책을 찢든 태워서 포장을 해서 침대 밑에 넣어놓든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하는거다.


무슨 상관인가?


세간에선 그걸 오지랖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안타까운 마음에 한 두 마디 할 수는 있다.

그렇게 책 읽으면 안 좋아요. 하고

그러면 기분은 나쁘지만 아, 충고해주신거구나. 하고 생각할 수는 있다.

정보까지 준다면 나야 오케이다. 서로 좋고 윈윈 아니겠는가?

근데 그 사람은 독서를 하는 마음가짐이 글러먹었다고 말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었다.

배운 사람인지도 모르겠지만, 뭐 배운 사람이면 다인가?

박사나 석사면 초면인데도 아 맞습니다 하고 따라야 하는가?

심지어 내가 겪은 바로는 진짜 박사 석사, 그런 사람들은 안 그런다.

그런 사람들 말을 듣고 별 이상한 사람들이 미쳐가지고 그런다.

마치 사이비 교단에 휘둘린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는다.

"책은 엄숙하고 교양있는 자세로 읽는 것 아니면 다 부질없다구요!"

미친년이라는 수식어구는 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 게 아닐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말했다고 옳다구나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


그저 학위를 따냈다고? 그것도 들어본 적도 없는?

학문이 사람의 업적이 되어야지 권위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뭐,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빡치네

그땐 어려서 아무 말도 못 했었는데...

지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며 뭐라며.. 생각하기도 싫다.

관련된 예전 생각 하나가 더 난다.

초등학교 때였는데, 수업이 끝나고

교문 앞에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1년에 두어 번 정도 오시는, 흔하지 않은 분이라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사 먹겠다고 결심했었는데
 
마침 가방에는 500원이 있어서 바로 달려가 마지막 남은 하나를 샀다.

그때만 해도 세상 행복했었는데.

솜사탕을 들고 집에 가는 길, 그것도 5분채 되지 않는 길거리.

어떤 이상한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왜요? 하고 물으니 솜사탕에 뭐가 들었는지 아냐고 묻드래?

설탕이겠죠? 했는데 아니랜다.

몸에 나쁜 게 많이 있댄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일리는 있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대부분 위생상태가 좋지 못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오래된 기기로 만드는 솜사탕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럼 거기서 끝냈어야지.

그래요? 라는 나의 대답에, 그는 나무젓가락에 꽂혀있던 솜사탕을 빼서

바닥에 던진 다음 솜사탕을 여러 번 발로 밟아버렸다.

그것도 내가 보는 눈 앞에서.

파란색 솜사탕에 검은색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그 뒤는 기억이 잘 안난다.

너무나도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었다.

울음조차 안 나왔다.

그냥 머리속이 이상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내가 왜 이런 일을 겪고있지?

정신을 차려보니 난 빈 나무젓가락을 들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집 와서 서럽게 울었다.

내 동심은 그 발자국과 함께 찍혀졌다.

아직도 솜사탕만 보면 트라우마가 떠오른다.

초등학생이 그런 일을 겪어도 뭘 어쩌겠는가?

무력하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아저씨도 그걸 알고 초등학생한테 그런걸까.

악질중에 악질이 따로 없다.

더 빡치는건 지가 그러고도 선행을 했다고 착각하고 있을거란 점이다

그 새끼 지갑 언제 한번 털렸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솜사탕 하나따위로 저주를 내리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 동심과 그 때의 추억을 망친 거로는 이것도 싸다.

... 하.

세상엔 미친새끼들이 많다.


왜 근데 그냥 길 가던 나한테 엮이는지 모르겠다.

아 진짜 그때 그 솜사탕 완전 기대하고 있었는데

두 입도 못 먹고 뺏겨버렸다

심지어 돈도 안 돌려줬다, 한 달 용돈이었는데 그거.

됐다. 다 지나간 일 아니겠는가?


아니. 지나가면 단가?

그런 일이 있었고 트라우마가 남았으면

어떻게든 극복을 해야하는데 맨날 지나갔다 지나갔다


어쩌란건지 모르겠다 이 감정은 지나가지를 않았는데

사건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데

지나갔다며 넘기라고 한다.

다들 편하게들 산다. 


아, 머리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짜증과 피곤이 반 반.

슬슬 자러가야겠다.

설마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읽어줘서 고맙다.

네게 축복이 있길 바란다.

가끔 생각나는 걸 계속 적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나만 괜찮은 게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