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오늘 소설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편의상 주인공이라 부르겠습니다.

뭐 어떱니까, 외우기 쉽고 좋은걸요.


그래요. 아무튼 이 친구가 살아온 환경이..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이 도망가시고.

고아원에서도 따돌림을 당했네요?

오, 저런. 시작부터 너무 가혹한 거 같은데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주인공.

나름 매일 책도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잘생긴 건 아니라서 연애는 못 했지만요.


저런.

그래도 나름 공부머리는 있었는지 꽤 성적이 잘 나오네요?

결국 어느정도 괜찮은 인서울에 골인했습니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 받았답니다.

알바로 천천히 갚는다고 하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일과 공부를 같이 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닌데 말이에요.

뭐, 그게 가능하니까 주인공 소리를 듣는거죠!

그렇게 힘들게 다니는 대학생활도 잠시.

어렸을 적의 트라우마였을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그런 성격이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들다고 하네요?

기껏 용기낸 첫 MT에서 거사 한번 치르시고 그대로 휴학하셨답니다.

하하하! 그래서 대인기피증이 더 심해졌나봐요!

주인공은 알바하는 시간 이외엔 방 안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군대는요?

운 좋게도 전시근로역으로 빠졌어요! 


참, 주인공 군대 갔으면 자살했을 수도 있었겠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뭐 아무튼 다음 복학까지 시간이 남은 주인공은 알바와 집만 번갈아 갑니다.


세금은 모두 자동이체로 돌려놨으니까. 식비랑 월세만 내면 되거든요!

우편이든 택배든 하나도 신경쓰지 않는 주인공.

저 꽉 찬 우편함 좀 보세요! 죽은 줄 알고 누가 신고할 지도 모르겠네요.


뭐, 이런 걸 신고할 만큼 요즘 사람들이 한가하지는 않지만요.


그리고 우편이 쌓이든 말든 뭔 상관입니까?  


계좌에 돈이 쌓여가는데 말이에요!

정확히 5개월 뒤.

주인공의 통장에 일곱 자리 숫자가 찍혀있습니다.

주인공, 이거 그래도 꽤 괜찮게 사는데요?

감동에 겨운 주인공은 내일 아침은 돈까스 김밥을 먹기로 결심했어요.

돈까스 김밥이라니, 이거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거든요!

기본 김밥보다 2천원이나 비싼건데, 어지간히 기뻤나봐요.

슬슬 대학도 다시 복학하고 졸업하면 괜찮은 기업 들어가서

결혼은 못 해도 연애 정도는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하하. 그랬으면 이 이야기가 나오지를 않았겠죠.

돈까스 김밥을 사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들떠서 였을까요?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띄는 꽉 찬 우편함을 정리하려고

품 가득히 편지들을 들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 별 내용은 없는데요? 대부분 대출 받으라는 광고인걸요..


그리고 음.. 이건 뭐죠?

아, 주인공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편지입니다.

그것도 4개월 전에요.

하지만 이미 강인해진 우리의 주인공.

얼굴이나 추억조차 없는 부모님은 이미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실 조금 걱정했었는데, 별 신경도 안 쓰네요!

그렇게 생각하고 편지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주인공.

돈까스 김밥을 먹는데, 절반조차 먹지 못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이었는데요..

아무리 강인해진 주인공도 결국은 사람이었나 봅니다.

앞으로 돈까스 김밥은 못 먹겠네요.

뭐 아무튼 입맛도 떨어졌으니 아까 편지나 계속 보도록 합시다.


사인은.. 자살이네요.

하긴, 병 들 정도로 그렇게 늙지는 않으셨거든요.

장례식에는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가면 못 버틸 것 같다네요?

뭐, 상관없죠.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잖아요?

주인공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앞이 창창한 미래만 남아있는데,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내일은 월급날이거든요!

돈까스 김밥 대신에 더 맛있는 것 좀 먹었으면 좋겠네요.

뭐, 주인공 마음이죠.

평소와 같이 알바를 마치고 월급 입금만 기다리는데..

..사장님께서 입금이 안 된다네요?

당장 X협 중앙은행 고객센터에 전화를 거는 주인공.

계좌가 압류 상태라는데요..

그럴리가요? 주인공은 빚도 착실히 갚고 있었다구요!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죠?


편지.

주인공은 우편함을 살펴서

밑에 차마 발견하지 못했던 편지를 발견합니다.

상속 관련 안내였는데요..

빚이.. 3억이랍니다.

괜찮아요! 주인공은 상속포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이 나라는 그렇게 가혹하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무지한 사람에게는 예외였네요.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니까,

상속포기는 돌아가신 후 3개월 이내에 해야 가능하다네요?


부모님이 언제 돌아가셨다구요?

아.

저런. 주인공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분노? 슬픔? 후회?


잘은 모르겠지만,

주인공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기분탓이겠죠.

하루를 그저 죽은 사람인 듯이,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요.

괜찮은건가요? 주인공?


얼른 털어냈으면 좋겠는데요.

오, 뭔가 결심을 한 듯 일어섭니다.

그래요! 이렇게 포기하면 주인공이 아니죠!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파스타" 라고 적혀있는 돼지저금통에서 2만원을 꺼내서 밖으로 나갑니다.

아, 그래요! 기분이 나쁠 때는 음식이죠!

따듯한 음식을 먹고 다시 살아가면 되는겁니다, 그쵸?

근데.. 택시를 타네요?

주인공. 택시비를 쓰고 파스타를 먹기엔 돈이 부족하지 않나요?


뭐 얼마나 유명한 데를 가려는건지 궁금한데요..

여기는 어딘가요. 마포대교네요?

마포대교가 뭐로 유명했었죠..?

아.


설마요. 이렇게 끝내기엔 너무 비참하잖아요?

저기요? 저기요?

어?

어.

신고를 받고 다급하게 구호요원이 달려갑니다.

... 살아있기를 바래야 할 지 모르겠네요.

아, 열심히 찾습니다. 하지만 보이지가 않네요.

두어시간 쯤 더 찾다가 철수합니다.

괜찮습니다. 익사체는 둥둥 떠오르거든요. 3일 뒤면 발견될겁니다.


근데 시체는 누가 처리해주나요?

뭐, 이제는 알 필요 없는 이야기죠.

...

언제나 행복한 일만 있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하나 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적인 인생이네요. 우리 주인공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끔찍하게 죽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뭐, 지금와서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결국 발견되지 못한 우리의 주인공.

지금 막 충격으로 피가 빠지면서 쇼크가 온 것 같은데요.


나름 열심히 헤엄쳤던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네요.


고아원 원장이든 대학 선배든 부모님이든 다 주인공을 버렸거든요!


그런데도, 오지 않을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습니다.

누군가 와줬으면, 마지막까지 그렇게 빌었답니다.


이젠 편해졌으면 좋겠네요.

잘 가요, 주인공.

다음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