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내 자리로 찾아와본다. 그러다보면 나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다. 길을 잃으면 어쩔 수 없다. 즐거운 일도 없다면 꽤 슬픈 것이다. 낭비는 언제까지 허용될까. 그러니 슬퍼진다.

당신이 슬프게도 창 밖을 보고있지 않을 때 별똥별이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름달이 떠있곤 한다. 달은 꽤 예쁘다. 둥근 것은 보통 그렇게 못생기기 쉽지 않다. 우리는 불완전하다. 완벽해보이는 달을 앞에 두고있는데도 말이다. 달은 거대한 가림막이다. 하늘이라는 훨씬 더 광할한 천장을 가리기에는 너무 작은 가리개. 거대한 캐노피라고 할 수 있겠다. 저렇게 이쁜 캐노피를 두고 있는 행성이라니 너무 아름답다. 이 캐노피는 비를 막아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비구름이 캐노피 아래에 있거든. 생각해보면 우산 아래에서 비가 시작되는 거랑 뭐가달라? 너무 웃기네. 사실 비가 올때마다 내가 보고있는 지구가 거대한 수족관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비를 목도한 것이 수만 번 쯤 되니까 이 생각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했겠지. 우산으로 가리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세계. 당신이 지구 어디에 있던지, 어디에서 이 글을 보고 있든지 간에 당신은 쿨하고 멋지다. 웬만큼 멋지지 않고서는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을 수가 없거든. 아. 순간 너무 솔직해져 버렸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내 있는 그대로를 적어보려고 하고 있으니까.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게 어찌보면 슬프지 않나? 원하던 곳이 있는데. 갈망하던 것이 있는데 슬프게 다시 돌아온다. 당신의 익숙함은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의 곁에 있던 것은 계속 거기에 있을테니 지옥과도 같겠네. 당신에게 저주를 퍼붓는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내가 아까 너가 멋지다고 했지만 너는 나의 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슬퍼진다. 그렇게 적대적 관계가 된건 누구의 잘못일까?

벌써부터 내용이 없이 글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나의 버릇이다. 딱히 적고싶은 이야기가 없는데도 계속 글을 적는다. 사실 글을 적으면 마음이 안정될까 싶어서 적는다. 나는 꽤 불안정한 것 같다. 이 불안정은 양성 피드백을 일으킨다. 꽤 기분나쁜 일이고 사실 기분만 나쁜게 아니라 그냥 나쁜 일이다. 이런 것이 진정한 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악은 복제가 되곤 한다. '첫 단추를 잘 꿰어라'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선조의 지혜란.

비는 어디에서든 내릴 것이다. 하지만 집 안에서 비가 내리진 않는다. 비가 내릴땐 소리가 난다. 비는 물의 순환의 일부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가뭄이 된다. 비는 모든 것을 차분하게 한다. 세계가 아래로 내려가는 힘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해준다. 때로 비는 인연의 첫 시작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우산이 있는데도 없는 척 했다' 라는 설정이 붙는게 보통 소설이고. 우산은 혼자 쓰기에도 보통은 좁다. 둘이 쓰면 확실히 좁아진다. 아마도 우산 회사에서 커플들을 배려한 모양이다. 좀 더 잘 붙어 있으라고. 아쉽게도 나는 그런 용도로 우산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우산은 대칭이다. 8각형의 우산대는 은근히 잘 부러지고 휘어진다. 이것도 우산 제조 회사들이 의도한거겠지. 그리고 때로 틈이 생겨 빗물이 흘러내린다. 생각해보자. 달이 틈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가? 달은 적어도 자기가 있는 곳의 빛은 확실히 가린다. 물론 달이 틈을 보일 때가 있지. 이를테면 금환 일식이라거나.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는 여러 틈새가 있었다. 기본적인 등굣길 의외에 틈새라고 할 수 있는 루트가 셋 정도 더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한 곳을 애용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아마 높은 확률로 이렇게 되는 길이었다고 한다면 틈새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갔으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틈새라는 것은 사전적 의미 이상으로 중요한 표지가 되곤 한다. 그것은 있어서는 않아야할 균열이다. 그러니 그 균열은 독특한 가치를 가지기 마련이다. 틈새 사이를 통과한다는 건 알 수 없는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그 순간은 이미 일상이 아니게 된다. 일탈이라고 할까.

어릴 적에 자주 이사를 갔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더 많이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끔씩 물어보는 것이 있다. 꽤 여러명의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삶의 첫번째 기억이 무엇입니까?" 보통 다양한 답이 나온다. 그런데 정말 가끔 물어보는 거라서 요즘 안물어본지 족히 5년은 된 것 같다. 그래서 기억나는 답변도 거의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물어봤던 건 분명한데...... 지금 생각나는 건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답변이다. 자기가 아기였을 때 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집 안을 왔다갔다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광경이 신기하여 계속 지켜봤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나의 경우에는 조금 밋밋하다. 시간의 앞 뒤를 가릴 수 없는 기억이 둘이 있다. 하나는 영어유치원에서 수업을 듣던 기억이다. 두 번째는 유치원에서 준 방울토마토가 너무 먹기 싫었던 것이다. 사실은 후자를 오랬동안 나의 첫 기억으로 알고 있었지만 몇 년 전부터 첫 번째도 조금씩 나의 기억 창고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인생에 의미있으면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유치원을 졸업하면서 준비한 공연이었을 것이다. 그런 것에 소질이 별로였던 나는 정말 고생했었다. 물론 유치원생들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이 이상한 것일  것이다.. 참고로 군대에서는 어느 정도 요구를 하더라. 나름대로 괴로웠다.

나는 종잡을 수 없는 나의 성향이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것이 분명 있긴 했는데 왜 내가 잘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좀 더 잘해볼까 싶으면 더 잘할 수도 없었다. 확실히 짜증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상적인 것에 대한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망상은 길고 깊게 이어지곤 했다. 이상한 설정이 덧붙여진 그것들은 메모장에 장문의 글로 정리되었다가 유실되었다. 꿈을 꿀 때 그 세계의 파편이 튀어나오곤 한다. 꿈에서 귀신이 나왔던 것은 몇 번 없었다. 화려한 꽃밭 위의 덩그러니 놓인 집에 들어갔다가 무서운 것을 보고 깼던 기억은 있는데. 아마 너무 무서웠었는지 정확히 뭘 봤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귀신이 나를 집어 들어올리는 꿈에서는 오히려 내가 그 귀신의 얼굴을 보려고 그 귀신의 머리카락을 걷어내려고 애썼다. 군대에서 꿨었는데 그땐 귀신이 별로 무섭지 않더라. 그러나 집에서 꾼 귀신 꿈에서 한 여자귀신이 내 등 뒤에 꼭 붙은 채로 잠에서 깨어났고 나는 아침에 한동안 뒤를 돌아볼 수 없이 꼼짝않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1만시간의 법칙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나는 2만시간 가량을 무의미한 공상에 투자한 듯 싶다. 공상에 남겨져 있는 것은 꽤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에서 어떤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건 꽤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무의미에서 의미 찾기 말이다. 나는 그런 것이 좋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건 애초에 무의미가 아닐 것이다. 수백, 수천경가지의 가능한 장면에서 극렬한 대비를 보이는 두 장면이 연속된다면 우리의 감정은 분명 충격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이성적인 동물이지만 감정의 공간은 대체로 한정적이라서 공간의 대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대에서 의미가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곳에서 더 합리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다. 알다시피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최대한 더 합리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밤 하늘은 어둡지만 구름이 낀 날이면 지상의 빛이 모여서 밤하늘이 은은한 빛을 띄곤 한다. 물론 구름이 걷혀서 완연하게 보이는 보름달의 빛은 정말 강렬하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조작할 수는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 좀 더 틈새를 탐구하고 세밀한 경험을 하고 싶다. 여러가지 공허했던 경험들을 극복하고 싶다. 감당하기 힘든 쓸쓸한 일도 있었으니 그런 일을 겪었던 나 자신을 좀 더 다독이고 싶다. 즐거웠던 기억은 몇 번이고 되돌리고 싶다.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몇십번씩. 즐거웠던 기억이라고 하니 몇 개의 기억의 파편이 있다. 하늘 같은 공허함을 달 처럼 가려주고 있는 느낌인데. 물론 알다시피, 달은 사실 엄청나게 크다. 캐노피라고 부를 만할 정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