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는 걸어서 3분 거리에 해수욕장과 해변길이 있다. 해변길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식당과 술집, 모텔이 즐비한 번화가와 한적하고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다. 나는 방학이 되면 본가에 내려가 거의 매일 한 두 시간가량 이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이곳엔 고요하고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다.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이곳은 아주 띄엄띄엄 놓인 카페와 공원, 산책로를 따라 심겨진 소나무들이 고요한 바다의 아름다움을 꾸며준다. 


봄에는 오전의 햇살이 따스하게 안기며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나른함을 선사한다. 여름에는 오후의 저녁놀이 보라 빛 구름과 어우러져 붉은 빛을 발하며 우레탄으로 포장된 붉은 도로를 더 빨갛게 비춘다. 길 옆으로는 테트라포드에 부딪혀 철썩이는 물결과 파도소리가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시원한 노래를 들려준다. 가을에는 관광객들이 모두 떠나 한가로운 와중에 이따금 비가 내리면 사람대신 왜가리가 날아와 바닷물에 발 담그며 쉬기도 한다.


 물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바다의 겨울이다. 찹찰한 새벽공기가 가시기 전에 공원 벤치에 앉아 사과를 먹으며, 철썩이는 바다에 부서진 빛의 파편들을 보는 것은 겨울 바다를 산책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바다의 선물이다. 바다는 빛들로 인해 눈부시게 아름답고 나는 곧 수평선과 눈 맞추며 오가는 크고 작은 배들을 구경한다. 이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토록 낭만적인 동네가 나의 고향이라 난 참으로 운 좋은 사내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산책로를 셀 수없이 많이 거닐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들과 때로는 연인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요즘 이곳엔 산책로 건너편으로 건물 짓는 공사들이 한창이다. 벌써 몇 개의 건물들은 식당과 횟집을 열고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고요한 산책로가 사람들로 붐빌 것에 걱정이 된다. 한적했던 그 바다엔 생선말리는 덕장이 있고 짭조름한 미역냄새와 가끔씩 물질하는 해녀들이 있던 곳이다. 번화가 쪽 바다도 원래 그랬다. 원래 그곳도 고기 잡는 어선들이 배 대는 곳이었고 어부들이 낚시하기 전 그물을 손질하며 쉬던 곳이었다. 번화가는 발전하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요식업이나 숙박업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시청에서는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돈을 쓰며 지역경제를 살린다고 한다. 허나 관광객들이 남기고간 플라스틱 컵, 비닐 봉투와 같은 쓰레기들은 방파제 뒤편의 고인 물에 둥둥 떠다니며 바다의 경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이와 같은 쓰레기들을 버릴 권리는 관광객들이 지불한 돈에 포함되지 않는다. 해변길이나 백사장에 버려진 쓰레기들은 환경미화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이 주울 수 있다. 허나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들은 정말 처리하기 난처하다. 번화가 쪽은 이러한 고충을 부담하며 발전해왔다.


한적하고 조용하게 거닐 기를 원하는 주민들은 번화가로 가기보단 산책로를 택했다. 그러던 곳이 이젠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장사하는 가게가 늘어선 모습으로 변해간다. 원래 이 산책로를 끼고 있는 동네는 상업지구라기 보단 주민들의 값싼 주거공간이었던 터라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의 걱정은 이곳마저도 외지인들의 손길을 타며 깨끗했던 바닷길들이 오염되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곳이 깨끗하고 조용해서 혹은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찾아왔다.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이 이곳을 더럽힌다면, 가장 먼저 얕은 물가에 모여 있던 이름 모를 작은 물고기 떼들은 어디에 있겠는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발 씻던 왜가리들은 어디에 있겠는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결국 그 길을 찾던 나와 같은 동네 주민들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생각해보니 마치 백인들에게 쫓겨나던 인디언들이나 할법한 소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 500년 전 침략의 역사가 아니라 당장 내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기에 걱정이 앞선다. 아름다운 경관은 환경이 그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주는 선물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집을 떠나 아름다운 바다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곳의 환경이 주는 선물을 거부하지 않길 바란다. 그렇다면 나도 당신을 거부할 테니까 나는 당신을 유혹하는 바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