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안나지만 잊어버린 게 많았다. 그건 뭐든 멋대로 내팽개쳐둔 내 탓.

상관 없기도 했다. 누가 어찌되어도, 무엇이 어떻게 되어도 좋았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다면 없는 것과 뭐가 다를까.

잊어버린다는 건 그런 거였다.


꿈도 있던 것 같다. 열망도 있었던 것 같다.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희망도, 환상과 아름다움으로 눈을 어지럽혔던 것들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잊어버린 동심. 날카롭게 찔러오는 양심. 무거운 죄책감. 여러가지가 다양하게 담겨 있었다. 상자 안에서 각양각색으로 반짝이는 조약돌과 같이.

그리고 인연. 인간관계. 그런 것들도. 아마?


하지만 어느 날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열어 본 상자는 비었고, 빈 자리를 보며 눈부셨던 색감만을 그리워했다.

그것도 그런 감상으로 끝이었다. 상자 마저도 손에서 떨어트렸다. 잊어버렸을지도.


잘 모를 일이다.

잊어버렸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게 된 걸지도 모르곘다.

이제는 뚜렷한 감정도 없이, 뿌옇게 떠오르고 사라진다.

가질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바라는 것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다시 되찾을 이유도 없었다.


매일 침대 속으로 깊게 가라앉았다.

눈을 감았다 뜨면 하늘의 빛과 색이 변했다.

내일에 대한 기대도 희미하고, 어제를 향한 반성도 무르다.


이불 속에서 모든 게 녹아 사라져 간다.

원한, 기대, 절망, 슬픔, 아픔, 분노도.

작은 방 안에서 거품이 되어.

후회하는 밤에 전부.

잊은 꿈처럼.

사라져서.


잠에서 깨어나면 어느새 미래에 도착한다.

그러면 다시 떠올리겠지.기억 나지 않고, 잊어버린 게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