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조금만 앉아서 뭘 보더라도 가지 않는 시간이 원망스러웠어.

학습지를 풀거나 수업을 들어도 영영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이 느껴져서,

조용히 공책 한 구석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지. 물론 그것도 5분 즈음 지나 질려버렸지만.

뭐, 그럴 때 마다 나는 가지 않는 시간을 원망했어.

빨리 어른이 되게 하지 못하는 시간이 너무 미웠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계속해서 시간을 원망했지.

내 원망을 너무 많이 받아버린 탓일까, 시간은 겉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어.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 오늘 하루가 이미 다 지나가 있고.


눈을 두 번 깜빡하면 이미 일주일이 지나가 있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약속들도 눈을 감았다가 뜨면 어느 새 당일이고

다시 눈을 감으면 그 약속들이 끝나있지.

눈을 다섯 번 감았다 떴더니 어느 새 수명의 50%를 살아버렸고.

여섯 번 감았다 떴더니 병에 걸려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어야 했지.

물론 여덟 번 정도 감았다 뜨니 퇴원하고 있었더라고.

열 한 번 즈음이었나.

눈을 감고 고백하던 모습과

눈을 뜨고 헤어지던 순간이

깜빡. 찰나의 시간 속에서 모두 이뤄져.

난 오늘도 깜빡.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눈을 감기가 무서워져. 눈을 뜨기는 더더욱 무서워.

내가 더 이상 눈을 뜨게 될 수 없을까봐. 영원히 감고 있게 될 까봐.


내가 원망한 시간은 이젠 멈출 수 없는걸까.


깜빡. 깜빡. 깜빡. 깜빡.

오늘도. 내일도. 한 달 전도. 일 년 후도. 내가 죽기 바로 전에도.

깜빡. 깜빡. 


깜빡.

익숙해져버린 모든 일상들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내게

느린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걸까.


소중함을 느끼기엔 너무 무뎌져 헤아리지 못하고 떠나버렸나.

눈을 영원히 감지 않을 수는 없지.

영원히 감고 있는 건 가능하지만.

뭐든 싫어. 난 아직 조금 더 깜빡이고 싶어.

깜빡일 수 있고 싶어.

깜빡. 깜빡. 깜빡. 깜빡.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계속해서. 깜빡이고 싶어.

아직은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