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교실에 나오는 날은 운이 좋다면 주인 잃은 책걸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보통은 사람들이 모두 오기 전에 치워지니까. 오늘 하루는 운이 좋으려는지, 빈 책상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일주일 전 정도부터 예측할 수 있기는 했다. 퀭하니 내려온 눈두덩이를 보고 있노라면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하기는 하다. 


드르륵


잠깐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꽤 흘렀나보다. 출근하자마자 온 건지 담임의 이마에는 땀이 몇 방을 맺혀있었다. 손이 꽤 떠는 걸로 봐서는 이 일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이번이 초임이라 했던가. 누가봐도 당황한 듯 하던 담임은 교실 한 구석에 조용히 있는 나를 보고는 흠칫 하더니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생존 본능은 갖추고 있는 것인가.


'자애로운 아버지는 지켜보신다.' 상당히 네이밍 센스가 구리다. 학교 교훈 말이다. 나름 예술고라는 학교 교훈이 이렇게 함축성이 없어서야. 저걸 지었다는 초대 교장은 아마 굶어죽었다는 쪽에 걸수도 있을 것 같다. 내 의식의 흐름을 끊은 것은 교실의 고요였다. 아. 시간이 지났구나.


팍 팍 팍 팍 .......팍


마지막 소리는 담당자의 것이 날아가는 소리일 것이다. 내용물이 다 튀도록 어설프게 날린 죄로 말이지. 이 사람도 신입인 걸로 알고 있는데, 첫 출근이 마지막 출근이 되었다. 3분 정도가 지나자 오물로 지저분했던 교실이 깔끔해졌다. 남은 이들의 자리에 켜져있는 노트북 화면에는, 1만자짜리 소설 한 편이 빽빽하게 드러나 있었다. 아, 내 노트북 화면은 새하얬다.


* * *


밥도 꼬박꼬박. 잠도 꼬박꼬박. 과분하게도 휴식까지 준다니. 과분하기 짝이 없는 대우였지만 지루한 건 지루한거다. 상식적으로 버튼만 일정 간격으로 누르는 일에 무슨 재미나 낭만이 있겠나. 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인생이라는게 이 정도 반전은 있어야 재밌지. 쾅 소리와 함께 추레한 외모의 남자가 들어왔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그는 나를 보더니 멱살을 잡았다.


"왜 내가 탈락인데? 분량 맞추고 기한 맞춰서 드렸잖아 내가아아아!"


입냄새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에 그런 것을 지적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나는 친절하게 웃으며 답변을 해주었다.


"당신은 내가 글도 못 읽는 멍청이로 보이나봐? 분명히 너의 창작물을 가져오라 했던 것 같은데? 뭐 어디 외국 소설이면 모를 줄 안 건가."


그 말에 남자는 이성이 돌아온 듯 무릎부터 꿇었다. 말도 못하고 떨고 있는 게 꼭 비 맞은 개 같았다. 뒤늦게 병사 둘이 달려왔다. 턱짓을 하자 순식간에 남자가 사라졌다. 잠시 뒤 책임자가 들어왔다. 말도 못하고 눈을 내리 깔고 있는 게 이 인간은 잘못한 개 같았다. 


"나는 이해할 수 있네, 중령. 살고 싶어서 발악하는 인간을 막는 일이 쉽지는 않지."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에 희망의 빛이 약간 서렸다. 


"그러면-"


타앙!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맡긴 일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이 혁신은 무슨. 어차피 죽을 거 힘든 이승 더 살아서 뭐하나?"


그래도 권총을 쓴 건 나름의 배려였다. 가스보다는 덜 아프거든. 


오늘은 나름 괜찮은 날이었다. 반복되는 나날에 일종의 변화점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일은 여전히 지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