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품고 있는 것에 대해서 항상 의심하게 마련이다. 세상에 대해 알아갈 수록, 교양이란 게 쌓일 수 있는 환경일 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자신이 여기고 있는 것, 자기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서 불안하게 여기는데, 이것이 정상이라고들 하는 게 최근 대중매체를 통해서 알려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세태에서 '광신'이라고 하는 건 그야말로 양날의 검일 것이다. 광신을 품어서 나쁜 점이야 당연히 여러 사람들과 달리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이 뚜렷하단 점에서 배척감을 사게 된단 점이다. 그리고 광신을 품은 이들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점 역시 자기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느끼는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단 점이다. 남들은 다 불안에 시달릴 때, 광신을 품는 것으로 자신은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허나, '광신'이라고 하는 것엔 항상 '잣대'가 필요하다. 기준점이 있어야 비로소 광신이란 게 성립될 수 있는 법이다. 잣대도 없이 그저 무작정 광신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당연한 얘기다. 만약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저들 딴에는 그게 양성평등이라곤 하지만-을 잣대로 삼지 않거든, 그것을 과연 페미니즘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런 점에서 '광신'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점이 있는데, '잣대'를 중심으로 한 쪽으로 치우쳐서 형성되는 게 광신인만큼 반대편으로도 광신이 형성되게 마련이란 것이다. 물론 이런 광신에 반대하는 게 마냥 그 대척점에 있는 광신만 있는 건 아니지만, 모든 광신엔 그 대척점에 있는 광신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애시당초 페미니즘은 남성주의의 대척점에서 비롯된 광신에서 시작됐으며, 이러한 페미니즘은 때마침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한 자유주의와 맞물리면서 현재까지 세력을 보존할 수 있는 감이 매우 컸다. 그렇다면 이 '자유주의'는 과연 여성 우월주의를 후원하는 것이냐?


 '자유주의'란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결국 자유주의가 20세기 초의 삼파전,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진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결국 어떤 세력 내부에 있는 온갖 집단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을 억제하는 데 들어갈 비용을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방면에 투자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니까, 나치즘이 유대인들 때려잡는다며 역량과 예산을 낭비하고, 공산주의가 반동들 때려잡는다며 자기네들 역량과 예산을 낭비하는 동안에, 자유주의는 그런 데 쓸 역량을 조직의 실질적인 개선이나 개혁, 생산성 향상, 불만 관리 및 사회 안정망 형성을 위한 복지 제도 등에 투입하면서 효율성을 냈기 때문에 체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기들 세력 내부에 나치, 콩사탕 같은 경쟁자들의 사상을 물고 빠는 놈들이 있더래도 일단 자기네들 체급과 역량을 키우는 쪽에 중점을 맞췄기에 결국 자유 진영이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진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자유 진영이 승리가 분명해진 1990년 이후 지금까지 30년에 걸쳐서 벌어진 일은 뭐라고 할까. 자유 진영 내부에서 서로에게 총질을 가하는 식으로 전개됐다. 비교적 최근에 중국 공산당이 본색을 드러내면서 신냉전이 열렸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겉으론 자유 진영의 탈을 쓰고 있는 상태란 걸 어필하고 있는 것에 알 수 있듯, 그 시기는 중국 공산당조차도 자유 진영에 편입될 것처럼 굴던 때였다.

 이에 자유 진영은 서로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경제'란 이유 하에 전세계에서 총질이 일어났고, 심지어 몇몇 곳에선 정말로 총성이 울리기까지 했으니까. 대한민국, 혹은 느그나라도 이런 총질에 그리 성공적으로 대응한 건 아니었다. 성공적으로 대응했거든 IMF 사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남한판 고난의 행군은 없었을 터이니. 그렇다고 마냥 실패만 했다고 평하긴 어렵지만, 그거야 국가 단위에서 벌어진 일이고, 대중의 삶은 1990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고난을 치르고 있는 처지이다. 그걸 애써 추억이라고 하기엔 우리의 욕망은 이미 통제할 수 없어졌고, 성공한 이들은 자신들이 체제가 밀어줘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잘 나서 그렇게 됐다며 착각하며 타락한 것-이게 실재든 거짓이든 간에 이런 이미지가 형성된 건 분명하다- 같은 게 근 30년동안 벌어진 일이다.


 이런 사회적으로 불안한 내부총질의 시대에, 광신은 어찌보면 대중에 소속된 이들이 택할 수 있는 대안이 되기 쉬웠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 대척점에 있는 광신 역시 세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광신들에 대해서 자유주의는, 자기네들이 이겼던 경험을 바탕으로 묵인했다. 알아서 자정이 될 거라 여긴 걸 테지.


 아이러니하게도 양차 대전기는 기어코 전쟁을 벌이면서 광신이 해소됐고, 인구수가 줄어들면서 생긴 공백으로 인해 생겨난 '기회'가 곧 대중들에게 주어지던 때였다. 1차 대전으로 인해 생겨난 기회는 1차 대전과 대공황 사이의 최고 호황을 만들었고, 2차 대전으로 인해 생겨난 기회는 미국은 냉전 승리 이전의 황금기(1945년부터 1964년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까지 기간)로, 소련은 그런 미국에 버금가는 국가로 국제사회에 인정받게 되는 데 쓰여졌다. 그리고 냉전이 끝난 건 '평화적으로' 끝났다곤 하지만, 실제론 소련이 처절하게 망하고 무너지면서 미국에게 있어 90년대 경제 황금기로 점철됐다. 그 와중에 단물을 빤다 싶던 자유 진영의 국가들 상당수는 IMF를 맞거나, 침체기에 빠져들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광신'은 아무래도 자리잡기 어려운 것이었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자유 진영의 수장인 미국이 수렁에 빠져들게 한 건 자유 진영 밖에서 형성된 광신에 의한 것이었지만, 적어도 자유 진영 내부에서 광신이 자리잡을 틈은 이 기간동안엔 사라졌던 것이다.


 지금 시대는 유난히 '방어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시대이다. 허나, 그러한 방어적 민주주의의 발동에 제약이 걸리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언급한 역사 때문이다. 방어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페미니즘을 때려잡거든, 그게 나치즘이 열등인종을 때려잡는 것이나, 빨갱이들이 반동을 때려잡는 것과 뭐가 그리 다르단 말이지? 이렇기에 방어적 민주주의란 개념은 나왔어도 정작 이게 실현이 된 적은 없었다. 한창 대두되고 있는 페미니즘을 포함해 온갖 광신들은 이 자유 진영이 역사를 통해서 잠정적으로 그어놓은 선을 어떻게든 안 넘으려고 하니까.


 그렇다고 이러한 광신에 대해서 무작정 좋다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광신과 싸우겠다며 본인이 그 대척점에 있는 광신에 빠져드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다.


 페미니즘이 미운가? 여기까진 광신과 그렇지 않은 걸 구분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믿어서 페미니즘이 밉냐고 질문이 바뀌거든, 여기에 대해서 그렇다고 대답하거든 아무래도 대다수 사람들은 그리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것이다.

 광신을 미워하는 이유가 그 대척점에 있는 광신을 믿어서 그렇다는 건, 뭔가 대다수 사람들의 정서에 맞는 것이라기보단 그저 싸움을 벌이겠단 뜻으로 받아들여지니까. 역사에서 줄곧 벌어진 일들이 광신도와 광신도들 싸움에서 그렇지 않은 일이 새우등 터지는 일 아니었던가?


 허나, 특정 종류의 광신을 미워하느냐를 갖고서 광신도들은 이제 영악하게 그걸 갖고 대다수 사람들을 공격하고 자기네 세력으로 포섭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페미니즘이 미운가?'

 밉다고 하면 페미들은 남성주의 광신도라 몰아붙이며 그를 정말로 남성주의자로 몰아가게 유도한다.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 자기네들은 의로운 일을 한 것마냥 자부심을 잔뜩 느끼겠지.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밉지 않다고 하면 어떤가? 이젠 마초들이 너는 페미니스트다, 남페미다 하면서 또 그를 기어코 페미니스트로 전직시키고 말 것이다. 광신은 이런 식으로 서로의 세력을 불려준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역사 속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언급하며 이 글을 마무리지을까 한다.


 페미니즘 같은 경우엔 선사 시대만 하더라도 분명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계 사회들이, 역사 시대에 접어든 문명들이 하나도 예외없이 그들이 주장하는 '유리천장'이 생겼단 것을 좀 더 납득이 가게 설명해야 될 것이다. 그저 폭력에 졌다고 주장하는 건, 나치즘이나 빨갱이들이 자유 진영에 결국 무릎을 꿇은 사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남성주의, 마초들은 그 역사 시대 이후에도 얼마간은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스파르타 같은 사례가 대표적인 마초 국가일 테고, 그 외에 여러 게이 문화들 역시 동성애나 정치적 올바름보단 남성우월주의의 산물로 보는 것이 옳은 면이 있으니까. 헌데, 이런 것들이 결국 산업 시대에 접어들거든 적어도 겉으론 부정되는 것을 설명하지 못 한다. 페미니즘이 세력을 키우면서 기어코 남성우월주의가 무릎을 꿇은 것일까? 글쎄, 페미들은 지금도 남성우월주의, 유리천장을 주문처럼 외고 다니던데 말이지.


 이 외에도 수도없이 많은 광신들이 실제로 국가의 형태로 나타난 적이 있었다. 중국에선 지금 중국 공산당이 비슷한 짓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전에 황건적이라고 아주 유명한 광신도들이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IS도 이 범주에 포함할 수 있겠고, 17세기 유럽의 종교 개혁 당시에 츠빙글리 같은 성직자가 칼을 들고서 개종을 부르짖고 이교도들을 처단하잔 사례도 있었다.

 허나, 여기서 하나 물어보자.

 그런 광신도들 중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이들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인류 사회는 끊임없이 자기자신에 대해서 불안하게 여기면서도, 끝내 광신을 내치는 방향으로 여태까지 걸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P.S.

 이런 점에서 사족 하나 덧붙이자면, 재앙이가 암만 밉더라도 5.18은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5.18이 파란 적폐 새끼들의 방패막이이자 훌륭한 도구인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것이 가진 의의나 거기서 쓰러진 이들이 품었을 상황이라 여겨지는 것들은 대다수 사람들에게도 좋게 여겨지는 것들이다. 당장 여기서 재앙이 운운할 수 있는 것의 배경 중 하나가 5.18이란 사건이 벌어지면서 전두환 그 양반에게 지금까지 부담을 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니던가.

 이것조차 선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좋다. 선동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더더욱 5.18을 미워하고 공격해선 안 될 것이다. 앞서 말하지 않았나? 광신이 스스로를 광신을 불리는 방법이 상대편과 공조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5.18을 미워해서 폭동이네 어쩌네 할 수록, 파란 적폐 새끼들에게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밖에 더 안 된다.


 필자가 이런 소리를 하는 건, 현실적으론 무정부주의를 절대로 주장할 엄두를 못 내도, 무정부주의를 이상적인 모습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파란 적폐 새끼들도 싫고, 빨간 적폐 새끼들도 싫은데, 그나마 빨간 적폐에선 최근에 20대들에게 영업을 시도하려는 정황은 있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곤 보는 그런 형편이다. 파란 적폐들도 멍청한 게 아니라면 이런 움직임에 동조하긴 할 테고. 그렇게 광신이 덜어내진다면야 아무렴 좋은 것 아니겠는가.


 어찌 보면 이 글도 광신의 일종이 아닌가도 싶다. 결국 마지막을 '믿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내가 광신을 끝내 택하지 않겠단 이유를 따지거든 광신이 결국 도태될 것이란 믿음 때문에 그렇다고밖엔 설명할 길이 없는 건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수필 써보는 건, 수필 써보는 게 어떻냔 추천 덕분이다. 뭔가 그 댓글 보고 슬펐지만, 그래도 소설 쓰고 싶은 거 참고 수필이랍시고 써보니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단 느낌이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인 그런 느낌이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