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으로 가야 할 내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귀찮다.

내 브런치에 있는 글을 긁어 왔다. 중간에 예시가 원래는 있는데, 그냥 지웠다.



성인물에 무슨 개연성이니 현실성이니를 운운하냐고 일갈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한때 그러한 생각을 했다.  본질은 행위를 감상하기 위함이지, 문학적 요소를 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개연성과 잘 짜여진 구조가 없는 웹툰은 수레에 오로지 바퀴만 있는 것과 같다. 물론 수레의 목적은 타고 굴러가는 것이다. 


정말 그것이 다인가? 이왕이면 편하고, 물건도 싣고, 빠르게 달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뜬금없이 하는 행위는 아래를 움직이게 할 수는 있어도 마음을 움직이진 않는다. 차분히 흙을 빚고, 정성스럽게 굽는 작업 끝에 탄생하는 화려한 고려청자처럼, 내용의 전개와 인물들의 심리로 직조된 

장면은 단순히 행위만 덩그런히 놓여진 것과 천양지차라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예시가 있다. 新母의 友들 47-49에서는 인물간의 심리의 묘사가 짜임새 있게 형성되어 있다. 靑女가 男과 행위를 즐기려 할 때 黃女가 난입해, (사실은 靑女가 부른) 긴장감이 조성된다. 黃女와 남은 이 작품에서 新母와 비슷하게 정분감정을 느끼는 상태로, 이 모습을 보고 격분한다. 靑女는 이를 달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보자하고, 세 명이서 하는 행위의 효시를 연다. 


여기서 눈 여겨 보아야 할 점은 黃女의 심리인데, 자신의 마음을 들킨 부끄러움과, 靑녀에 대한 은근한 질투, 그리고 행위 자체에 대한 흥분이 상황에 대한 몰입감을 고조시킨다. 또한 男 역시 초반과는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의 입장에서 대리만족과 자긍심(?)을 고취시킨다. 작화 역시 이러한 모습을 충실히 담아 말 그대로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다. 


작화가 좋으면 몰입감은 올라가지만, 작화만으로는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작품의 좋은 구성을 작화가 표현이 가능할때, 제갈량을 얻은 촉나라처럼 튀어오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