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맨 처음 누가 만들고 누가 쓴 말일까. 한국어의 제일 기본적이고 간단한 인사말이고, 외국인들이 한국어 배울 때 처음 배우는 말이고, 인기 TV 프로그램 제목이고, 여러 가수들이 부른 노래 제목이다. 학교에서, 책에서, TV에서 떠들어대는 수많은 말 중 하나다. 흔해빠진 말이다. 나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던가. 아는 것과 XX한 것이 다르다는 말의 바리에이션이 너무 많아서, 이 말이 안녕하세요처럼 진짜로 있는 말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경우에는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안녕하세요를 알지만 실천하지는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천하기 싫다고 해야겠다. ‘안녕하세요야말로 가장 쓸모 없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안녕하세요. 합성어다. 안녕이라는 단어에 하세요를 붙인 거다. 그리고 앞에 붙는 안녕은 한자어다. (편안할 안)(편안할 녕). 사전에는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는 뜻이라고 써있다. 그럼 안녕하세요는 안녕하냐는 물음인가, 안녕하라는 기원인가. 안녕하세요는 문장부호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 ‘안녕하세요?’는 안녕하냐고 묻는 거고 안녕하세요.’는 안녕하라고 하는 게 된다 -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내가 느낀 감정은 가식이었다. 남이 안녕한지가 그렇게나 궁금한 건가? 남이 정말로 안녕하길 바라는 건가? 세상에는 좋은 건 나만 잘 되면 되고, 나쁜 건 나만 아니면 된다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럴 수밖에. 남이 안녕하지 않을수록 내가 안녕하니까. 하지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나는 그런 마음 그 자체보다 그걸 숨기는, ‘가식에 더 짜증났다. 차라리 남에게 안녕하지 마세요.’라고 인사하는 게 솔직하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에게 그러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심정이 든 건 오래 전이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친척 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내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교통사고로 죽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실감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믿기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부모님이 죽는 순간을 못 봤고, 기억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날 키우기 싫어서 버리고 도망가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는 무생식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에 거리낌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아마도 나에게 부모라는 개념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얼굴도 본 적 없다. 사진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하라고? 그리워서 사무치며 울어야 하는 건가? 그리움이라는 감정도 없는데.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 억지로 해봐야 꾸며낸 것, 가짜밖에 안 된다. 가짜는 나쁜 거니까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나를 맡은 친척들은 나를 달가워 하지 않았다. 나도 이해는 되었다. 솔직히 내가 친척들의 입장이었어도 달가워 하지 않았을 거다. 피가 조금 섞였다는 이유로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인간을 떠맡아서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한다는 건 속된 말로 돈지랄이 아니고 뭔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용납은 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친척들의 입장이 아니고 의 입장이었으니까. 친척들도 의 입장이었으면 자기들의 행동을 반성할 법도 한데, 유감스럽게도 친척들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친척들 입장에서 생각한 것도 쓸데없는 짓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내가 머무른 친척집들은 대부분 나를 두고 속닥거렸다. 나더러 일부러 들으라는듯 앞에서 나에 대한 욕을 했다. 특히 한 곳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그 집 아줌마는 집안에 물건이 없어졌다거나 나쁜 일이 생기면 네 탓이네 하고 나를 때렸다. 당연히 그 어느 것 하나도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앞에서 불평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말했다가는 더 맞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점차 그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놀아줄 친구라고는 없었고 정처없이 쏘다니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서 집 근처에 있는 상가 건물의, 아무도 오지 않는 비상계단에 앉아서 생각에 잠기거나 조그만 창문 너머 바깥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발 붙일 데 없이 집에도 못 들어가고 놀이터 그네에 쓸쓸히 앉아있는 아저씨들의 심정을 나는 고작 10대에 느끼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