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땐가, 유달리 일이 늦게 끝났다. 어둑어둑한 밤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달은커녕 단 하나의 별조차 보이지 않았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집으로 오는 길은 인적조차 없었다. 그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 지친 몸을 이끌고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닫힘 버튼을 누르는 순간 바깥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나더니 곧 띵 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 그 여자다. ‘젠장. 더 늦게 생겼잖아.’ 나는 짜증이 났다.
여자는 항상 그랬듯이 “안녕하세요” 한 마디를 했다. 나는 인사를 받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 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안녕 못하면 뭐 어쩔 건데 씨X. 너는 얼마나 안녕하길래 계속 그딴 소리나 하고 다니는 건데?”라고 말했다. 순간 아차 싶어 여자가 들었을까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여자는 못 들은 것 같았다.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내 집으로 뛰어들어가서 문을 쾅 닫았다. 집에 들어가기 직전 그 여자가 날 쳐다보는 것만 같았지만, 내 착각이겠거니 하고는 대충 옷을 벗고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여전히 주변은 어둑어둑했지만, 바깥에서 들려오는 굵직한 발걸음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하지만 그런 일이야 몇 달간 살면서 많이 겪어봤기에, 별 일 아니겠거니 하고 나는 곧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그 소리는 집 앞에서 옆집으로 옮겨가서는, 쿵쿵대는 소리로 바뀌었고, 그 순간 내 눈은 확 떠졌다. 그러더니 그 소리는 ‘달칵’ 하는 소리로 바뀌더니, 말싸움을 하는 듯한 소리가 되고, ‘쨍그랑’ 소리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내 비명 소리로 바뀌었다. 여자의 비명 소리다. 그 여자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눈을 꾹 감아버렸다. 이유라면, 아까 전에 그런 말을 했던 게 떠올라서. 가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가는 것이 겁이 나서. 내 일도 아니니까. ‘귀찮아’, ‘별 일 아니야’, ‘내 착각이면 어쩌려고’, ‘진짜 위험한 일이면 누가 대신 신고하겠지’ 애써 핑계거리를 만들었다. 그 여자의 비명 하나하나가 내 귀를 스쳐지나갔지만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리는 발걸음 소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나는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다음날, 날 깨운 건 지겨운 알람시계 소리가 아닌 애앵거리는 사이렌 소리였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건 햇빛이 아닌 빨갛고 파란 경광등 불빛이었다. 설마설마 하면서 집 문을 열자 아파트 앞에 서있는 경찰차와 이웃집 앞에 깔려있는 경찰들이 눈에 들어왔다. 후다닥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아무 일 없어. 아무 일 아니야.’ 나는 되뇌였지만 정적을 깨고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형사였다. “경찰입니다. 잠시 협조해주시겠습니까?”
나는 겁에 질렸지만 문을 안 열 수가 없었다. 형사는 뭐라뭐라 하더니만 질문을 했다.
“옆집에 사는 XXX씨를 아십니까?”
“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내뱉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이라고 하기도 그런 말이었다. 나는 그 여자의 이름도 처음 알았다. 말을 바꿔야 하나 싶었지만 그럴 새도 없이 곧이어 형사는 그 XXX라는 여자가 어젯밤에 살해당했다고 하더니, 절차라면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마지막으로 피해자와 만난 게 언제입니까?”
“몇 시간 전 엘리베이터에서요.”
“혹시 피해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안녕하세요’라고만 했습니다.”
그 뒤로도 질문은 이어졌고, 마침내 질문이 끝나자 나는 문을 닫은 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어진 질문이 뭐였는지, 그리고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날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일도 나가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다시 침대에 누워 오래도록 잠을 청했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사건 이후 얼마 안가 나는 도망치듯 이사를 했다. 더 이상 그 아파트에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전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낡은 아파트 벽도, 산등성이도, 그럭저럭 참으면서 지낸 소음도 전부 소름끼치게만 느껴졌고, 급한 매물을 어찌저찌 찾아내서 서둘러서 이사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사건은 뉴스를 타고 이슈가 되었고 몇 명인가 용의자를 잡았지만 다들 풀려났다고 한다. 그렇게 수사는 종결되어버렸다. ‘말도 안 돼. 경찰이 못 잡았다고? 내가 신고하면 범인을 잡았을 수도, 아니, 여자가 살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런 생각에서 눈을 돌리듯 ‘평소 같았으면 나는 바로 수화기를 들고 112를 눌렀을 거다’, ‘그저 그날은 너무 피곤해서 그랬던 거다’, ‘설령 신고했어도 바로 경찰이 오진 못할 테니 헛수고였을 거다’ 그렇게 몇 번을 되뇌였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나는 그 여자가 말하던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동안 잊고 있던 그 앵앵대는 목소리 하나하나가 어째선지 또렷하게 기억났다. 그리고 그 말의 마지막 울림까지 떠올리면서, 나는 그 끝에 찍혀있던 문장부호가 뭔지 알 것 같았다.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였다. ‘안녕하세요.’였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진심으로 안녕을 기원한 것이었다. 아파트의 모두에게. 자기만 빼고. 그녀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본심을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똑같이 ‘안녕하세요’라고 했을 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거였다. 그리고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쐐기를 박아버린 거였다. 너는 절대 ‘안녕하세요.’라고 들을 일이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 여자가 죽은 것이 아닐까. 혹시 내가 ‘안녕하세요.’라고 말했으면 그 여자도 무사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내가 어릴적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결심을 떠올렸고, 그게 괜시리 후회되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 ‘에이 설마’로 이어지고, 다시금 나의 자기합리화 속에 파묻혀버렸다. 그게 사실이라고 인정해버리면, 내가 잘못한 게 되니까. 그리고 그렇게 했다면 죽은 게 그 여자가 아니라 나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겁나서.
결국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을 나는 더 이상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로 남게 되었다. 세상은 마치 그 여자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계속해서 돌아갔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더 이상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일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말을 쓰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