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100만 명을 죽였다.'

 어떠한가?


 선악은 기본적으로 지성체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생물체까지 범위를 넓히는 경우도 있긴 한데, 생명체 같은 경우엔 논란이 많으니 일단 쉬운 것부터 들어가보자. 쉬운 걸 해본 다음에 그 생물과 관련된 것도 얘기할 예정이기도 하다.


 '독재가 사람 100만 명을 죽었다.'

 '지진이 사람 100만 명을 죽였다.'


 이렇게 놓고 보면 왜 선악을 지성체에게 해당된다고 한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악은 기본적으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생물체로 범위를 넓힌단 건 무엇이며,생물체에 왜 논란이 있느냐고 할 텐데, 그건 이렇게 보면 알기가 쉽다.


 '흑사병이 사람 100만 명을 죽였다.'

 '호랑이가 사람 하나를 잡아 먹었다.'

 '호랑이가 사람 하나를 물어 죽였다.'


 왜 숫자 단위가 달라진 거냐고 할 텐데, 호랑이가 사람 100만 명을 죽일 순 없으니 부득이하게 줄여놓은 것이다. 그리고 호랑이에 대해선 끝에 서술어도 바뀌었단 것도 보일 텐데, 저것도 선악 판단의 기준에선 꽤나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기에 이 참에 함께 올려놓은 것이다.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흑사병이나 호랑이나 전부 생물이다. 흑사병은 생물에 의해서 벌어진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생물이 벌인 짓이란 건 동일하다. 그러나 흑사병과 호랑이가 한 짓에 대한 우리의 가치 판단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흑사병은 생물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란 게 밝혀졌음에도 지진처럼 선악 판단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데, 호랑이 같은 경우엔 시대마다 인식이 다를지언정 어떤 행위의 주체성을 나름대로 인정받는 편이다.

 이런 점에서 선악 판단을 지성체를 넘어 생물체로 확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분명하게 지성체에 대해선 선악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이 글에선 자르려고 한다. 호랑이 같은 경우엔 스스로 사고할 수 있긴 하지만, 지성체 수준의 사고를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으니 선악 판단을 논하기엔 상당히 애매한 위치이다. 단, 그런 호랑이가 그런 애매한 입지에 놓여져 있다고 여겨지고 있으며, 이걸 지성체인 호모 사피엔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려니 호랑이의 선악 판단 논란이 일어난 건 분명하다. 사람 때문에 호랑이의 선악 판단 여부가 논의될 수 있는 거지, 호랑이 스스로가 선악 판단을 논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항에 대해 알 수 있다.


 '호랑이가 사람 하나를 잡아 먹었다.'

 '호랑이가 사슴 하나를 잡아 먹었다.'


 호랑이에 대한 선악 판단의 논의가 이뤄졌던 게 실상 피해자가 '사람'이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단 걸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한다. 피해자가 '사슴'인 경우에도 호랑이에 대한 선악 판단은 아무래도 논의되기 어렵다. 저건 그저 자연에 불과한 것이며, 만약 저기에 선악 판단을 제기하거든 아무래도 어린 아이가 그럴 확률이 무척이나 높다. 어린 아이들은 동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단 건 감안해야 되니 말이다. 이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서 잼민이네 초딩이네 욕할 건 또 못 된다.


 결국 지성체와 엮이지 않고선 선악 판단을 제시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악 판단은 왜 지성체와 엮이고 있는 것이냐를 따지라면, 이건 이것대로 골치 아픈 문제일 것이다. 다만,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들에서 이미 선악과 관련된 주제가 튀어나오고 있단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동양 같은 경우엔 '태극'이라고 하여 선악과 같은 대립성이 있는 두 개념은 실상 똑같은 것의 단면만 본 것이라고 간주했다. 가령 동양의 방식대로 앞서 언급한 호랑이 논의를 보자.

 동양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죽였다'라고 하는 것을 보거든 사람 입장에선 악한 것이지만, 호랑이의 입장에서도 과연 악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물론 사람 입장에서야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 먹고 있으니, 또 다른 피해자의 발생을 막기 위해 사냥에 나서겠지만 그렇다고 호랑이가 그것을 악행이라 여길 거라곤 기대하지 않는다. 정통적인 해석에 따르자면 그렇다. 호랑이는 그저 자신의 최선을 다 했기에 그랬을 뿐이고, 이에 사람들도 자신들의 최선에 따라 이 식인 호랑이를 사냥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동양에서 전해지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어폐가 조금은 있을 것이다. 동양에서 다신교 체제 하의 인식 체계에선 선악 대결 구도가 있고, 이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일본이니까.


 서양 같은 경우엔 이러한 '선악'을 일종의 대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일신론적인 세계관인 유대교,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들조차도 선악을 대결 구도로 그리고 있으며, 그 이전의 조로아스터교 같은 경우도 전반적으론 선신과 악신의 대결 구도로 선악을 간주하고 있다. 아마 아브라함 계통의 선악 대결 구도는 그 일대의 다신교 체계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신교 체계에서 선악 개념은 대결 구도로 그려지게 마련이다. 힌두교조차 '칼리 유가'가 결국 절대악인 '칼리'와 선역인 '칼키'의 대결로 끝나며 새로운 유가로 접어든단 얘기인 걸 감안하면 이 쪽 계통의 선악 인식은 무척이나 대립적이다. 그리고 일본 같은 경우도 민간 신앙의 단계에선 아오요로즈(800만)라고 하여 세상 모든 개념에 신이 있단 인식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다신교 체제에선 선악 대결 구도가 당연히 그려질 수밖에 없다. 선역을 맡은 신도 있고, 악역을 맡은 신도 분명히 있는 까닭이고 이 신들끼리 대결하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인 까닭이다. 아브라함 계통은 이 영향을 받은 상태인 것이고.

 다만 아브라함 계통의 선악 인식과 다신교 체제 하에서 선악 인식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다신교 체제 하에서 선악 인식은 선악이 동시에 내재될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같은 사람도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악한 영혼을 쫓아내면 그 사람은 착해진단 인식이 있는 게 다신교 체제 하의 선악 인식이다. 이건 아브라함 계통의 인식으론 면죄부로 나타난다곤 하지만, 아무래도 면죄부 자체로 인해 종교 개혁이 일어난 걸 감안하면 다신교 체제와 아브라함 계통의 선악 인식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일본이 2차 대전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것도 이러한 것과 연관지을 수 있겠다. 자기네들은 패전과 함께 악행을 저지른 면모가 사라졌다고 믿는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주변국들은 저기 앞서 언급한 선악을 같은 대상의 단면을 본 것이라 여기는 까닭에 그런 논리에 쉽게 동조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렇듯, 서로 다른 선악 관념을 갖고서 다른 선악 관념을 접하고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한 가지 유의해야 될 것은 이 방면에서 일본과 독일의 과거사 청산 사례를 비교하는 것만큼 선악 관념 사이에 우열을 따질 순 없단 것이다. 일본의 방식이 독일의 방식보다 덜 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선악 관념 사이에 우열을 따질 근거로 활용하기엔 이치에 안 맞는 구석이 너무나도 많다.


 단적으로 각 방식마다 문제를 일으킨 사례들만 따지고 보거든 일본의 과거사 청산만큼이나 문제의 심각성이 높은 사례들이 다른 방식에서도 보이는 까닭이다.


 먼저 도 계통이라 불리는 동양식 선악 판단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지배층의 권위에 도전할 여지를 아예 찍어누른단 점이 있다. 선악이라고 하는 건 모두 단면적인 것에 불과한데, 그렇다면 백성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그저 무지몽매한 백성들의 짧은 식견만으로 사건을 바라봤기에 생겨난 일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문제의 해결을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중국 같은 경우엔 나라가 수 차례 뒤집어 엎어지며 '분구필합 합구필분' 같은 게 튀어나왔다. 이런 방식이 아니고서야 사회 문제의 해결을 도저히 기대할 수 없어지는 까닭이다.


 그리고 아브라함 계통의 선악 판단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문제점은 '존중'이나 '관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의 가치를 깡그리 짓밟는 것에 있다. 악은 멸해야 되고, 선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 논리는 심지어 자신들의 신을 향해서 칼을 겨누고 있을 정도로 상당히 전투적으로 전개되기 십상이다. 다신교 체제가 그나마 신들끼리 개판으로 정리되는 수순이라면, 아브라함 계통의 선악 대결은 사람의 영역에 직접 영향을 미치며 온갖 만행을 유도하게 마련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기독교가 벌인 짓이며 이슬람교의 지하드가 벌이는 짓 등의 온갖 광신은 존중과 관용을 저들 딴에 필요한 만큼을 제외하면 죄다 싹을 쳐내는 수준이다.

 이런 건 개인 윤리의 측면에서도 아브라함 계통의 선악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하는데, 당장 절대선으로 간주되는 하느님과 예수를 그저 오락거리로 삼는 행태에 대해서 신도들이 분노하고 그 나름대로의 성전에 참여할 것을 유도하는 까닭이다. 그것의 정당성,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분노를 조장하고 있단 것 자체가 개인 윤리의 측면에서 옳다고 주장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런 치명적인 단점을 각 선악 판단 방식들이 저마다 안고 있는데, 다신교 체제 하에서 일어난 치명적인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의 과거사 청산을 갖고서 다신교 체제의 선악 대결 구도를 저열한 선악 판단 방식이라고 매도할 순 없는 것이다.


 선악 판단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까지 얘기했으면 어렴풋이 윤곽이 드러났을 것이다.

 선악 판단이 중요한 이유는 특정한 개인이나 사회가 움직이는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마오쩌둥은 아마 잔혹한 독재자일 확률이 무척 높지만, 중공 치하에 있는 이들에게 마오쩌둥은 그럴 수 없는 존재인 걸로 보인다. 마치 기독교도들에게 하느님과 예수님이 모욕할 수 없고, 그저 믿어야 하는 것처럼 중공 치하에 있는 이들에게 마오쩌둥도 아마 그와 비슷한 걸 유도됐을 거라 인식하는 것이 교양의 첫 걸음이라면 첫 걸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인식하는 것이 결코 쉽진 않기에,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온갖 만행이라 여겨지는 일들을 다른 체제 하에서 접하는 게 어렵기에 중국 공산당을 욕하는 게 잘못된 것이라고 필자가 주장하고 싶지 않다. 그 외에 선악 판단의 결과로 악한 것이라 인정되는 것을 애써 선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필자가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선악 판단의 방식조차 똑같지 않으니, 이 점은 유의해두면서 세상사를 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질 수록, 당신은 좀 더 유리한 고지에서 상대에게 굳이 비속한 감정과 단어를 섞지 않아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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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이 나온 이유는 마검 릴레이를 보던 와중에 든 생각 덕분에 썼다.

 겉으로만 봤을 때 인신공격에 가까운 내용이라서 애써 침착하게 내 손을 통제하며 거듭해서 읽었던 일화가 있었고, 선악 관념에 대해서 대놓고 다룬 일화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둘 다 훌륭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선악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식으로 묘한 것이구나 느껴서 이런 글을 쓰게 됐다.


 이 글에서 직접 다루기 외람된 내용이지만, 아마 빨간 적폐와 파란 적폐의 싸움도 이러한 선악 판단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전체적인 틀은 같은데 세부적인 내용에서 대립이 이뤄지는 것이 이제 선거가 끼어들며 지역 갈등을 조장까지 하면서 스케일이 커진 게 요 적폐들 밥그릇 싸움이 아닌가 싶다.

 그 밥그릇 싸움에 적극적으로 굴어야 된다, 소극적으로 굴어야 된다 같은 걸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이런 일에 불과한 것에 상처받고 너무 열내고 그러진 않았으면 한다. 똑같은 적폐들끼리 싸움에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며 한탄해봐야 결국 본인에게만 아플 뿐이다.

 대신에 이런 적폐 싸움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견을 갖고서 이들에게 표출할 수 있을 준비는 해둬야 할 것이다. 이들은 여러분의 표를 원하고, 여러분의 표를 얻기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단 건 최근에 빨간 적폐측의 당대표 선출로 증명됐으니 말이다. 이 적폐 싸움에 상처받진 않되, 관심을 끊진 않았으면 한다.


후기도 마치겠다. 긴 글, 읽어줘서 정말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