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묘사가 있으니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각오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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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림 씨가 휴대용 전자석의 전원을 켜고 한 쪽으로 전자석을 밀어놓았다. 전자석의 위력은 미야자키 씨가 했던 말 그대로였다. 그 위력은 실로 강력했다. 반경 100m 내의 쇠붙이들이 전자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미야자키 씨가 손에 찬 스마트워치의 화면이 순식간에 나갔고, 주변에 널브러져있던 음료수캔과 함께, 내가 실수로 들고왔던 검은 가방마저 안에 있던 내용물들을 바닥에 쏟더니 우당탕 소리를 내며 전자석쪽으로 무작정 전진했다. 미야자키 씨의 왼쪽 다리를 베고 지나갔던 자도 자신이 안드로이드였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몸에 힘이 급격히 빠지더니 땅바닥에 고꾸라져 전자석을 향해 끌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동안 모든 사고가 정지되었다. 충격으로 가득 찬 긴 정적을 깨뜨린 것은 미야자키의 신음소리였다.
 
미야자키 씨의 왼쪽 다리는 검에 베어져 완전히 절단되었고, 피가 흘러져내렸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다리도 반쯤 잘려있었다. 이 상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는 걸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시즈오카 씨가 자신의 츄리닝을 벗어 상처부위를 싸매어 지혈했다.
 
40초가 지나자 정말로 전자석의 효력이 떨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전자석 옆면에 붙어있었던 음료수 캔들이 다시 바닥을 향해 나뒹굴었고, 검은 가방도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전자석을 내려놓고 쇠붙이들이 빨려오던 장면을 지켜보던 한혜림 씨의 표정은 마치 이전에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처럼 아직도 공포로 물들어있었고 다리가 풀려있었다. 한혜림 씨가 두 손으로 땅을 집더니, 같은 나라 사람인데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헛구역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대체 어째서 저 사람, 아니, 안드로이드가 우리를 공격했는지. 그리고, 애초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니,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모두 한결같이 충격에 빠져있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내 머릿속에 누가 또 갑자기 나와서 공격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스쳐지나갔다. 그러자 내 손은 저절로 바닥에 널브러진 권총들로 향했다. 권총은 이미 장전이 되어있고, 소음기와 소염기도 이미 장착되어있었다.
 
나는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압록강 너머 북한 쪽으로 가늠쇠를 조준했다. 그러나 가늠쇠 너머로 보이는 것은 애처롭게도 바람에 흘러가는 강물과 나뭇잎들 뿐이었다.
 
 
시즈오카 씨가 나에게 미야자키 씨의 부축을 요청했다. 나는 권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미야자키 씨에게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야자키 씨의 팔을 내 어깨에 고정시키고 일어났다. 내 바지에 그녀의 피가 번졌다. 미야자키 씨를 부축하니 키가 나랑 비슷했지만 약간 작았다. 다리에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즈오카 씨는 거의 발작증세를 보이는 한혜림 씨에게로 다가가 열심히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한혜림 씨의 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시즈오카는 강제로 들어옮기기를 선택했다.
 
 
그 순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영어가 생각났다. 'We're being attacked by some people.'. some people이라는 것이 맞다면, 다시 공격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까와 같은 소름이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미야자키 씨를 다시 벽에 기대어 놓았다. 미아쟈키 씨가 신음소리를 내며 순순히 앉아주었다. 내 바지에 피가 흥건히 젖어있었다.
 
나는 다시 권총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아까 주워들었던 권총을 집어들었다. 안전장치는 이미 해제되어있었다. 그러고는 사격선수마냥 다시 아까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시즈오카가 한혜림 씨를 부축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아예 두 팔로 안아 공주님 안기로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오른쪽에 있는 압록강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오른발에 무언가가 치여서 굴러갔다. 자세히 보니 조준경이었다. 나는 바로 컴퓨터 게임의 경험을 살려 권총에 조준경을 장착했다. 그리고 압록강 너머를 바라보았다. 
 
북한 쪽으로 사람들 몇몇이 보였다. 논밭에서 사람들 몇 명이 걸어다녔다. 그들이 서로 수다를 떨고 있는 광경을 보아하니 안드로이드는 아닌 것 같았다. 총을 돌려 다른 쪽을 살펴보았다. 건국 주택단지가 있다는 섬인데, 압록강 너머가 아니라 압록강 한가운데에 있어 거리가 비교적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그 섬을 훑어보았다. 섬에는 공안의 말대로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심지어 검을 들고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대로였다. 안드로이드였다.
 
그 안드로이드도 자신이 들킨 것을 알았는지 순식간에 옆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조준경 너머에서 사라졌다. 나는 조준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안드로이드는 이미 강을 넘어 우리 쪽으로 빠르게 돌진하고 있었다. 방향은 한껏 얼빠진 한혜림 씨를 들고가는 시즈오카 쪽이었다.
 
나는 시즈오카 씨와 한혜림 씨를 지키기 위해, 미야자키 씨의 참사를 재발시키지 않기 위해 빠르게 권총을 한 발 쐈다. 권총의 반동이 생각보다 심해 깜짝 놀랐다. 재빨리 권총을 재장전하면서 총알의 명중 여부를 지켜보았다. 총알은 빗나가서 안드로이드가 지나가는 경로 바로 앞쪽의 바닥에 박혔다. 그런데 그 총알의 상태는 이상했다. 보통 총알은 박히면 끝인데, 이 총알은 날아가서 뭔가 부풀어올랐다. 검을 든 안드로이드가 거기에에 걸려 넘어지더니 그 반동으로 한 바퀴를 굴렀다. 검이 날아올라 시즈오카의 앞에 있는 주차장에 꽂혀 쓰러졌다. 한혜림 씨가 소리를 질렀다. 시즈오카 씨도 떨어진 검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뭐가 부풀어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확인할 새 없이 다시 총을 겨누고 넘어진 안드로이드를 향해 총알을 다시 한 발 쐈다. 나는 두개골을 겨냥했으나 반동 조절 실패로 인해 총알이 빗나가 오른쪽 눈의 약간 아래쪽에 맞았다. 총알은 다시 부풀어올라 껌처럼 되어 오른쪽 눈에 붙었다.
 
나는 안드로이드가 다시 움직이지 못하도록 옆에 나뒹굴던 전자석을 집어 작동시켰다. 저항하려던 안드로이드가 힘이 빠지더니 이내 고개를 바닥에 털썩 내리박았다.
 
나는 안드로이드를 다시 바라보았다. 안드로이드는 검을 놓친 채 엎어져있었고, 오른쪽 눈과 발에 껌처럼 부풀어오른 물체가 붙어있었다. 혹시나 해서 만져보니 끈적거렸다. 숙소에서 들었던 가방에 껌 비슷한 게 들어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다시 자세히 바라보았다. 안드로이이드의 얼굴은 첫번째로 습격했던 안드로이드의 얼굴과는 다르게 여자형이었고, 이목구비는 불쾌한 골짜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평범한 중국인이라 해도 믿을 만 할 정도였다. 갑자기 안드로이드의 얼굴이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하나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다롄 저우수이쯔 국제공항에서 내가 국제선 게이트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던, 무뚝뚝한 중국어로 대답을 해줬던, 일행이 없어보이던, 평범해 보이던 여자.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안드로이드는 아무리 봐도 그 여자와 얼굴이 똑같았다. 내 몸에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