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시 눈을 떴다. 머리가 살짝 아팠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나는 카이스트 석사 학위 기념으로 중국에 관광을 위해 입국했다. 다롄 저우수이쯔 국제공항에 갔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더니 지진이 났다. 그리고, 내 머리 위로 천장 구조물이 떨어져 머리에 맞았다... 그러면, 나는 지금 죽은건가? 아직 20대인데? 그리고 카이스트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달려온 지금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거지? 그리고 부모님은?
 
"今は大丈夫か。(지금은 괜찮습니까?)"
옆에서 일본어로 걱정스럽게 말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일본어? 난 분명 중국에 있었는데...
"그나저나... 누구세요?"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말해버렸다. 일본어를 할 줄은 알았지만 아직 정신이 덜 깨서 저절로 모국어가 나왔다.
"あ、そうだ。韓国人だったね。じゃ、(아, 맞다. 한국인이었지. 그럼,)"
"뭐하시려고 그러시는 거..."
"한국인이신 것 같으시니까 한국어로 해도 되죠?"
아, 한국어도 가능하시구나. 진작에 그러지.
 
"아, 네. 그러면 고맙죠. 그건 그렇고, 여기는 어디죠?"
"여기는 지진으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곳입니다. 지난 달에 지진이 났을 때 공항에 있었던 피해자 분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 당신도 그 중의 한 명이고요. 당신은 천장 구조물에 머리를 맞아 사망하실 뻔 했습니다. 다행히 뇌출혈로 그쳐서 살아나셨습니다."
"네? 뇌출혈?"
"네. 예상보다 늦게 깨어나서 걱정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치료받고 떠났어요. 공항이 예상보다 피해가 적었거든요."
"얼마동안 있었는데요?"
"음... 지진이 난 게 10월 7일이었고 오늘이 11월 1일이니까... 대충 한 달 정도겠네요."
"네? 한 달?"
"네. 나노로봇이라면 빨리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물량이 부족해서 늦어졌습니다. 원래는 2주면 후유증 없이 완쾌됩니다."
"네? 나노로봇? 잠깐만요, 지금 상황 정리가 안 되거든요? 제가 지진에서 뇌출혈로 한 달 동안 의식을 잃었고 거기에 나노로봇이... 잠깐, 나노로봇? 지금이 2020년인데 그런 게 아직 있을리가 없잖아요? 대체 뭐죠? 저 지금 머리가 혼란스럽거든요?"
"벌써 혼란스러우면 안 됩니다. 참아주세요. 앞으로 말해드릴 거는 더 혼란스러워질테니까요."
아니, 내가 뇌출혈인 것부터가 말도 안되는데 앞으로 더 혼란스러워진다고? 대체 뭐 하려고?
 
"일단 제 이름부터 알려드리죠. 제 이름은 시즈오카 히카리입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시면 사람들이 몇 명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세히 보니 넓게 펼쳐진 공간에 나를 제외하면 딱 3명 있었다. 한 명은 시즈오카였고, 나머지 두 명은 여자였다. 
 
"여기 있는 여자분들의 이름이, 왼쪽에서 컴퓨터를 하고계신 분이 미야자키 츠바사이고, 오른쪽에서 졸고 계신 분이 한혜림입니다. 이 외에도 5명이 더 있는데, 그분들은 이미 출발하셨습니다."
"어디로 갔는데요?"
"음... 첸 슈어랑 팡 씬이는 지린성에 가셨고, 멜리사 푸르니에 씨랑 세르게이 아시모프 씨는 양강도랑 함경북도로 가셨고, 또..."
중국, 러시아, 유럽 등 여러 지역의 이름들과 인명들이 튀어나왔다. 이때까지는 단순한 다국적 단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말이 가관이었다.
 
"그리고 최은준 씨는 평양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만날 예정입니다."
"네? 김정은을 대체 왜 만나요?"
"그게 우리의 임무입니다. 지금 우리도 몇 시간 뒤에 두만강 쪽으로 가야 합니다."
"아니, 대체 왜요?"
"아, 설명을 안 해드렸군요. 설명하자면 복잡합니다. 설명할 테니까 길어도 참아주세요. 이렇게 놓고 생각해보니 당신이 가장 늦게 깨어난 게 불행 중 다행으로 느껴지는군요. 아무튼, 지금부터 잘 들으셔야합니다. 당신, 우선적 포섭대상이거든요."
 
"네? 우선 포섭대상이라뇨?"
내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까 뇌출혈이라느니 나노로봇이라느니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하현수 님께서는 미래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그러니 그 전에 미리 포섭해둬야죠."
"아니, 제가 어떻게 되길래 그러는데요? 저는 흔하디 흔한 공돌이 중 한 명인데?"
"그거는 걱정 마세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그건 그렇고, 제 이름은 어떻게 안 거죠?"
"다롄 저우수이쯔 국제공항 국제선 게이트 앞에서, 당신이 머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 걸 보았습니다. 그때, 당신이 하현수 씨랑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호작업이 다 끝나고 홍채인식을 해보니 일치하더라고요. 그래서 확신했습니다."
홍채인식이라는 걸 보니 내가 잘 때 뭘 했을 지 생각이 들어 기분이 약간 찝찝해졌다. 그래도 중요한 인물이 된다는 건 기분이 좋았다.
 
"제가 중요한 인물이 된다라... 그거 하나는 참 괜찮네요.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 있었건 겁니까? 제가 뇌출혈까지 당하고. 아무래도 지진이겠죠?"
"네. 지진이 맞습니다. 2020년 10월 7일 수요일 오후 5시 41분, 중국 다롄에 규모 7.5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원인은 탄루단층이고요. 사망자 9만명, 중상자 3만명의 대지진이었습니다. 그리고 10월 12일 월요일 오전 7시 12분, 6.1 규모의 여진이 발생해 사망자 1만명을 추가로 내었습니다..."
생각보다 큰 지진이었구나 싶었다. 하긴 내 몸도 못가눌 정도의 진동이 있었으니 당연히 큰 지진이라고 생각했긴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곳에서 나만 살아남은 것 같은 왠지 모를 미안함이 느껴졌다.
"...우리가 오지 않았다면 그랬겠죠."
"네?"
이번에는 또 어떤 신선한 충격을 줄지 염려되었다.
"저희는 이 지진과 앞으로 일어날 참극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결성된 미래의 단체 '리와인더'입니다. 2067년에서 타임리프를 해서 왔습니다."
 
시즈오카가 이번에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내 주변에 있는 3명의 옷에 Rewinder라는 글씨가 브랜드명처럼 새겨져있었다. 시즈오카 씨의 츄리닝, 미야자키 씨가 티셔츠 위에 입은 카디건, 한혜림 씨의 후드티 모두 가슴 왼쪽부분과 왼쪽팔에 그 글씨가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지금 넋이 나가신 것 같습니다만..."
"아, 죄송합니다."
시즈오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즈오카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오지 않았다면 그랬겠죠'라니...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그리고 왜 하필이면 2020년이죠? 2차 세계대전이라거나 이런 데도 갈 수 있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