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에 파란색 글자로 'Rewinder'라고 쓰여진 밴 한 대가 허강-다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 밴은 언뜻보면 평범한 단체에서 나온 것 같지만, 알고보면 두 나라의 수많은 국민들의 명줄을 쥐고 있는 무서운 승합차이다. 내가 그걸 아는 이유는, 내가 이걸 타고 압록강으로 가고있기 때문이다.
 
시즈오카가 처음에 압록강으로 가자고 했을 때는 나노로봇도 있었겠다, 하는 마음에 이번에는 무슨 미래기술을 보여줄까 하고 내심 기대했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자동차의 문을 여니 그냥 평범한 밴 한 대가 평범한 주차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자신을 '리와인더'라고 부르는 이 사람들은 미래에서 특수훈련 중 하나로 자동차 운전이 있었다고 했다. 미래에는 인공지능 자동차가 보급되어서 딱히 운전할 필요가 없었는데, 아직 수동 자동차가 흔한 2020년에서 작전을 펼치려면 적어도 승합차 정도는 운전할 수 있어야 해서 자동차 운전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자동차는 중국 현지에서 일시불로 구입했다고 했다. 원래 웬만한 장비들은 3D프린터로 만들려고 했는데, 승합차의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현지에서 사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참고로, 신분증은 싱가포르의 여권을 위조했다고 한다. 싱가포르가 중국, 한국, 일본 3국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서 그 나라 걸 위조했다 뭐라나.
 
그리고, 나는 30일치 관광용 비자를 이미 받아놔서 11월 6일까지는 중국을 돌아다닐 수 있었고, 아무래도 재앙이 닥친다고 하니 동정심이라던가 보고만 있으면 안 되겠다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합류하기로 했다.
 
밴 안의 분위기는 조용했다. 모두 미래의 재앙을 최소화하기 위해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옆자리에서 미야자키 씨가 노트북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계속 비슷한 것들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전부터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대부분의 준비가 끝났다고 했으니 곧 마무리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즈오카는 운전석에 앉아 밴을 몰고 있었다. 특별한 운전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왠지 능숙해보였다.
 
 
"근데, 압록강에 가면 뭐 할거에요? 뭘 알아야 준비를 하죠."
내가 적막을 깨기 위해 물었다. 사실 궁금한 게 많았던 게 주 이유였지만. 시즈오카가 약간 움찔하더니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운전하고 있는 시즈오카를 대신해 조수석에 앉은 한혜림 씨가 대답했다. 덕분에 시즈오카는 다시 운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압록강에서는 홍수대비랑 지진구호만 하면 돼. 백두산이 터지면 천지의 물이 강을 따라 흘러서 홍수가 날거니까. 그리고 백두산이 터지면서 큼지막한 지진도 날 거고."
"그거 되게 걱정스러워지네요. 그러면, 화산재는요?"
"화산재는 두만강 쪽으로 가니까 안심할 수 있어. 화산재는 백두산에서 편서풍을 타고 북한, 울릉도, 일본을 차례로 덮칠거니까 이 쪽으로는 안 올거야."
화산재가 오지 않는다니,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두만강 쪽에서 작업을 펼치실 분들에 대한 걱정이 올라왔다.
 
그러나 아직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많았다. 어떻게 주민들을 대피시킬 건지, 어떻게 북한 주민들을 피하게 할 것인지 궁금했다. 또, 어떻게 전부 다 합해도 8명, 그것도 나를 포함해도 9명이 그 대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인지는 더 의문이었다.
 
"근데,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피시켜요? 고작 9명이서?"
호기심이 내 목구멍을 뚫고 나왔다. 한혜림 씨가 바로 대답했다.
"북한 쪽부터 말해줄게. 북한 쪽에 최은준 선배가 들어갔다는 건 알아?"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시즈오카가 말했던 적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성혜림 씨가 선배라고 하는 걸 보니 최은준 씨가 나이가 더 많구나 생각했다.
"그 분이 지금 북한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있어. 성공하면 우리 일이 줄어드는 거고, 실패하면 우리가 북한 지역 커버하느라 일이 더 바빠지겠지. 참고로 주중북한대사관을 통해 정식으로 들어갔으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최은준 씨가 김정은을 만난다는 걸 들으니 글로벌 조직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그리고 이 '리와인더'라는 조직의 스케일이 크다는 게 다시 실감이 났다.
 
"그리고, 중국 쪽의 방식은 해킹이야."
"오, 그거 완전 신기하네요. 근데 중국 쪽으로는 왜 시진핑을 만나지 않는 거에요?"
한혜림 씨가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거기? 거기는 이미 갔다왔지. 근데 안 믿어주더라고. 우리가 미래에서 왔다는 걸 증명하라고. 하필 그 때 미래장비들 다 두고 갔으니까 검증할 길이 없었지. 그래서 쫓겨났어. 그 뒤에 우리가 다시 만나려고 하자 공안 부르겠다고 하면서 막았어. 그렇게 된거야."
"그러면 북한 쪽은...?"
"그 쪽은 중국 다음으로 만나고 있어. 이번에는 미래장비들을 확실하게 가지고 갔으니까 믿고 맡길 수 있겠지."
한혜림 씨의 목소리에는 긴장어린 확신이 담겨있었다.
 
"해킹이라는 건, 중국 주석을 설득하는 게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플랜B의 일종이지. 너도 겪은 적 있었을 걸?"
한혜림 씨가 나에게 물었으나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떤 일을 말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다롄에 지진 나기 전에 사이렌 울렸잖아. 그거 우리가 튼 거야. 이제 기억나지?"
한혜림 씨의 말에 그 때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국제선 게이트로 가고 있는데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이 몇 초간 허둥대고는 대피하기 시작한것, 그 뒤로 지진이 일어난 것, 그리고 천장의 구조물이 떨어진 것......
"네. 확실히 기억 나네요."
"그것처럼 이번에도 사이렌만 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뭣모르고 강가로 가면 안되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쓸거야."
한혜림 씨가 말과 말 사이에 약간의 간격을 주었다.
"이번에는 사이렌를 울리기 전에 중국 공안부의 컴퓨터를 해킹했어."
"네?"
역시 여기는 스케일이 다르다.
"공안부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압록강, 두만강, 쑹화강 주변 파출소들에게 '공장의 화학물질 누출로 강 전체가 오염되었으니 주변 주민들을 대피시켜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보냈어. 방금 보냈으니까 지금쯤 대피가 완료됐겠지."
"그러면 미야자키 씨가..."
"어, 맞아. 해킹 쪽은 미야자키 담당이거든. 참고로 나는 3D프린터 담당이고 시즈오카가 의료담당. 이외에도 몇 가지 있지만 생략."
내가 깨어났을 때부터 노트북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던 미야자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의 표정도 지금처럼 진지해보였는데, 이런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밴이 방향을 틀어 201번 국도로 갈아타고 얼마 있지 않아 한혜림 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한혜림 씨가 긴장한 표정으로 전화가 걸린 곳을 바라보았다. 전화는 손목시계에서 걸려오고 있었다. 발신자는 최은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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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9화 일부는 재업 없이 그냥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