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과 늑대들이 우리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과 울음소리는 아주 사나웠고, 눈에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애송이들."
카일라가 비웃으며 말했다. 카일라가 바로 주문을 외우자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리고 카일라가 지팡이를 내리꽂자 하늘에서 운석들이 내려와 떨어졌다. 카일라가 '너희들은 이제 다 끝났다.'하는 표정으로 트롤들과 늑대들을 향해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나 늑대와 트롤들은 모두 무사했다.
 
카일라는 당황했다. 그러나 다시 주문외우고 바닥에 지팡이를 꽂았다. 아까와 같이 큼지막한 운석이 소환되었으나, 우리들은 늑대들과 트롤들이 무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카일라가 세 번째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늑대들이 마법진을 보고는 순식간에 대피하라는 울음소리를 내며 늑대 특유의 빠른 속도로 마법진을 빠져나왔다. 트롤들도 그에 맞춰 빠져나왔다. 늑대들과 트롤들의 협공이 이루어진 것이다.
 
"말도 안돼......."
카일라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카일라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마구 마법을 쏘아댔다. 그러나 늑대의 신속한 상황판단을 위시로 한 대규모 작전이 그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만들었다.
 
비트립 단장님은 이 상황 속에서 평정심을 가장 잃지 않은 사람이었다. 비트립 단장님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지능이 높은 늑대가 트롤을 보호하고 있는 형세란 말이지... 늑대가 트롤을 보호하고 있으니 늑대를 흐트러놓으면 트롤들도 흐트러지지 않을까? 그러니까 늑대의 천적인 호랑이랑 곰을 소환할 수 있다면......"
그러고는 알겠다는 듯이 카일라에게 말했다.
"카일라, 호랑이랑 곰의 형상을 소환해줄 수 있어? 진짜 호랑이랑 곰 말고 실제처럼 생긴 환상 말이야."
"어, 알겠어."
카일라가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마법진 한가운데에서 호랑이와 곰이 튀어나왔다. 물론 가짜였지만, 마치 진짜같았다.
 
늑대들은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졌다. 카일라는 그 틈을 타 주문을 외워 마법으로 운석을 소환해 늑대들의 60% 정도를 죽여 큰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더 이상 늑대들은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 늑대들 중 몇 명이 마법진에서 호랑이와 곰이 떡하니 나타나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카일라가 아무리 마법을 써도 늑대들이 다시 피하자, 늑대들이 당하는 동안 방법을 고심해오던 비트립 단장님이 다시 카일라에게 부탁했다.
 
"카일라, 바위 마법 말고 번개 마법으로 해봐. 스칸디나비아 전승에 따르면 트롤들은 토르의 권화인 번개를 무서워한다는......."
"그거야 더 간단하지."
카일라가 부탁받기 무섭게 비트립 단장님의 말을 자르고 번개마법을 시전했다. 운석마법보다 번개마법의 발동시간이 더 짧아 늑대들의 대응신호가 빨라졌다. 트롤들이 번개를 보고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트롤들이 두려움에 떨어 주의가 흐뜨러졌고, 그 중 일부가 전선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늑대들은 트롤들을 다시 결집시키기 위해 울음소리로 신호를 자꾸 주었으나, 계속되는 카일라의 번개마법에 트롤들의 대부분이 이탈한 상태였다.
 
늑대들은 서로의 의논 끝에, 마침내 하나의 해결책을 찾았다. 저들의 마법사는 한 명 밖에 없으니 그녀를 습격하자고. 늑대들의 자세가 돌격자세로 바뀌었다. 비트립 단장님은 그걸 보고 우리들에게 방어를 지시했다. 우리들은 검을 뽑아들었다.
 
늑대들이 우리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검으로 열심히 그들을 베었다. 그러나 늑대들의 수가 100마리 정도 되어 돌파하기 힘들었다. 카일라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더니 우리들을 텔레포트 시키려 했다. 그러나 왠일인지 텔레포트가 먹히지 않았다.
 
늑대들이 최전방에 서있는 나의 플라즈마 소드에 갈려나갔다. 내가 놓친 늑대들은 뒤에 있는 루보와 코스타가 처리해 주었다. 비트립 단장님도 한 곳에 자리잡고 늑대들을 처치했다.
 
그렇게 늑대가 21마리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늑대들은 동료들의 죽음에도 멈칫하지 않고 돌격해왔다. 비트립 단장님이 의문을 품었다. 늑대들은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강해 보통 배우자가 죽으면 행동력이 떨어지는데 반해, 이 늑대들을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비트립 단장님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늑대들의 목 왼쪽에 마법진이 그려져있었다. 누군가가 조종했다는 말이었다.
 
비트립 단장님이 카일라에게 세번째로 부탁했다.
"저 마법진을 분석하고 풀어봐. 그게 지금 가장 빠른 방법이야."
"뭐? 그게 쉬운 줄 아냐? 그건 그렇고, 진짜네..."
"풀 수 있어?"
비트립 단장님이 지푸라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말했다. 카일라가 답했다.
"저 마법진은 고위 마법이야. 고급 세뇌마법. 저 정도는 나도 못 풀어. 그러니까 그 검이나 잘 놀려봐봐."
 
고급 세뇌마법. 그 때 우리들은 깨달았다. 고위마법을 쓸 수 있는 누군가가 트롤들과 늑대들을 조종하여 우리들을 공격한 것이다.
 
비트립 단장님이 늑대 한 마리를 베며 뭔가 깨달은 듯이 말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해결방법은 있어. 고급 세뇌마법에 걸렸는데 트롤들은 번개를 보고 도망쳤어. 그 말인 즉슨, 세뇌마법조차 본능적인 두려움은 덮을 수 없었다는 것이지. 늑대가 본능적으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뭐가 있더라......."
"불?"
내가 아무 생각없이 떠오르는 단어를 입밖으로 뱉었다. 비트립 단장님은 감탄하더니 카일라에게 부탁하려 했다. 그러나 카일라는 이미 불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불 마법은 번개 마법보다 간단했는지 주문이 더 짧았다. 남은 늑대 10여 마리들은 불을 보더니 세뇌와 본능 사이를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 부리나케 도망갔다. 우리들은 반격이 오지 않을까 지켜보다가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
 
"그나저나 고급 세뇌마법이라니, 정말 마왕성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루보의 말에 코스타와 내가 동의했다. 고급 세뇌마법. 이제 이름만 들어도 무서웠다.
 
한편, 비트립 단장님은 고급 세뇌마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 고급 세뇌마법이 다른 자들에게도 쓰여졌다면 어떻게 되지? 내가 아는 자들 중에 누군가가 혹시 그렇기 되었다면 피해야 할텐데...'
 
그리고, 비트립 단장님은 최종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혹시... 카스트로랑 수르트카도?'

 

 

 

 

ㅡㅡㅡㅡㅡㅡㅡ
카스트로의 개연성 부활을 위해 설정 하나 새로 짜느라 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