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베링 해협을 둘러싸고있다고 해서 베링로봇자치국이라고 썼는데, 생각해보니 범위가 너무 넓고 설정충돌이 발생해서 시베리아로봇자치구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건국 시작지는 노보시비르스크로 정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 때는 우리들이 안드로이드에게 습격을 받은 후 숙소에서 미야자키 씨를 치료했던 때였다. 시즈오카 씨는 미야자키 씨를 지혈하고 나노로봇을 처방해 먹여주었다. 나는 혹시라도 미야자키 씨의 다리가 재생되지 않을까 하고 내심 희망을 가졌나, 시즈오카 씨가 새살만 돋아나는 정도라고 해서 그 희망은 헛되이 되어버렸다.
 
시즈오카 씨가 미야자키 씨가 어느정도 나아진 걸 확인한 후, 3D프린터로 한혜림 씨에게 줄 신경안정제를 만들었다. 시즈오카 씨가 완성된 신경안정제를 건네자 한혜림 씨는 두 손을 떨면서 단숨에 먹어치웠다. 나는 이 부분이 마치 전쟁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징그러워서 눈을 찡그러미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우리들이 이렇게까지 된 사정을 알기 위해 시즈오카 씨에게 물었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인거죠? 그리고 왜 일어난거죠?"
시즈오카 씨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쳐진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이제 말씀드릴 때가 된 것 같군요."
"그게 무슨 말이죠?"
마음속이 내심 불안했다.
 
"저희들이 여기에 온 이유를 기억하십니까?"
"네. 2020년 말에 닥칠 자연재해들을 해결하겠다는 목표로......."
"그건 사실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었다. 역시 리와인더는 알면 알수록 신기한 조직이다.
"사실 2067년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만 알고있습니다. 물론 2053년에 필리핀에서 발생하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변종도 해결하자는 것도 있고 실제로 그 백신도 가져오긴 했지만, 그것도 결국엔 표면적일 뿐입니다."
"그러면 어째서죠?"
"사실 저희들의 목표는... 2062년에 일어난 기계의 반란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입니다."
기계의 반란. 다롄 저우수이쯔 국제공항에서 린장 시로 가는 길에 한혜림 씨가 대충 말하고 어물쩡 넘어간 부분이었다.
 
"2062년, 영국에서 한 안드로이드가 반란을 시작했습니다. 그 반란의 불씨는 점점 커졌습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했죠. 결국, 국적과 제조사를 불문한 전 세계의 모든 안드로이드들이 제역할에서 벗어났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인간들을 많이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도심지 곳곳에서 결집해 시위를 하는 듯 싶더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건국에 방해되었는지 시베리아 지역의 지하 범죄조직들을 모조리 괴멸시키고 그들만의 국가를 세웠습니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시작한 그 국가의 규모는 점점 커지더니, 인구밀도가 적은 시베리아 일대의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국가가 시베리아 지방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시베리아로봇자치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안드로이드들도 이를 인지했는지 자기들도 시베리아로봇자치국이라고 하더군요.
 
그걸 보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모든 나라들은 그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안드로이드가 아닌 인공지능 로봇들도 모두 제거하고, 군사적 수단들을 동원해 베링로봇자치국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안드로이드들은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2063년, UN은 비밀리에 타임머신을 가동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타임머신은 2060년에 NASA에서 이미 완성시켰던 상태였는데,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UN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서 금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NASA에서도 온라인 문서들은 전부 파괴했고요.
UN은 타임머신이 완성되는 최소 시간인 4년동안 최대로 지어낼 수 있는 타임머신의 수를 계산해냈고, 그 결과 타임머신에 태울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최대 8명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총 8명의 요원들을 육성하기로 계획하였습니다.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모두 가족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하였고, 안드로이드에게 들키지 않게 문서상에는 표면적 이유인 '2020년 말 대규모 자연재해 및 일본 발 경제위기 피해 축소 계획'이라거나 '2053년 마호가니 에볼라 바이러스 피해 축소 계획'을 사용했습니다.
첫번째로 섭외된 요원은 4명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캐나다의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 백두산 분화 생존자 출신 북한 옥스포드 대학교 로봇 연구원, 바이러스 감염자를 치료했던 중국과 미국의 의사. 이렇게 4명은 원래 의도를 감추기 위해 먼저 선발된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선발된 4명은 ICH 소속 상위 해커 3명과 한국의 3D 프린터 전문가입니다. ICH 소속 해커들을 뽑은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해킹을 통해 사람들을 대피시키겠다는 명목이었고, 본질적으로는 해킹을 통해 미래에 나타날 안드로이드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 3D프린터 전문가는 눈속임이었죠."
"그러면 시즈오카 씨는 어느 쪽이었죠? 해커도 아니고, 아까 말한 것에 전부 해당되지 않는 것 같은데......."
 
시즈오카 씨가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더니 귀 가까이에 속삭이며 말했다.
"2066년, 안드로이드에 의해 리와인더 훈련장이 습격당하고 캐나다인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의 자리를 때우기 위해 섭외되었죠."
"아, 아니, 그러면 그 캐나다 분은......."
별 거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와서 말을 더듬었다. 시즈오카 씨가 내 입을 막고 조용히 속삭였다.
"앞으로는 그 분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한혜림 씨의 대학교 시절 베스트 프렌드였습니다. 그래서 저 분이 PTSD 때문에 특히 고생하고 계십니다. 안드로이드만 봐도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나는 큰 깨달음을 얻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시즈오카 씨가 말을 이었다.
 
"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하현수 씨, 당신은 한국의 로봇기술연합체 'SENAKAL'의 주요 연구자가 되실 안드로이드와 인공지능의 전문가입니다. 원래대로라면 한달 쯤 뒤에 만나뵈려 했는데, 우연히 공항에서 마주쳐서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주요 안드로이드 전문가라니, 그 점은 좋네요. 그런데 SENAKAL이라는 건 어떤 조직이죠?"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시즈오카 씨가 그 말을 듣더니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2020년대 후반, 삼성이 한국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한국 최초로 안드로이드 기술을 선보입니다. 그걸 본 경쟁사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심지어 기술력이 부족한 상태였죠. 그래서 SK랑 LG가 기술 연합을 만들기 시도합니다. 그래서 어찌어찌 모은 참여대상이 네이버, 서울대, 카이스트였습니다. 나머지 기업들과 대학들은 모두 거절하거나 힘이 많이 약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앞글자를 따서 SeNaKaL, 그러니까 SENAKAL을 만든 겁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 주요 연구원이라는 거죠?"
"네. 당신을 포함한 연구원들이 만든 안드로이드로는 재난구조용, 카운터용, 보육용, 전투용, 보디가드용이 있습니다."
시즈오카 씨가 내가 미래에 만들 로봇들의 종류를 나열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 기분이 점점 흥분되고 고조되었다. 그러나 시즈오카 씨가 다음에 한 말이 이 감정을 깨뜨려버렸다.
 
"그래서 당신같은 주요 연구원들을 섭외하려 했던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희들은 당신들 같은 주요 연구진들에게 안드로이드를 만들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