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듬은 관목과 키를 재면서  아무 꽃이나 기다리던 날이었다.

피어난 꽃이 있으면 절로 예쁘다 하던 시절이었고,

바빴던 아빠가 머리를 빗겨주고 과자 사러 가는 시간이 행복했던 때였다.

 

그때 만난 아이는 누구보다 빠른 털인형처럼 보였다.

사람만 보면 도망가고, 어디로 갔는지 당최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너무 귀여운 걸! 하고 쫓아가면 온데 간데 없었다.

 

고양이. 아빠는 그 귀여운 아이를 고양이라고 했다.

아빠는 고양이를 싫어했다. 왜 귀여운 고양이가 싫어? 하고 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양이털 때문에 공연히 기침을 하곤 하셨으니 싫을 만도 하겠다.

 

그건 그때 일이고, 나는 고양이가 보고싶다며 떼를 썼다.

결국 키가 큰 아빠는 망루 위의 파수꾼처럼 고양이의 출현을 감지했고,

나는 아빠의 신호를 받고 고양이를 보러 와다다 뛰어갔다.

 

그렇게 나와 그 고양이는 몇 번씩이나 마주쳤다.

도망가는 것도 하루이틀이었고, 나중엔 가만히 앉아서 째려볼 뿐이었다.

그래도 녀석은 내가 싱겁게 헤헤거리기만 해도, 옆에서 들어주기는 하였다. 그게 참 귀엽고 고마웠다.

 

나는 가만히 앉아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친구 얘기, 간식 얘기, 엄마아빠 얘기, 날씨 애기도. 아 참, 했었지.

나만 떠드는 바람에 화제가 떨어져 그냥 눈에 채이는 것들을 말했다.

 

"너 배 나왔구나? 너도 간식 많이 먹니?"

고양이는 잠깐 흘겨보다 웃겨서 그릉거리기만 했다.

여유와 일광욕 말고는 뭐 하나 넉넉하지 못한 생활이었으니까.

 

다음날은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쉬워 과자도 깨작이면서 두어 주가 지났고,

녀석은 기적의 대감량을 하고서 내 앞에 나타났다.

 

통통해 보여서 보기 좋았는데 갑자기 헛헛해진 배를 보니 안쓰러워졌다.

그래서 널 못 본 동안 과자를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는 얘기를 했다.

고양이는 내 이야기를 듣고 사라졌다.

 

할 말이 생겨 신바람을 타고 나간 날이었다.

자전거 끄는 소리와 함께 들어보지 못했던 거친 음성이 지나쳐갔다.

"에이 씨팔 고양이가 재수없게..."

 

나는 불길한 마음에 아저씨가 걸어온 길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고양아 고양아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답이야 원래 안하니 괜찮았지만, 도저히 마음 속 혼란은 가시질 않았다.

 

조금 더 가다보니 희미한 바퀴자국이 보였다.

붉고 끈덕했을 액체는 땅에 붙어 말라가고 있었다.

자국이 선명해질수록, 내 마음도, 마음을 비추는 창도 흐려져갔다.

 

"고양아!"하고 외쳤다.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이 돌아봤다.

나는 온 힘을 다 해 어른의 다리를 밀었고, 그러면 그들은 자기 알아서 몸을 비켜주었다.

"고양아!" 붉게 물들어 섬뜩한 고양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울더니만 고양이는 성치 않은 거동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비일상을 눈에 담으려 고개만 빼면서 고양이를 지켜봤지만,

나는 천천히 고양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아파트 화단을 넘어 계속 걸었다.

녀석이 지나온 길에는 핏방울이 병뚜껑만하게 퍼져나갔고,

나도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내가 떠나가라 울면서도 고양이는 제 길을 걸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너를 위해 슬퍼하는 건 너도 아는 걸까 싶다가도,

푹 쓰러져 사라질 것 같은 생각에 걸음만 계속할 뿐이었다.

 

그러다 걸음이 멈춘 곳은 앞건물 구석에 있는 벽돌 울타리 옆이었다.

닦인 길도 아니고, 누구 와서 앉을 벤치 하나 없어 조용하기는 조용한 곳이었다.

누군가 몰래 버린 가구를 시작으로 온갖 폐가전과 잡동사니가 굴러다니는 이곳.

 

"야옹 야옹." 작고 미약한 소리가 여러 번 겹쳐 들렸다.

녀석이 낸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돌연 들렸던 소리에 놀라는 동안, 고양이는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있었다.

 

"고양아!"하고 불렀다. 벌어진 상처에 고여가는 피와 앵앵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야옹 야옹." 작디 작은 털인형들이 뛰쳐나왔다.

쓰레기 아래에서 절묘히 만들어진 작은 굴에서 아기 고양이들이 나온 것이다.

 

"고양아!" 내 외침에도 아랑곳 않고, 녀석은 쉬고 있었다.

쉬다가, 자다가, 반응 없다가. 감긴 눈을 끝으로, 고양이에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보잘 것 없는 울음만이 제 어미의 곡을 대신했다.

 

아직 털도 덜 난 얼룩이와 덜룩이들.

대답 없는 고양이를 대신해, 이들은 나를 바라보았다.

허나 내겐 슬퍼하는 것 말고는 해줄 것이 없었다.

 

나는 아빠를 불러와 고양이를 묻었다.

땅으로 가버린 어미를 보며 앨앨거리던 새끼고양이는 보호소라는 곳으로 갔다.

딱 한 마리만 빼고. 아빠는 한 마리 정도는 키우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끼고양이는 어미를 닮아갔다.

삐이 삐이 우는 녀석에게 그 아이가 겹쳐 보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전처럼 녀석에게 혼자 말을 걸었다.

 

그러다보면 얘도 신통하게 대답하기도 했다.

야옹 이라고 들리는 울음소리에서 의미가 담기기도 했다.

괜찮다는 건지, 배고프다는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 생각할 것도 없이 둘 다였던 것 같다.

과묵했던 녀석의 말이니, 필요한 말만 했을 것이다.

내겐 그렇게 들렸다.

 

나는 그날 들여온 고양이를 나비라고 이름 지었다.

녀석의 몸집이 커져 어미와 닮아갈수록 유년의 슬픈 이별이 꿈의 한 켠을 차지했다.

그리고 엊그제 있었던 또 다른 이별은 그날을 가장 생생하게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제는 관목도 모른 체 지나가고, 머리도 혼자 빗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별은 이렇게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구나.

길어진 기억과 늘어진 감정을 적고 나니 후련은 하다만.

 

어쩌면 나비는 그날 아주 죽은 게 아닌가도 싶다.

죽었지만, 다만 또 다시 내 옆에서 내 말을 들어주려고 부활한 게 아닐까?

재미있는 생각이다.

 

세상은 비극적이고 준비 없이 큰 일이 닥쳐온다.

나는 눈물겨운 세상 속, 어린 영혼의 이른 충격을 안타까워한 죽기 직전의 고양이를 떠올렸다.

피와 기력의 고갈 속에서 분투하고, 상실한 어린이에게 새로운 의미를 선물한 고양이가.

 

이 수기 속에서 문득 성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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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이 머문 이곳에 짧은 글 하나 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