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골이 휘어 더는 항해할 수 없는 배가 바닷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배의 앞부분을 지탱해주던 선체 밑바닥에는 커다란 구멍만이 나 있을 뿐이다.

구멍 안은 검은 어둠에 휩싸였고, 물은 그 구멍 안으로 끊임없이 유입된다.

배의 엔진이 달린 뒷부분은, 앞부분의 힘을 이기지 못해 위로 들어올려졌다.

앞으로 쏠린 선체는 갑판 위에 있던 모든 물건을 심해로 떨어뜨렸다. 그것이 사람일지라도.

4층으로 되어있었던 선실은 그 중 위쪽 두 층만이 살아남았고, 아랫쪽은 모두 물에 잠겼다.

생존자들은 고군분투하며 아래쪽으로 넘어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헛수고일 뿐이다. 배는 가라앉고, 생존자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물에 빠진다.

빠진 생존자들 중 1%만이 다시 고개를 들어 침몰해가는 회색 고철덩어리만 응시할 뿐이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구명정은 누군가의 소행으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전화나 무전기조차 작동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귀중품을 살리려 노력했던 귀부인들과 부자들은 보석과 함께 수장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베테랑 해협'이라 불리며 프로 선장들의 지름길이 되가던 곳에 21시간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올린 생존자들 중 물에 잠겼다 다시 떠오르는 생존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물에 잘 뜨는 물체를 잡고 숨을 헉헉대며 머리를 물 속에 넣으면, 그 속은 죽음이다.

머리를 물 속에 넣은 사람들은 온 몸에 힘이 풀리며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배의 4층 부분이 모두 잠겼다. 그저 후미부분 선체만이 떠있을 뿐이었다.

27분의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오지 않은건 사실이였다.

벌써 생존자들의 수는 줄어가기 시작했고, 저체온증과 의식 불명으로 몇 명씩 아래로 떠내려갔다.

 

1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추위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2시간이 지나자 5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사망했다.

3시간이 지나자 2명이 남았다.

4시간이 지나자 선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엔진의 과도한 출력때문일 것이다.

5시간이 지나자 마지막 생존자가 물에 잠겼다.

6시간이 지나자 선체가 모두 물에 잠겼다.

 

침몰 후 18시간. 그러니까 39시간 만에 구조대가 도착했다.

1600명의 신원 중 1599명이 발견되었다.

 

18년이 지난 후 선체 탐사과정에서 불과 2년전까지 엔진을 누군가 제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엔진의 가스는 모두 닳아 있었으며, 계기판에는 붉은 유성매직으로 1241DAY라고 적혀있었다. 3층 식당에서는 1년간 방치되어있던 썩은 물이 발견되었고, 직원 휴게실에서는 깨진 유리가, 202호에서는 202쪽까지 읽었던 소설과 정확히 2주 전 날짜만이 적혀있었을 뿐이었다.

마지막 한 명은 202호실에서 2월 2일에 백골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그의 품에는 202라고 적힌 열쇠와, 구형 타자기만이 남아있었다.

 

선체 이양과정에서 미스터리가 존재했는데, 밤 12시가 되면 버려진 선체 202호에서 타자기를 탁탁탁 두들기는 소리와 3층 식당에서는 접시가 깨지는 소리, 그리고 4시가 되면 선체 404호에 불이 잠시 켜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