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얼어붙은 건 한순간이었다.


눈 깜박일 사이, 아주 순식간에 말이다.


선택받지 않은 98%의 사람들.


이 사람들은 죽음만을 앞두고 있었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난 그때 집 안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쾅."


운석이 충돌했고,


우리 쪽 세상도 


"휑"


하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세상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했다.


"..."


난 바깥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다.


창문이 얼어붙었기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휑한 거리 위 얼어버린 사람들은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난 뒤돌아섰다.


그리고 지하실로 향하였다.


그곳엔 30일은 버틸 수 있는 절인 고기, 통조림 같은 음식들, 라이터, 성냥, 부탄가스, 의약품 등등 온갖 게 다 있었다. 


다 내 할아버지 때문에 사 온 것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냉전 직전 2차 세계대전을 겪어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비상식량, 생존 용품 등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다. 그걸 다 살 돈도 충분히 많았고. 난 금수저였으니까.


"... 뭐 식수가 좀 부족하긴 한데..."


내가 생수통들을 보며 말했다.


"뭐 핵폭탄 터진 거도 아닌데 바깥에서 얼음 캐오면 되겠지..."


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아, 그렇지."


난 구석에 있던 라디오를 꺼냈다.


그리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보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뭐라도 나와라..."


"치익...치이이이익...."


한동안 계속 그 짓을 계속했다.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엇?"


지지직 소리가 끝나고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사람 목소리였다.


곧바로 집중해서 그걸 듣기 시작했다.


"2022년 12월 25일 16시. UGBS Radio 시작하겠습니다."


"UGBS...? 처음 들어보는 데..."


UGBS가 뭘 의미하는지는 곧 알 수 있었다.


Under Ground Broadcasting System, 즉 지하로 피신한 2%의 사람들을 위한 라디오였다.


약간 기분이 씁쓸해졌다.


그래도 그것도 잠시, 혹시 우리들을 도와준다는 소식이나, 우리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희망은 너무나도 컸던 모양이었다.


그 방송은 그야말로 딱 2%만을 위한 방송이었다.


나머지 98%을 위한 내용은 단 하나도 없었다.


"에휴..."


화룡점정은 맨 마지막 멘트였다.


"... 정부는 지하에 있는, 즉 살아있는 사람들에 집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국민분들도 정부의 협조에 잘 따라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정부는 우릴 버렸구나.'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지하에 있는, 즉 살아있는 사람들이라니.


그럼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는 말이 되니 말이다.


'여기 아직 멀쩡히 사람이 살아있는데...' 


난 라디오를 꺼버렸다.


더 주파수를 돌려볼 힘이 나지 않았다.


내가 허무주의에 잠겨질 동안, 또 다른 위협이 나한테 찾아왔다.


"... 추워."


바로 추위였다.


난 곧바로 지하실에서 나와 내 집으로 갔다.


곧바로 엄청난 추위가 나한테 덮쳤다.


난 곧바로 침실로 향했다.


두꺼운 이불들을 다 지하실로 빼오고, 옷들도 그냥 죄다 빼왔다.


그리고 옷들을 몇 겹씩 껴있고, 이불을 뒤집어쓰니 그나마 살만해졌다.


"후..."


내 모습은 마치 엄청나게 살찐 아저씨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 좀 살 것 같았다.


'오늘은 그냥 자야지...'


저녁을 거르고 지하실 바닥에 놓인 침낭에서 잠을 청했다.


'근데 우리 부모님은 하와이 가셨는데 거긴 괜찮으려나...'



'그리고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제 평생 더위라는 걸 느끼지 못하고 죽는 거야?'


왜 이런 생각은 하필 자기 직전에 나는 것일까.


난 결국 그날 밤을 지세웠다.


.

.

.

.

.


12월 26일 아침.


토마토 스프로 그동안의 허기를 달랬다.


그리고 혼자 카드게임을 하거나


혼자 체스를 두거나 


계속 혼잣말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것들은 몇 시간도 안 지나 질려버렸으며, 최후의 수단으로 노트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거까지 다 완성하자, 더 이상 집 안에서 할 게 없었다.


밖에 나가긴 아직 너무 무서웠다.


결국 어제 다시는 안 틀을 거라 다짐했던 라디오를 다시 틀었다.


시간 때울 게 그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자 어느새 밤이 되었고, 지하실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전기 공급이 끊겼기 때문에 전등을 키지 못 했기 때문이다.


불이 꺼지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자기로 했다.


내 "동 트면 일어나고, 해 지면 곧 잔다." 란 생활 패턴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12월 27일, 28일, 29일....


일기를 쓰고, 라디오에 귀 기울이는 등 열심히 뭔가를 해보려 했지만 그뿐이었다.


일기를 다 쓰고, 라디오 방송 시간이 끝나면 난 그나마 있던 삶의 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럴 때면 그냥 잠을 청할 뿐이었다. 


2023년 1월 1일.


새해가 시작되는, 어쩌면 가장 기뻐야 할 날.


행복과 희망은 온데간데없었고,


약간의 변화만 거듭한 채로 일상의 큰 틀은 바뀌지 않은 채로 그날을 보냈다.


-아침. 참치캔과 황도 통조림.


-일기 및 명상


-fm 96.9에서 UG-2 라디오. 오전 10시~12시까지 음악을 틀어줬다. 대부분 2020년~2022년 사이의 히트곡을 틀어줬다.


-fm 97.4에서 UGBS 라디오. 오후 1시 ~ 6시까지 뉴스 및 토크쇼. 


-저녁. 참치캔과 약간의 야채 통조림.


-이만 닦고 취침.


이런 일상이 아침, 저녁 메뉴만 바뀌는 걸 제외하면 계속 반복되었다. 점심은 거르는 게 일상이 되었다.


2023년 1월 18일이었을 것이다.


벌써 세계가 종말을 고한 지 24일이 지난날이었다.


그날 아침에 나는 평소와 같이 통조림을 까고 있었다.


거기서 난 깜짝 놀랄 사실을 발견했다.


어느새 그 많던 통조림과 음식, 식수들이 다 사라져 있던 것이었다.


선반엔 내가 먹을 음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진짜 이젠 밖으로 나가야 하나..."


일단 밥을 다 먹고, 오리털 파카에 입을 수 있는 옷이란 옷 들은 전부 껴입고 문 밖을 나섰다.


24일 만의 외출이었다.


문 밖을 나서자, 완전히 얼어붙은 도시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모든 건물들이 전부 새하얗게 보였고, 눈들은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쌓여있었다.


눈이 닿을 때 살에서 차가움이 느껴졌다.


난 하늘을 보았다.


원래였다면 태양이 눈이 부시게 우릴 비추어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뭔가에 가려진 건지 태양의 형태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우울해진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내 삶 동안 태양을 완전히 못 볼 거 같았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들.


태양의 햇빛, 부드러운 바람, 우리가 생각했던 당연한 것들은 어느샌가 사라져버렸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내가 도착했던 곳은 내 친구의 집이었다. 


언젠가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꼭 오라고. 자신은 언제나 이곳에 있겠다고 한 그곳이었다.


"똑. 똑."


"..."


"저기요?"


"..."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들리세요?" 


내가 문을 더 세게 두드렸다.


"..."


"... 설마... 죽은 거야...?" 


문을 두드리는 것을 멈추었다.


"아니... 아니겠지. 지금 외출 중일 지도 몰라..."


"지금 뭐 하니?"


두꺼운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굉장히 야윈 모습이었다.


"네?"


"지금 뭐 하냐고."


"아 제 친구가 여기 살아서..."


"근데?"


"근데 답장이 없어서 지금 돌아갈려 하던 중이었어요."


"아 그래? 문 따주랴?"


"네? 지금요?" 내가 당황해서 되물었다.


"응. 내가 문 따는 건 귀신같이 잘하거든."


"어쩌다..."


"응? 아, 우리 가족이 밥만 축내는 노인네는 나가라며 내 집에서 내쫓겼어. 그 후로는 내쫓길 때 챙긴 젓가락으로 딸 수 있는 문이나 따면서 먹을 거 있나 살펴보고 있지."


"아차, 아무 문이나 따진 않아. 노크해 보고 반응 없는 집들만 들어가지. 처음엔 그냥 딸 수 있으면 막 들어갔는데 그러다 총 맞을 뻔했거든." 할아버지가 내 눈치를 살피고 말했다. 


"... 그래서 문 따줘?"


"네... 앗." 난 너무나도 궁금한 마음에 그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난 말리려 했지만, 그동안 벌써 문이 열려있었다.


"들어가자. 난 어제부터 굶었어. 여기엔 먹을 게 뭐라도 있었으면..."


"아. 사람이 죽어있네." 할아버지가 이미 많이 봤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들어가자마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내 친구였음이 분명했다.


"페리안!"


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너가...너가...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나왔을 텐데... 살아있을 때 더 잘 대해주고..."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감정이 메말랐다는 생각과 다르게 감정은 아직 실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만약..." 결국 난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무심한 듯 집 안을 쓱 훑어보았다.


그게 한 5분쯤 걸렸고, 별거 없는 걸 확인하자, 나에게 나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난 발걸음이 떼지지가 않았다.


"마음을 추스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가혹한 현실은 나에게 울 시간 조차 허용해주지 않았다.


난 겨우 발걸음을 떼었다.


"그럼... 쟤 묻어주고 갈 순 있을까요...?"


"... 그러자."


우린 얕게 판 땅에다 시체를 올려놓고 눈으로 덮어놓았다. 슬픔이 약간이나마 추스러진 느낌이었다. 


그러고 작은 작별 인사를 올리고, 그곳에서 떠났다.


"마트 가보셨어요?" 어느샌가부터 난 이 할아버지와 동행하고 있었다. 


"응. 당연히 가봤지. 근데 아무것도 없더라."


"식료품만요?"


"아니, 전부 다. 의약품, 옷... 다 가져갔어 사람들이."


"그럼 저희는 이제 어떡해요?"


"넌 음식 많니?"


"많았으면 지금 안 나왔겠죠..."


"... 그렇구나. 그래, 그렇지."


"뭐 어떡하긴, 이대로 굶어죽는 거지. 이곳의 수많은 굶어죽은 사람들처럼 말이야."


"..."


정적이 흘렀다.


"... 혹시 여기서 벗어나면 먹을 것이 있을까요?"


"있길 바랄 뿐이지. 근데 어떻게 여길 벗어나게?"


"차가 있어요."


"차? 그래 차 있지. 근데 차도 완전히 얼어버렸을 텐데?"


"아뇨, 제 차면 몰라요. 지금 시동이 켜질지도 몰라요."


"왜?"


"제 차는 최신형, 아니 최신형도 아니다. 애초에 세상밖에 나오지도 않은 차거든요."


"뭔 소리니?"


"부모님이 자동차 회사 사장이셨는데... 출시 전 차를 저에게 주셨어요. 따라오세요."


"자동차 키는?"


"아차, 갖고 올게요! 기다리고 계세요!"


"... 알겠다."


곧 난 다시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왔다.


"에이프런 주차장으로 가요!"


"그래, 알겠다." 할아버지는 하루도 아니고 이틀을 굶어서인지 몸동작이 굼떴다.


30분 후. 우린 공영주차장에 도착했다.


얼어붙은 주차장 입구의 차단기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


어렴풋이 내 차가 보았다.


눈에 덥혀있어도 워낙 내 차가 튀었기 때문이다.


난 차 위의 눈을 치웠다.


자동차의 보닛에 20230109란 날짜가 보였다.


만약 재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진작 출시되었을 차였다.


"제발... 반응해라..."


난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렀다.


"삐빅"


문이 열렸다.


난 허겁지겁 운전대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그 옆 조수석에 앉았다.


이제 남은 건 시동.


난 다시 떨리는 손으로 시동 버튼을 눌렀다.


기계음과 함께 시동이 걸렸다.


"됐어.


난 크게 심호흡하고,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됐어. 됐다고. 이제 여길 떠날 수 있어. 새로운 희망이 생긴 거라고.'


"어디로 갈 거냐?" 늙은 할아버지가 물어보았다.


"어디긴요. 제 집이죠. 물건들 챙겨올게요."


흰 차가 텅 빈 눈 길 위를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불안감은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마저 그것이 방해하진 못했다.


속도를 더 올렸다.


이 세상의 불안감을 다 날리듯, 나 캐더르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게 나의 방랑자로서의 생활의 시작이었다.

작가의 말: 2편이 완결일 예정. 취미로 쓰는 거라 퀄리티가 높진 못 해. 하지만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어. 아 그리고 세상이 얼어붙기 전에. 이거랑 같은 세계관이야.